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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깡패황제 유방(劉邦)의 7가지 깡패행위

by 중은우시 2007. 12. 30.

글: 장강단적(長江短笛)

 

만일 누가 중국역사상 가장 대단한 황제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고조 유방을 떠올릴 것이다. 이는 그가 미천한 출신이면서도 진나라의 폭정을 끝내고, 사해를 평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군사책략에서 그 자신보다 뛰어난 장량(張良), 치국안방에서 자기보다 뛰어난 소하(蕭何), 군대를 이끌고 전투하는데 자기보다 뛰어난 한신(韓信)을 잘 단결시켜 그들의 장점을 잘 활용하여 자기의 황제꿈을 성사시켰다. 일찌기 그가 대택향(大澤鄕)에서 백사를 베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가 사수정장(하급관리)를 지낼 때도, 천하에 위엄을 떨치는 군왕이 되고자 하였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유방이 한중왕(漢中王)으로 있을 때, 명수잔교(明修棧橋) 암도진창(暗渡陳倉)을 기억할 것이고, 그가 적수인 항우와 그의 모사인 범증을 이간시킨 것을 기억할 것이고, 초와 한이 강을 사이에 두고 천하를 나누자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고 군대를 몰아 피로한 항우의 병사를 친 것을 기억할 것이고, 그가 각종 핑계를 대어 이성(異姓) 제후들을 죽여버린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군사가 겸 정치가로서 중국역사의 평가규칙에 따르면, 이는 무슨 음모궤계라고 할 것도 없고, 무슨 깡패수단이라고 할 것도 없다. 필자는 그가 가장 대단한 깡패황제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자신의 부모와 처자등 친족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놓고 하는 말이다.

 

첫째, 부친의 말을 듣지 아니하다.

 

유방이 젊었을 때 부친의 말을 듣지 않았고, 하루종일 놀러다녔고, 자주 술집에서 술이나 마셨으며, 술에 취하면 그저 잠을 잘 뿐이었다. 글도 읽지 않았고,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호붕구우(狐朋狗友)를 사귈 뿐이었다. 약관이 되어서도 어릴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자, 부친이 그를 이렇게 질책했다: "넌 정말 무뢰한이구나. 언제나 집을 사고 땅을 구해서 희망을 보여줄 것인가?". 그가 황제가 된 후 황제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하여, 부친으로 하여금 빗자루를 들고 문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게 한 적이 있다.

 

둘째, 형수집에서 밥을 얻어먹다

 

유방은 나이가 들어서도 일은 하지 않고 형과 형수집에서 같이 지냈다. 자주 호붕구우들을 끌고 형집에 와서 먹고 마시곤 했다. 형수가 소리지르고 질책해도 들은 척 만 척이었다. 나중에 유방이 사람을 끌고 와서 밥을 먹으려고 하자, 그의 형수는 머리를 짜내서 주걱으로 솥을 긁는 소리를 냈다. 유방은 밥을 이미 다 먹은 것으로 생각하고, 할 수 없이 뾰루퉁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볼 때 유방은 형수의 눈에 어떤 존재였는지 알만 하다.

 

셋째, 자식도 아까워하지 않다.

 

초한이 서로 싸울 때, 유방은 팽성에서 패배하고, 초나라군대가 급박하게 추격하자, 도망치기 위하여 두 아들을 차에서 밀어 떨어뜨렸다. 부장인 하후영이 황급히 아이들을 다시 차로 돌려보내자 유방은 다시 아이들을 밀러내 떨어뜨렸다. 이 일이 세번이나 반복되었고, 유방은 칼을 들어 자기 부하를 내려치려고 했다. 하후영은 할 수 없이 아이들을 겨드랑이에 껴앉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넷째, 부친의 죽음을 보고도 구하려 들지 않다.

 

항우는 일찌기 유방의 부친을 붙잡아 그를 위협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네가 병사를 물리지 않으면 나는 너의 부친을 삶아버리겠다"고 한다. 양군의 병사들은 아주 난감하였다. 그러나 유방은 전혀 거리낌이 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일찌기 결의형제를 맺은 바 있으니, 나의 부친은 바로 너의 부친이다. 네가 만일 네 부친을 삶아서 먹겠다면, 나에게도 고기국물을 좀 나눠줘서 같이 마시게 해달라" 항우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섯째, 부자를 사칭해서 장인을 속이다.

 

유방의 장인인 여공은 현령과 관계가 아주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하였다. 소하는 당시 손님을 접대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하나의 규정을 반포한다. 축하금을 천냥이 안되는 사람은 모두 당하(堂下)에 앉아야 한다고. 유방은 돈 한푼도 들고 오지 않았지만, 말로는 "나는 1만냥을 내겠다"고 소리친다. 그러자 여공이 직접 나와서 맞이하였다. 유방은 돈한푼 안내고 맛있는 식사를 했을 뿐아니라, 이로 인하여 여공의 딸인 여치(呂稚)를 부인으로 맞이한다. 여치는 나중의 여후(呂后)이다.

 

여섯째, 모친이 외간남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꾸며내다.

 

역사서에서는 모두 이렇게 말한다. 유방의 모친이 외출했을 때, 대택의 제방에서 잠시 잠이들었는데, 마침 천둥번개가 쳤다. 유비의 부친이 찾으러 왔는데, 교룡(蛟龍)이 처의 몸에 감겨 있는 것을 보았다. 좀있다 임신하여 유방이 태어났다. 중국인이라면 절대 모친이 외간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식의 일을 떠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자신의 출생이 비범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자신이 모친의 "혼외정사"의 산물이라고 꾸며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곱째, 처에게 외도를 모른척 하다.

 

황후가 외도하는 것은 대부분 과부가 된 이후의 일이다. 유명한 황제들의 황후는 외도를 하기 힘들었고, 특히나 외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유방의 처인 여후는 유방이 죽은 후에 조정을 혼란시켰을 뿐아니라, 유방이 살아있을 때에도 벽양후 심이기(審食其)와 애매한 관계를 오래 지속했다. 그러나, 유방은 알면서도 그랬는지, 몰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즉위후에 심이기를 후에 봉해주고, 여후와의 옛사랑에 대하여 여전히 간섭하지 않았따.

 

깡패(流氓)는 한편으로 아무 직업이 없는 놀고 있는 백성을 뜻한다. 나중에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못된 짓을 하고, 무뢰한 짓을 하며, 저급한 수단을 쓰는 등 열악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러한 정의를 따른다면, 중국의 수백명의 제왕중에서 유방이 아마 가장 대단한깡패황제라고 하여도 전혀 부끄럼이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