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원집록>>은 송나라 사람인 송자(1186-1249)의 법의학 저작이다. 이는 세계최초의 비교적 완비된 법의학 전문서적이며 통칭 <<세원록(洗寃錄)>>이라 한다.
송자의 자(字)는 혜보(惠父)이고, 남송때 건양(지금의 복건) 사람이다. 송나라 영종 가정10년(1217년)에 진사가 되었다. 주부(主簿), 현령(縣令), 통판(通判)등의 직을 역임했다. 가희 6년(1239년)에 제점광동형옥(提點廣東刑獄)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강서제점형옥겸 강주지사를 지냈다. 순우연간에는 제점호남형옥 겸 대사행부참의관을 지냈다. 이 기간동안 송자는 형사사건을 처리하면서 특히 현장검증을 중시했다. 그는 당시에 시신검증에 관한 저작들을 종합하고, 심의하고, 연구하여, 자신의 풍부한 경험까지 더하여 이 체계적인 법의학 저작을 완성하게 된다.
<<세원집록>>의 송나라 간행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최초의 판본은 원나라때의 판본인 <<송제형세원집록>>이다. 내용은 "조령(條令)"에서 시작하여 "험상설(驗狀說)"까지 모두 5권, 53조로 되어 있다. 목록에서 보면, 이 책은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시신을 검증하는데 관한 법령; 검시방법과 주의사항; 시체현상; 각종기계성질식사; 각종둔기손상; 예기(銳器, 날카로운 물건)손상; 교통사고손상; 고온치사; 중독; 병사와 급사; 시체발굴등등
<<세원집록>>은 송자이전의 시체의 외표를 검사하는 경험의 집대성적인 저작이다. 작자는 책에서 말로 하는 진술을 쉽게 믿지 말라고 하고 있다. "고소장은 쉽게 믿어서 안되고 반드시 상세히 검사해야 하며,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특히 해결이 어려운 사건인 경우에 "반드시 여러 군데 알아봐야 하며, 한 두 사람의 말만 믿고 처리해서는 안된다"고 적고 있다. 그는 또한 검시관은 반드시 현장에 친히 가야 하며, 검시보고서에도 반드시 친히 시체검사원칙을 채워넣어서 작성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세원집록>>은 비록 1247년에 만들어졌지만,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과학적인 성과는 적지 않다. 몇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몇 가지 중요한 시체현상에 대하여 이미 비교적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세원집록>>에는 "죽은 사람은 목뒤, 어깨위, 양쪽 늑골, 허벅다리안, 양쪽 팔위, 양쪽 다리뒤, 양쪽 종아리 아래위에 약간 적색을 나타낸다. 본인이 죽은 후 몸을 하늘을 향하고 있으면 피가 내려가서(血墜) 적색을 띄게 된다. 이것은 다른 사고로 인하여 죽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혈추(血墜)는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시반(屍班)이다. 이 책에서는 명확하게 동물이 시체를 파괴한 것과 살았을 때 입은 상처와의 감별방법을 적고 있다: "사람이 죽은 후, 벌레, 쥐등에 뜯어먹힌 경우에는 피부가 파괴된 곳에 피가 없다. 뜯어먹힌 주위에 벌레나 쥐등의 이빨흔적이 있다. 피부와 살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개가 물었다면 흔적은 크게 된다"
둘째, 자액(自縊, 스스로 목을 맨 것), 늑사(勒死, 목졸라 죽인 것), 익사(溺死, 물에 빠져죽은 것), 외물이 코와 입을 막아서 죽은 4가지의 기계성질식을 언급했다. <<세원집록>>에는 액사의 증상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목을 매어 자살한 흔적은 머리 되가 8자로 나뉘며 끈이 겹치지 않는다" "가늘고 단단한 끈으로 높은 곳에 목을 매었으면 흔적이 깊고, 비단, 수건등으로 매거나 낮은 곳이면 흔적이 얕다" 그리고 "만일 후두위를 졸랐으면, 입이 닫기고, 이빨을 꼭다물고 있으며 혓바닥이 나오지 않는다. 만일 후두 아래를 졸랐으면 입이 열리고 혀가 2푼 내지 3푼 나온다", "입술, 양쪽뺨, 가슴아래등에 침을 흘린 흔적이 있다". 목졸라 죽인 것에 대하여는 책에서 액사와의 다른 점에 대하여 목아래에 끈자국이 교차되고, 끈을 여러번 둘러감는 경우가 있고, 목 뒤에 정중앙이 아니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익사의 흔적에 대하여는 책에서 "배가 팽창하고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손발톱의 틈에 모래나 진흙이 있다" "입이나 코 안에 거품이 있다"등등이다.
셋째, 기계성손상에 대하여 논술하였다. 이 책은 당나라 법전의 규정에 따라 기계성조작을 명확히 "수족타물상(手足他物傷, 손 발 타물에 의한 손상)"과 "인상(刃傷, 칼날로 인한 상처)"으로 나누고 있다. 타물은 오늘날 말하는 둔기이다. 책에서 타물수족상은 피하출혈이 있다고 한다. 책에서 피하출혈의 현상에 대하여 상세히 언급하여, 그 대소와 흉기의 모양과의 관계 및 손상된 위치판단과 흉수와 피해자의 위치관계등을 논하고 있다. 인상의 특징에 대하여 '날카로운 칼날과 도끼흔적은 위는 넓고 길며, 안은 반드시 좁다. 큰칼의 흔적은 얕은 곳이 좁고, 깊은 곳이 넓다. 칼로 낸 상처는 그 흔적의 양 끝이 날카롭고 작다" "창으로 찌른 흔적은 얕은 곳은 좁고, 깊은 곳은 흔적이 둥글다. 혹은 대나무창으로 찌른 경우에는 상처입구가 고르지 않다" 인상이 살아있을 때 난 것인지, 죽은 후에 난 것인지를 가리는 법에 대하여도 책에는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생전의 인상은 그 흔적이 살이 넓고 무니가 있으며, 살의 흔적이 고르면, 사후에 만든 상처이다. 만일 생전의 인상이라면 피흔적이 있고, 상처입구의 살에 묻은 피가 선명하다. 만일 죽은 후에 칼로 상처를 낸 것이면 살색이 백색이고, 피흔적이 없다.(사람이 죽은 후에는 피가 흐르지 않으므로 살이 흰색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 이 책에서는 더위로 죽은 경우, 얼어죽은 경우, 뜨거운 물에 데어 죽은 경우, 불에 타 죽은 경우등의 고저온으로 인한 사망에 대하여도 기재하고 있다. 현장에서 시신검사시의 주의할 점도 비교적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적인 한계로 인하여 <세원집록>>에서 어떤 사실에 대한 인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죽은 상처에 대하여는 인식이 있었지만, 정확히 설명을 못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뇌진탕, 뇌일혈등의 급사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고, 둔기로 맞아서 겉은 멀쩡하나 내장이 파괴된 죽음에 대하여도 잘 인식하지 못했다. 혈적, 정반, 모발, 독물의 화학검사가 검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도 알지 못했다.
<<세원집록>>은 중국 고대에 비교적 체계적으로 검시경험을 종합정리한 법의학분야의 명저작이다. 이것은 송나라 이래로 역대관부의 시신검증의 교과서로 쓰였다. 송, 원, 명, 청의 각 형사처벌에서 준칙으로 삼았다. 이것은 외국어로도 많이 번역되어, 세계법의학사상에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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