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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정보통신

지멘스핸드폰사업의 중국에서의 실패원인

by 중은우시 2007. 1. 24.

글: 왕일범(王逸凡)

 

이런 거래도 있다. 1년간의 영업액이 58억달러인 자산을 아무 돈을 지급하지 않고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상대방은 2.5억유로의 가치가 있는 현금과 기술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뿐아니라, 상대방은 5000만유로를 들여서 당신회사의 2.5%주식을 인수한다. 이것만 본다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좋은 거래가 있을 수 있는가?

 

2005년, 독일 지멘스의 글로벌 새CEO인 클라우스 클라인펠트는  취임직후 이처럼 남들이 보기에 불가사의한 "좋은 거래"를 추진해서, 지멘스의 전세계 핸드폰사업이라는 이 "딸"을 대만의 명기전자(明基電子, BenQ)에 시집보냈다. 시집보내면서 혼수도 풍성하게 해주었다...현금, 기술, 주식 뿐아니라, 지멘스핸드폰의 '시집'에는 아래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멘스가 핸드폰영역에서 보유하고 있는 1000여건의 특허, 여기에는 28개의 핵심 GSM/GPRS특허도 명기로 이전한다. 지멘스는 핸드폰영역에서의 2000여명의 연구개발인원도 자동으로 명기로 이전한다. 지멘스의 조작시스템 SYMBIAN에 대한 8.4%의 권익도 명기에 이전한다. 이외에 2005년 10월 1일부터 18개월간 명기는 핸드폰에 지멘스 단독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고, 연합브랜드의 수권기간은 5년이다.

 

아무런 이익도 없이 오히려 수억달러를 덧붙여서 일찌기 세계랭킹 4위에 올랐던 사업부문을 매각하였는데, 지멘스는 왜 이렇게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것일까? CSFB는 이전에 발표한 리서치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2004년 지멘스 핸드폰은 결손이 이미 2억달러이다. 만일 핸드폰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2005년에는 아마도 5.5억달러의 결손을 보게 될 것이다. 다만, 핸드폰사업을 폐쇄하려면 비용이 11.2억달러나 든다. 그래서, "독일의 공장을 계속 운영한다"는 조건하에 핸드폰사업부문을 매각한 것은 지멘스로서도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예전에 지멘스핸드폰은 국제핸드폰시장에서 호풍환우했다. 휘황한 시기에는 세계 시장 판매량의 10%를 점하였고, 노키아, 모토롤라와 삼성의 바로 뒤를 이었다. 중국시장에서는 지멘스가 일찌기 성공하였다. 지멘스가 내놓은 S4핸드폰, 세계최초의칼라모니터의 GSM이동전화 S1088등의 제품은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기술과 제품의 실력을 가지고, 그리고 일련의 뛰어난 시장마케팅활동을 통하여 2001년의 하반기에 지멘스 핸드폰은 성공적으로 중국시장의 13% 점유율을 취득해서 처음으로 에릭슨을 물리치고 중국핸드폰시장의 3강에 들어갔다.

 

시간이 2002년에 들면서, 지멘스핸드폰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록 2003년에 지멘스가 Xelibri시리즈 핸드폰을 내놓아, 사람들의 눈에 번쩍 뜨이기는 했지만, 제품자체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서 결국 지멘스의 핸드폰사업을 중흥시키지는 못했다. 비록 2004년에 지멘스는 여전히 세계4위의 핸드폰제조회사였지만, 시장점유율은 7.2%로 하락했다. 그러나 그의 경쟁상대방인 삼성전자는 전년의 10.8%에서 13.2%로 증가하였다. 2004년 3/4분기에 지멘스 핸드폰사업은 처음으로 적자를 나타냈다. 핸드폰 1대를 팔 때마다 지멘스는 11유로씩 적자를 보았다. 이후 이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2005년 1/4분기에 지멘스의 시장점유율은 5.5%까지 내려갔다. 같은 기간 세계핸드폰시장은 유례없이 호황이었고, 세계핸드폰판매량은 17%나 증가하였었다. 중국시장에서 관련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2001년에 3강에 들던 지멘스는 2005년 상반기에 10강에도 들지 못하게 되었다.

 

몇개 분기의 누적손실이 5억유로에 달하자, 2005년초 지멘스의 글로벌주주총회에서는 전세계 각지역의 시장업무실적과 시장잠재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A, B, C의 삼등급으로 나누고; A급 지역의 핸드폰사업은 보류하고, B급지역은 정리정돈하며, C급지역은 핸드폰업무를 팔아버리거나 폐쇄하도록 하였다. 전세계에서 가장 실적이 나쁜지역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에서 지멘스는 그 해 9월에 철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당시 실적이 좋지 않았던 중국시장은 B급으로 분류되어, 일정한 기간동안의 효과를 보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비록 지멘스가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였지만, 이것으로 핸드폰사업을 구하지는 못했다. 4월이 되어, 지멘스는 부담을 털어버리는 절차를 가속화했다. 먼저 지멘스의 통신사업에서 결손나는 핸드폰사업부문을 분리했고, 합법적인 독립사업부문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지멘스의 핸드폰업무가 최종적으로 매각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이 분할은 향후 구조조정을 하는데 편리할 수 있었다. 과연 2개월후 지멘스는 이 핸드폰사업부문을 원래 격이 맞지 않는 명기에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지멘스는 20년간 운영하던 핸드폰사업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다.

 

옛날의 뛰어난 활약을 했던 기업이, 왜 이처럼 무기력하게 난감한 처리로 몰락했는가? 지멘스의 전세계시장의 축소판으로서 중국시장에서 지멘스 핸드폰이 몰락한 몇 가지 원인을 찾아보기로 하자.

 

첫째, 집단의 제품라인이 너무 길다.

 

지멘스는 예전에 이런 광고카피를 쓴 적이 있다. "박대정심(博大精深, 넓고 크며 정교하고 깊이가 있다)". 이거은 지멘스회사가 관련된 사업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멘스가 어느 영역의 기업인지를 한 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지멘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통신류의 제품 즉, 핸드폰, 무선전화, 유선전화, 네트워크시스템제품등을 생산하는 외에, 냉장고, 세탁기등의 가전제품, CT, 핵자공진등 의료설비, 심지어 중공업에 속하는 발전설비, 지하철설비, 자기부상열차등등을 생산한다. 이정도로 많은 업계에 걸친 것은 다국적기업에서는 많지 않은 일이다.

 

광정보통신의 영역에서 지멘스는 중국에 지멘스중국정보통신집단이 있고, 그 아래에 지멘스중국이동통신집단, 지멘스중국정보네트워크집단과 지멘스중국응용서비스집단 및 상해지멘스이동통신유한공사등이 있다. 이 회사들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하는 일은 구분되어 있다.

 

비록 지멘스의 다원화경영은 과거에 상당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많은 정도로 집단의 자원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모토롤라, 노키아등의 전문 통신업체와 비교하면, 지멘스는 핸드폰영역에 투입하는 자원과 정력이 전혀 미치지 못한다. 이로 인하여 발생한 결과는, 지멘스 핸드폰의 품질문제가 더욱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회사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2004년에 새모델을 냈는데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지멘스는 판매했던 핸드폰을 모두 회수해야 했다. 제품의 라인이 너무 길어서 지멘스 핸드폰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결국 시장경쟁에서 열세에 취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둘째, 저급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세탁기, 냉장고등 가전제품 및 다른 하이테크제품에서 지멘스는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나, 지멘스 핸드폰은 시장에 진입한 이래, 계속 저급제품전력을 택했다. 명기에 팔리기 전에 지멘스는 3000위안이상하는 핸드폰이 거의 없었고, 다른 모델의 핸드폰제품들은 대부분 800위안에서 2000위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지멘스의 원래 의도는 저급제품을 통하여 신속히 유통시키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지멘스는 저급시장에서 중국산핸드폰의 강력한 저지를 받았다. 소비자들과 판매상들도 저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멘스의 저가전략은 결국 실패하였다.

 

저급핸드폰시장은 중국국내회사들이 천시, 지리, 인화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멘스는 원가와 규모에서 이들과 대항하기 힘들었다. 오랫동안 국내핸드폰회사들과 낮은 수준의 경쟁을 하다보니 지멘스의 브랜드이미지에도 영향을 주었고, 기업의 이익에도 손해가 되었다.

 

소비자들은 지멘스를 노키아, 모토롤라, 삼성등의 브랜드와 같이 놓고 보지 않았다. 후자들은 이미 이전부터 고급핸드폰의 이미지를 구축해놓고 있었으므로, 저급제품을 팔더라도 시장에 영향력이 있었지만, 지멘스는 처음부터 저급제품을 내놓았고, 고급기능은 없었으므로 저가에 소비자들은 익숙해져 있었고, 이것만으로 구매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판매상은 저가는 이윤공간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멘스핸드폰을 취급하면 이윤이 10%에도 못미친다. 이것은 판매상들의 적극성을 불러일으키는데 불리하다. 지멘스는 2118이라는 모델의 핸드폰이 있었는데,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인 F4를 핸드폰 뒤에 붙였다. 이 핸드폰은 시장에서 지멘스의 저가핸드폰의 대표제품으로 인식되었다. 비록 적지 않은 청소년들은 이 제품을 좋아했지만, 판매상들은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호남의 한 판매상은 이렇게 말했다: "비록 제품이 잘 팔리더라도, 우리가 돈을 얼마 벌지 못한다. 장사는 해야 하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고급 핸드폰을 선호한다"

 

실제로 이미 돈을 벌 수 없게 되었으므로, 지멘스는 2005년초 미국에서 전통적인 대리상과 신형 소매점들의 신뢰를 잃었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발전한 중우, 보태등 몇개의 총대리상들중에서 일부는 지멘스제품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물건을 받기 시작했고, 판매가 되는 제품만 대리상의 하부조직을 통하여 내려갔다. 국미, 소녕과 같은 대형할인마트는 아예 신제품이 나오명 중국제품인 TCL, 하신등의 제품과 비교해본 후에 물건을 받기도 하였다.

 

셋째, 관리스타일의 문제

 

독일기업은 엄격하고 보수적이고, 일을 하는데 조그만큼의 흐트러짐도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지멘스도 예외는 아니다. 내부는 아주 삼엄한 위계질서와 아주 관료화된 업무기풍이 있다. 이런 문화는 지멘스핸드폰의 고품질을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멘스의 시장반응능력에는 제약을 받는다. 중국시장에서 지멘스는 노키아, 모토롤라등의 다국적기업처럼 관리인원의 현지화를 실현하지 못했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자주 중국실정을 잘 모르는 독일 사람이므로, 시장의 수요와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업계는 발전이 매우 빠르고, 기술혁신이 빈번하며, 시장변화가 신속하고,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이다. 특히 글로벌경영하에서는 기업이 신축적으로 변신하며, 적시에 부단히 변화하는 복잡한 시장환경을 따라잡아야 한다. 지멘스 핸드폰의 실패는 많은 측면에서 관리시스템의 경직화로 인한 시장반응이 늦고, 임기응변이 부족한데서 기인했다.

 

지멘스는 전형적인 대기업병을 앓고 있었다. 중국의 핸드폰사업은 많은 의사졀정 즉, 브랜드의 교체, 중대시장 마케팅방안에 대하여 모두 먼저 독일 본사에 보고하여 결재받은 후에 집행되었다. 이로써 시장의 기회는 놓쳐버리는 것이다. 바로 지멘스의 반응이 늦음으로 인하여 시장에서의 포지셔닝과 제품개발측면에서 상대방보다 박자가 늦고 경쟁업체와의 시장차이를 더욱 벌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이외에, 지멘스는 내부에서 복수영도제를 실시한다. 즉 모든 사업부문은 두 명의 최고경영자가 있다. 한 명은 상무총재, 한명은 재무총재이다. 전자는 시장, 판매, 제품등 외부전략을 책임지고, 후자는 모두 독일인이 담당하는데, 재무리스크관리를 하고, 직접적으로 독일본사에 보고한다. 부서의 매 비용처리는 모두 재무총재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광고비용, 시장판촉활동등등.

 

2004년, 하이얼핸드폰이 중저급제품에 대하여 북경에서 3일간의 판촉활동을 했는데, 지멘스핸드폰의 중국측 영업인원이 예산이 50만위안에도 못미치는 방안을 내놓고, 회사의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상급에 보고된 후 1주일이 지나도 답변이 없었다. 나중에 상무총재는 승인했지만, 재무총재가 "진정한 시장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거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유사한 경우는 지멘스핸드폰의 중국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다.

 

온건한 것은 지나쳤고, 기민한 것은 부족했다. 시스템의 문제는 지멘스로 하여금 겨우 약간의 좋은 날만 보내고, 뒷힘이 부족하여, 시장이 위축되는 불리한 지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핸드폰업계가 모두 고속으로 발전하는 와중에서 지멘스는 좋은 기회들을 모두 흘려보냈다.

 

넷째, 제품혁신이 조류를 따르지 못하였다.

 

외관설계건 내부공능이건 지멘스핸드폰은 엔지니어의 사고에서 개발을 진행하였다. 소비자의 수요를 알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왕왕 조류의 낙오자가 되었다.

 

2000년 지멘스는 북경에서 소규모의 연구개발기구를 만들었는데, 이 곳에서는 전체설계의 임무는 담당할 수 없었다. 그저 독일본사에서 생산한 완성품을 중국시장에 가져와 판매하는 것만 할 뿐이었다. 당시 시장에서 천편일률적인 네모만 제품에 비하여, 지멘스의 원호형 설계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키보드도 간단하며, 색깔도 화려하였으며 손에 느끼는 감각도 좋아서 인기를 끌었다. 지멘스 핸드폰의 친화력은 당시 적지 않은 청소년들을 유인했다. 그래서 시장점유율도 오르고, 모토롤라와 노키아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일시간의 판매호조는 지멘스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그는 원호형의 스타일이 오랫동안 소비자의 인기를 끌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어지는 이년동안 중국핸드폰시장은 더욱 세분화되고, 핸드폰설계가 가볍고 얇은 것으로 가고, 소프트웨어는 오락화하고, 지능화하고, 사진기능도 들어가며, 폴더형등이 나타나 추세를 이루었는데, 지멘스는 그저 몇개의 새 모델을 내놓을 뿐, 여전히 둥근 양식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모두 스틱형이었다. 그래서 지멘스가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은 품질은 일류이나, 스타일은 구식이라는 것이었고, 자연히 패션을 추구하는 핸드폰소비족들에게서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된 것이다.

 

2003년, 지멘스는 "핸드폰은 이미 패션이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발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이 한 해동안 지멘스가 내놓은 화장거울이 달린 휴대폰, 개성화가 큰 Xelibri시리즈 핸드폰이 있었으며, Swatch시계처럼 성인들의 장식품이 되고자 하였다. 지멘스의 사고방식으로 "Xelibri는 현재의 핸드폰시장을 와해시키고 이동전화는 패션악세사리가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지멘스가 먼저 내놓은 Xelibri핸드폰은 즉시 시장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쉬운 것은 Xelibri핸드폰에는 결함이 있었다. 흑백모니터와 공능부족, 질감이 좋지 않은 것등이다. 그래서 악세사리핸드폰은 많은 패션주의자들의 눈에 하나의 "계륵"이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Xelibri핸드폰은 강호에서 사라졌다. 이후, 지멘스핸드폰은 다시는 사람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핸드폰시장의 경쟁은 아주 치열하다. 핸드폰의 교체기간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멘스의 반응은 늦었다. 신형핸드폰이 시장에 나오는데 경쟁업체들보다 반년에서 1년이 늦었다. 지멘스의 혁신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2004년 지멘스가 신청한 특허는 5000여건이고, 지멘스의 중국 R&D센터에서 인원수도 핸드폰업체중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런 것은 지멘스의 제품혁신의 장점으로 변환되지 못했다. 연구개발설계와 제품출시까지 지멘스 핸드폰은 개략 1년반이 걸렸다. 노키아, 삼성은 대체로 반년에서 1년이 걸렸다. 중국내 핸드폰업체는 몇 개월 정도이다. 생산주기가 이렇게 긴 것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멘스는 품질을 엄격하게 통제하므로, M55를 출시하기 전에, 외각의 색깔도료만 수백번 시험했고, 다시 다른 시험을 했다. 이 핸드폰의 개발주기는 9개월여가 연기되었다. 시장에 나오자 마자 동일한 유형의 다른 회사제품보다 낙후되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 원가도 내리지 못했다. 이외에 중국측 연구개발인원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더라도, 반드시 독일본사의 심사허가를 받고서야 진행되는데, 이것은 신제품의 출시시간을 늦추었을 뿐아니라, 독일인의 심미안과 중국시장의 방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도 있었다.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현대에 지멘스의 시장반응속도른 항상 다른 사람보다 반박자가 늦었다. "칼라모니터휴대폰, 카메라폰, 3G폰"등 하나하나의 기회를 지멘스는 놓였다. 최종적으로 그들의 광고구호에서 말하던 "혁신자"와 "선도자"가 되지 못하고, 노키아 모토롤라의 뒤를 쫓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심지어 금방 후기지수인 삼성에게마저 추월당하고 말았다.

 

다섯째, 채널을 유효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지멘스 핸드폰이 중국에 진입한 후, 명기에 매각하기까지, 그들은 계속하여 제대로 된 판매채널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채널건설에서 지멘스핸드폰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발전한 중우, 보태등 몇 개의 총대리상들을 찾았고, 이들은 핸드폰업계의 대리점의 거두들이며, 지멘스핸드폰이 초기에 성공을 거두는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지멘스는 엄격한 관리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이 몇 개의 대리점은 임무를 달성하기 위하여, 서로 가격을 낮추고 물건을 밀어내서 전국의 가격체계에 혼란을 가져왔다. 판매상의 이윤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다보니, 지멘스핸드폰에 그다지 열정을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지멘스는 2003년 주력기종을 SL55를 내놓았는데, 덮개가 미끄러지는 설계와 예쁜 외형은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채널과 가격혼란은 판매에 영향을 주었다.

 

2003년, TCL, Bird등의 중국산 핸드폰이 스스로 채널을 갖추고 신속히 일어났을 때, 지멘스는 대리상에 의존하는 폐단과 국산브랜드의 자체통로의 위력을 깨달았다. 이리하여 전국대리의 구조하에 성급과 지구대리상을 증설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너무 늦었고, 동작이 너무 작았다. 판매구조의 변경은 관리체계의 완비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멘스핸드폰의 중국지역판매책임자는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지멘스는 대리상을 대체하여 자신이 판매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대리상과 일종의 묵계가 형성되었다. 지멘스는 시장의 불안정요소를 보면서 최대한 채널을 세분화하려고 했고, 채널의 하부조직을 뚫으려고 했다. 다른 측면으로, 지멘스는 가전판매세력인 소녕, 국미등의 힘을 빌어 새로운 제품공급을 함으로써 단일채널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2004년, 급격히 하락하는 시장점유율과 혼란한 채널로 인하여, 지멘스는 국내핸드폰판매채널이 가장 완비되었던 Bird회사와 합작하여 실력을 키우려고 기획하였다. 2004년에서 2005년까지 Bird의 네트워크우세를 이용하여, 지멘스핸드폰은 중국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6% 내지 7%까지 끌어올렸다. 지멘스의 생각으로는 그들이 500만유로를 투입하여, Bird의 전국 16000개 판매망에 대하여 제품과 판매대를 만드려고 하고, 다시 500만유로를 투입하여 Bird의 다른 판매네트워크에 대하여 제품과 판매대를 만드려고 하였다. 모든 업무는 2005년중순에 끊낼 예정이었다. 사정은 그러나 Bird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이익이나 인식상의 원인으로, 쌍방의 충돌은 계속되었다. 반년이 지난 후, 지멘스 핸드폰의 시장판매량이 호전되지 않고, 지나치게 Bird에 의지하게 되자, 지멘스는 최종판촉요원을 전부 잘라버렸다. 그리하여 원래 연약했던 채널이 더욱 취약하게 되었따. "Bird-Simmens연맹"은 결국 와해되었다. 지멘스핸드폰은 할 수 없이 이미 버렸던 채널을 다시 수습해야 했다. 개략적인 추산으로, 이 합작에 투입한 것은 많았지만 얻은 것은 적었다. 핸드폰 1대를 팔 때마다 지멘스는 수십위안씩 손해를 봤다.

 

지멘스핸드폰은 채널이 계속 변화한 것으로 인하여 결국 판매상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지멘스가 핸드폰사업을 매각하기 몇달 전에 적지 않은 채널들은 이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2005년, 노키아, 모토롤라, 삼성등 국제 핸드폰 거두들이 맹활약할 때, 원래 같은 진영에 속했던 지멘스는 "어쩔 수 없이 팔아버려야 했다" 지멘스 핸드폰의 몰락은 중국기업에 적지 않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지멘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한가지 원인으로 인한 것은 아니고, 전략의 실패이며, 시스템의 경직화, 현지화부족등의 종합적인 결과이다. 특히 본토핸드폰기업에게 있어서는 절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충분히 자신의 기민한 우세를 이용하고, 시장을 이해하고, 포지셔닝을 정확히 해서, 소비자의 수요에 재빠르게 응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에서 살아남고, 계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