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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정성공)

"시랑(施琅)"과 "정성공(鄭成功)"의 역사대결

by 중은우시 2007. 1. 22.

작자: 주대가(朱大可)




 

국가주의(國家主義)와 민족주의(民族主義)의 유구하면서도 견고한 연맹은 결국 대파국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가치분열의 화근은 바로 TV드라마 <<시랑대장군(施琅大將軍)>>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정성공의 부하였다가 배신한 장군 시랑을 애국주의영웅의 이미지로 그려냈다. 제4세대유학자들은 <<시랑대장군>>이라는 드라마를 만든 이유는 바로 '최고위층으로 하여금 대만문제를 해결하는 의지력과 결심을 강화시키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대륙의 지식인들은 이처럼 견고한 '국가주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 국가주의의 역사적인 논리는 바로 중국역사상의 모든 정통국가를 승인하도록 요구한다. 즉, 하상주, 진한위진에서 원명청의 왕조계보를 모두 승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정통계보에 들어가 있는 왕조는 모두 합법적인 정권이므로 모두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바로 그들이 현대의 중국에 국토, 인민을 포함한 정치적인 유산을 남겨주었다고 본다. 이뿐아니라, 이 논리에 따르면, 전통국가의 국토와 인민의 상황은 바로 정치를 평하는 기본적인 척도가 된다 .국가주의는 이를 위하여 자기의 첫번째 철칙을 만들어낸다: "무릇 국토강역을 지키거나 확장하는데 유리한 행위를 한 것은 모두 "국가적 영웅"이다. 반대가 되면 바로 "국가적 죄인"이다. 정성공의 부하인 시랑이 정치적으로 명예회복을 한 것은 바로 이 제4세대유학자들이 이런 철칙을 세웠기 때문에 도출된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국가주의도 종족문제에 있어서 엄청난 곤경에 처해 있다. 즉, 어떻게 외침민족과 본토국가정권을 구분할 것이냐는 것이다. 국가주의는 이를 위하여 두번째 철칙을 정했다. 그리하여, 첫번째 철칙의 논리적 결함을 보완하고자 한다: "이민족이 중원을 점령, 통치하기 전에 '타자'에 대하여 행한 일체의 항거활동은 모두 애국행위로 본다" 굴원, 악비, 문천상과 사가법은 이에 의하여 국가영웅이라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단 외족이 민족정복과 국가승계를 완성하고 난 이후, 즉, '타자'가 '자아'로 변환된 이후에는 합법적인 통치자이므로 이후에 발생한 어떤 항거활동도 모두 반역과 분열로 보는 것이다.

 

이 '타자'의 '자아'로의 전환과정을 국가주의자들은 통상적으로 '민족융화'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이 국가주의의 공간신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즉, "가능한 한 넓은 토지를 차지하고 더 많은 인민을 획득한다" 모든 성공한 정복자 예를 들어, 진시황, 한무제, 강희는 모두 국가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숭앙을 받는다. 그러나, 국토를 잃었던 황제는 무자비하게 비판받고 조롱받는다. 국가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욕은 "매국적(賣國賊, 우리나라의 매국노에 해당)"이며, 가장 높은 명예는 바로 "애국주의자(愛國主義者)"이다.

 

오삼계(吳三桂)에 관련한 정치적인 평가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즉,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오삼계가 명나라정부를 반역한 것이 먼저 있었고, 청나라 정부가 완성되고 권력승계가 완료된 후, 다시 운남에서 거병하여 청나라 정부에 반역한 것이 나중에 있었다. 이것은 두번 모두 국가에 대한 반역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에서 두번에 걸쳐 반역자로 심판받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주의의 두번째 철칙은 첫번째 철칙과 서로 모순된다. 첫번째 철칙은 국토신념과 정치지리학적 논리에 근거한 것이고, 두번째 철칙은 정치권력승계(국호확정과 권력합법화)를 도덕전환의 분기점으로 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애국'과 '반역'으로 구분한다면 이것은 국가정의(침략과 피침략, 점령과 피점령, 도살과 피도살등등)의 공리적인 상식과 충돌되게 된다.

 

이것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민족주의의 역사논리이다. 민족주의는 단지 한 개의 철칙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한족(漢族)"이 통치자인 경우는 정통국가이고, 이민족이 ㅊㅁ입한 것은 '침입자' 또는 '불법정복자'로 보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시각에서는 민족의 '타자'는 절대로 '자아'로 전환될 수 없다. '타자'는 영원히 '타자'이다. 그래서 그가 등극하고 최고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여전히 후안무치한 침략자이고, 반드시 반항하여 전복시켜야 하는 대상이 될 뿐이다. 민족주의자는 한족이라는 종족을 강경하게 보호하려는 사람들이고 한족의 동북아지역에서의 지배적인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종족의 순수성을 자시의 핵심신념으로 삼는다. 민족주의자의 가장 심한 욕은 '漢奸, 우리나라의 민족배신자와 비슷함)'이고 가장 최고의 명예는 '민족영웅(民族英雄)'이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국토에서 국경의 개념은 서로 다르다. 국가주의의 제1철칙에 부합하는 민족주의원칙에 의하더라도, 제2철칙과는 반드시 격렬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굴원, 악비와 사가법등의 사람들의 항쟁은 정치분계선전에 일어났다. 그래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간에 아무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정성공의 항쟁행위는 이 분계선이후에 발생했다. 즉,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운 이후에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정성공에 대하여는 국가주의와 한민족주의간에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국가주의 사학자의 애매한 입장으로 인하여, 이러한 이견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고 드러나지 않았다. 역사문헌을 뒤져보면 그러나 금방 알 수 있다. 주류사학자인 범문란과 곽말약의 서사입장이 매우 애매하다는 것을. 정치통일전선의 책략에서 살펴보면 북경은 이러한 애매한 입장을 유지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로 인하여,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경계선은 계속 애매하였고, 쌍방이 전문으로 쓰는 용어들도 각자 혼용되어 쓰였다. 예를 들면, 국가주의에서는 민족주의에서 사용하는 '민족영웅'이라는 말과 '한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여 국가반역자들을 비난했다. 민족주의자들도 '애국주의'라는 말로 자신들의 신념에 맞는 열사들을 추모했다. 이런 용어의 상호사용은 관방사학계에서 가치혼란의 한가지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드라마 <<시랑대장군>>은 마침내 이 이견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제4세대유학자들로 대표되는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자들의 '종족주의'와 '대한족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복건성출신 학자들과 민족주의 네티즌들은 연합하여 국가주의자들을 '한간'으로 성토하였다. 정성공일파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시랑일파를 옹호하는 사람들간의 '내분'은 이미 더 이상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중국의 화교사회의 역사적인 신념은 '반청복명(反淸復明)'의 정치적인 기반이었다. 남양의 제1대 화교는 정화함대의 사병과 명나라 제국의 정치적인 이민자들이었다. 그리고, 제2대회교는 청나라 정부의 박해를 피해간 복건/광동의 농민이었고, 이들은 강렬한 반청복명의 신념이 있었다. 이를 기초로 건립된 '홍문(洪門)'조직은 전세계로 퍼져갔고, 화교사회의 권력중심이 되었으며, 손중산등 근대혁명당의 발육에 요람을 형성했다.

 

하문의 고랑서(鼓浪嶼) 해안에는 정성공의 거대한 조각상이 비바람속에 여러 해를 우뚝 서있다. 현지의 주민들과 해외화교들의 경모의 대상이 되어있다. 대만에 있는 대륙으로부터의 이주자들은 대부분 정성공이나 그 부하의 후예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성공과 한족 조상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신분에 대한 하나의 정신적 지주이다. 정씨에 대한 배신자인 시랑에 대한 도덕적인 명예회복은 정성공의 '민족영웅'으로서의 신분을 뒤집었을 뿐아니라. 대만과 해외민족주의자들의 핵심가치를 뒤흔들었다. 이로 인하여 정치적인 자아의식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제4대유학자들이 발동한 '티비드라마전쟁'은 엄중한 역사적인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