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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언어

만주어: 소멸위기의 언어

by 중은우시 2007. 1. 19.

사라져가는 언어 만주어

 

흑룡강성당안관(黑龍江省당案館, 당안은 '보존자료'라는 의미임)에는 약 60톤에 이르는 만주어당안이 한쪽 귀퉁이에 있다. 이 먼지쌓인 역사문헌에는 언어학자가 번역하지 못한 중요한 역사문화정보를 많이 담고 있을 것이며, 아마도 머지 않은 장래에 풀수 없는 수수께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만주어 언어문자연구는 이제 막 학술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있다. 학자 곽맹수(郭孟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언어의 소멸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언어의 소실은 일종의 비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06년도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흑룡강대학은 제1기로 만주언어문화의 본과생을 뽑았다. 학자들은 만주어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노력을 하고 있다.

 

만주어의 고향 삼가자(三家子) 

 

삼가자촌은 흑룡강성 부유현(富裕縣) 달만가우의향(達滿柯友誼鄕)에 있으며, 치치하얼시에서 40여킬로미커 떨어져 있고, 제넌철로가 동쪽으로 지나가며, 서쪽은 유명한 넌강 강투(江套)이다.

 

2005년 8월, 디지탈카메라, 디지탈녹음기, 디지탈촬영기를 든 일군의 학자들이 삼가자촌에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흑룡강대학 만족어언문화연구중심 조아평(趙阿平)교수가 있었는데, 그는 이 '만주어기지', '만주어연구활화석'에 몇번을 드나들었는지 모른다.

 

언어가 종이에 기록된 것은 죽은 것이다. 그저 언어로 되어 사람의 입에서 나와야 활력이 있는 것이다. "천(天)은 어떻게 읽는가? '방조(幇助)'는 어떻게 말하는가?" 대량의 만주족문자를 알고 있는 학자들은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몰려있었다. '선생'은 모두 70이 넘은 노인들이다.

 

국내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중국에 있는 근 천만의 만주족인구중에서 만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100명이 되지 않는다. 전국에서 겨우 흑룡강성 부유현의 삼가자촌 및 흑하지구등 일부의 만주족 마을메서 일부 만주족노인과 소수의 중년인들만이 만주어를 말할 수 있다.

 

흑룡강성만주어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삼가자촌은 국내만주어연구의 '활화석'이다. 만주어의 쇠락추세는 이미 가속되 되고 있다.

 

2002년의 조사데이타에 따르면, 당시 전촌에서 아주 유려하게 만주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3사람이 있었고, 호적인구총수의 0.29%였다. 알아들을 수 있고, 대부분의 만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15명이었고, 전체 인구총수의 1.45%였다. 그런데, 만주어를 비교적 잘하는 사람중에는 절대다수가 50세-70세의 사람들이고,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86세였다. 최근 몇년동안의 계속되는 조사에 따르면 노인들의 만주어회화능력은 점점 퇴화되었고, 지금은 이미 만주어로 민간설화, 전설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상호간에 만주어로 대화하는 것도 내용에 한계가 있고, 아주 간단한 일상생활용어만 쓸 뿐이다.

 

청나라때는 전국에서 사용하였다.

 

만주어는 중국역사상의 소수민족언어로서 청나라때는 전국에 사용을 추진하였었다.

 

상당한 역사시기동안 만주어는 구어만 있었고, 문자는 없었다. 후금시대가 되어서 만주어의 문자는 건주여진의 학자가 몽고어의 문자를 빌려서 한자한자 이어서 쓰게 되었다. 만주어는 전승과정에서 아주 독특한 학습방법을 형성했는데, 바로 화홍(畵紅)이라는 것이다. 즉, 서면글자를 배울 때, 단어의 옆에 붉은 붓으로 각종 표호, 부호, 중음점을 부가하는 것으로 학생은 책을 보면서 말은 구어로 하는 것이다.

 

'국어'로서 만주어는 일찌기 중국의 문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그 영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조아평교수에 따르면, 현대구어중에서 많은 단어들 마마후후등은 만주어에서 왔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 '홍루몽'의 언어가 별다른 맛이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대량의 만주어가 끼어들었고, 당시 만주인들이 말하는 한어의 습관이 끼어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나라후기가 되면서, 만주어는 '국어'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사람들은 학령기가 되면 만주어를 외국어로 배웠고, 대다수의 만주족귀족들도 만주어를 버렸다. 신해혁명후에는 만주어학습이 폐지되었다.

 

이십년간 흑화(黑話)로 존속

 

최근 200년간 만주어의 사용범위는 놀랄 정도로 줄어들었다. 청나라 말기에 이미 동북의 만주족거주지일대로 한정되었다. 건국후에는 극좌사조의 영향으로 만주어의 원류도 전대미문의 타격을 입었고, 최근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조아평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950년대이전에 삼가자촌의 중노년인 및 청년들은 본민족의 언어로 교류했다. 만주족에 시집온 한족부녀들이나 만주족아가씨를 맞이한 한족들도 만주어를 할 줄 알았다. 어떤 노인은 만주어를 볼 줄 알았고, 만주어로 편지나 간단한 글들도 썼다. 그러나, 1950년대말이후, 어떤 사람들이 만주어를 '흑화' 내지는 '낙후언어'로 얘기하고, 심지어 한어를 모르고, 한어를 말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자기 민족언어만 말하는 사람을 '흑오류분자(黑五類分子)'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많은 만주족으로 하여금 감히 자기 민족의 언어를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저 집안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몰래 자기들끼리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대말이후에 진행된 극좌정치운동은 만주족들로 하여금 본민족의 문화와 언어에 대하여 아주 소극적인 심리가 되도록 만들었다. 1960년대말이 되면서, 만주족들의 의식에는 한족언어를 배우고 한어를 말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로 되어 버렸다.

 

이렇게 하여 1950년대말에서 1980년대초의 20여년의 기간동안 삼가자만주족촌에서는 놀랄 속도로 한어화의 변화를 겪게 된다.

 

1980년대이후 삼가자촌의 농민은 새로운 생활을 맞이한다. 그들은 스스로 만주어를 다시 쓰기 시작하고, 어떤 노인은 자기의 아이들에게 만주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비록 이렇게 하였어도, 만주어를 얘기하는 인구는 많이 감소했고, 많은 만주어의 표현방식은 이미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개혁개방후 보호하기 시작

 

만주어를 보호하고, 만주족의 역사문화를 보전하기 위하여 최근들어 관련부서와 언어학자들은 많은 업무를 하였다. 개혁개방후, 만주어전문가인 목엽준(穆曄駿)을 대표로 하는 흑룡강학자들은 여러차례 삼가자촌과 흑하등지에 언어조사를 실시하였고, 만주어에 대하여 분류, 기록, 정리를 시작했다.

 

1983년 3월, 흑룡강성정부의 비준을 받아, 흑룡강성에 중국내 첫번째 만주어연구소가 건립된다. 이것은 만주어 연구의 단계를 한 단계 승격시킨 것을 의미한다. 1999년 11월, 만주어연구소는 흑룡강대학에 편입되고, 흑룡강대만주족어언문화연구센터로 개편된다.

 

2000년, 국무원학위위원회의 비준을 받아, 만주어연구센터는 만주족어언문화학석사학위를 부여할 수 있게 도다. 국내외에 학생모집을 한다. 현재까지 이 전공에 모두 4기의 석사연구생이 배출되었고, 박사과정까지 모집할 수 있도록 신청하였다.

 

하얼빈사범대학역사학과를 졸업한 조아평은 1996년 만주어연구소 소장이 되었고, 그녀의 노력하에, 만주어연구소는 적극적으로 국내외학술계와 교류협력을 시행한다. 그리고 5개의 국제합작만주어연구프로젝트를 완성한다.

 

근 백년동안, 만주족어언역사문화는 이미 국제학술계의 관심을 널리 받고 있다. 근 20년동안, 전세계 23개 국가의 모든 전문가학자들이 만주족어언역사문화를 연구한다. 일본, 한국등도 많은 인력과 경비를 이에 투입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의 만주어연구는 자금이든 인원이든 매우 박약하다. 조아평교수의 소개에 따르면, 중국의 만주족언어역사문화연구는 비록 국제적으로 선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만주어번역, 정리와 연구인원은 상대적으로 모자라고 이 거대한 공정에 비추어보면 아주 결핍되어 있다. 현재 전문가가 100명을 넘지 않고, 경비도 부족하며 국내의 중요한 연구기지인 만주어연구소에도 겨우 10명정도가 있을 뿐이다.

 

만주어는 소멸할 수밖에 없는가

청나라 268년의 역사중에서 많은 만주어당안사료를 가지고 있다. 전국에서 현재 보관하고 있는 만주어자료는 200여만건이다. 그 중 흑룡강성당안관에서 보존하고 있는 것은 거의 60톤에 달한다. 그 내용은 정치, 경제, 문화, 군사, 외교, 종교, 민속, 천문, 지리등 각 방면에 걸쳐 있다. 이처럼 번잡한 진귀한 사료는 고금의 사회학과의 여러 연구에 모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만일 이런 진귀한 사료를 번역해내려면, 100명이 100년간은 매달려야 한다. 그러나, 현재 만주어서면어를 한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50면이 채 되지 않는다. 서면어에 아주 정통한 사람은 20명도 되지 않는다. 만일 만주어를 잃어버리면, 많은 청나라의 역사적사실도 다시는 그 비밀을 풀 수 없게 될 것이다.

 

"문자는 기록을 통하여 유전될 수 있지만, 언어는 말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멸망한다. 만일 적시에 구하지 않는다면, 일단 만주족노인들이 죽고나면, 만주족구어는 역사에서 소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중화민족문화재산과 세계문화유산에 커다란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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