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시기인 1973년에 중국의 외교부서에서는 소위 "아테네사건"이라는 것이 벌어졌었다. 주은래는 당시 국무원 판공회의상에서 아주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에 워터게이트가 있다면 우리는 아테네게이트가 있다. 이것은 신중국외교사상의 특대 스캔들이다. 반드시 엄중하게 조사하여 처벌해야 한다" 아테네사건이라는 것은 당시 중국대사가 외교관계도 없고 적대시하던 이스라엘대사관이 들어갔던 일을 만한다.
1972년 6월, 중국은 그리스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초대대사인 주백평(周伯萍)은 1973년 3월에 취임하였다. 5월 7일 정오, 주백평 대사는 외출에서 돌아왔는데, 대사관지역에 많은 차량이 오가는 것을 보고는, 분명히 무슨 외교활동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통역에게 대사관으로 돌아온 후 '초청장'이 있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였다. 통역은 당직실에서 보고를 받은 후, 그날 정오에 쿠웨이트대사관에서 국경초대회가 있다고 하였으며, 겨우 10분이 남았다고 하였다. 주백평 대사는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묻지 않고, 막 들었던 밥그릇을 내려놓고 차를 타고 문을 나섰다.
첫번째 과오는 여기서 발생했다. 번역은 급한 중에 초청장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당직인원은 영어를 막 배운 때여서 체코대사관에서 온 초청장을 봤는데, 대사의 이름이 쿠웨이크였다. 그래서 이것을 쿠웨이트대사관에서 온 것으로 오인하였고, 날짜를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날짜는 원래 다음 날이었다. 그래서 통역에게 오늘 쿠웨이트 대사관의 초청장이 있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두번째 과오는 주백평 대사가 평상시처럼 스스로 초청장을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운전기사와 통역에게 길을 아느냐고만 물어보았는데, 실제로 누구도 쿠웨이트대사관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대사관ㅇ을 나선 후 차량이 많고 사람이 많은 곳을 경찰의 인도에 따라 갔고,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대사관으로 들어선 것이다.
세번째 과오는 주백평 대사는 쿠웨이트대사도 만난 적이 없고, 이스라엘 대사를 만난 적이 없는데, 문앞에 서서 맞이하는 사람이 쿠웨이트 대사일 것으로 그냥 생각해버린 것이다. 차량에서 내리자 마자 그와 악수하고 국경절을 축하하였으며, 또한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까지 하였다. 그래서 그는 급히 들어가느라 문앞에 달려있는 이스라엘 국기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네번째 과오는 문앞에 서 있던 <<뉴욕 타임즈>>기자는 중국대사가 이스라엘대사관으로 오는 것을 보고는 아주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이 중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정책의 중대한 변화인지를 물어보았다. 그가 물을 때, "이곳"이라고 말했는데, 통역은 이것을 "아테네"라고 번역했다. 주백평 대사는 그 말을 듣고 이것이 공연히 서방기자가 말을 지어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한마디로 면박을 주었다. 그 <<뉴욕타임즈>>기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주백평 대사는 보무도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주백평 대사는 그 일막을 생각하면 후회막급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좀 더 세심하게 그 기자와 얘기를 나누었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잘못 들어온 것이라고 말하고 몸을 돌려 나갔으면 되었을 것이고, 앞서서의 잘못도 아마 보완될 수 있었을 것인데, 주백평대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막 떠나려는 대사들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그가 떠날 때도 다시 이스라엘 대사와 악수를 하고 축하를 해주었다.
주백평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타임즈>>기자가 이미 중국대사가 이스라엘국경절을 축하하러 왔다고 보도하였다는 것도 몰랐다. 당시 국제여론에 둔감했던 중국외교관을 빼고는 모두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다음 날, 그는 체코대사관으로 가서 국경절초대회에 참석했다. 회의상에서 외교관들은 주백평의 태도를 보고 모두 의외로 생각했다. 중국과 우호적이던 루마니아대사는 그의 통역을 데려와서 내용을 얘기해주었다. 통역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으며, 주백평 대사가 물었을 때도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참이 흘러서야 그는 한 마디를 꺼냈다. "대사. 우리 큰 과오를 범했습니다"
자기가 큰 과오를 범했다는 것을 알게 된 주백평 대사는 자연히 가마솥위의 개미와 같았다. 특히 그는 국제무대에서 소위 "반중세력"들이 이미 이 일을 크게 떠벌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중국과 우호관계인 팔레스타인해방조직과 많은 중동의 반이스라엘국가들이 중국에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대사관으로 돌아온 후 즉시 본국에 보고서를 썼다. 외교부는 그를 즉시 귀국하도록 명령했다. 이 일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은 적지 않아서 중국대사관은 졸지에 흉흉해 졌다. 통역은 통곡을 하며 자기가 대사의 앞길을 막았다면서 혈서로 반성문을 썼다. 대사관내에서는 사람을 보내서 그가 혹시라고 사고를 저지를까봐 보호했다.
주백평대사는 며칠 후에 바로 귀국했고, 공항에서 외교부의 영접인원들이 주은래총리가 이 사건은 "특대 스캔들"로 규정했다는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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