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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크라마이화재사건 : "학생들은 움직이지 마라. 간부들이 먼저 가야 한다"

by 중은우시 2006. 12. 20.

1994년 12월 8일, 신강자치주  크라마이(克拉瑪依)시 교육위원회와 신강 석유관리국교육훈련센터에서는 크라마이시 우의관에서 신강위구르자치구 "양기(兩基, 9년의무교육의 기본적인 보급, 청장년문맹의 기본적인 해소)"평가검수단을 위한 문예공연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전시의 7개 중학교, 8개 소학교의 학생, 교사 및 가족과 관련 간부들 796명이 참석하였다.

 

공연과정에서, 18시 20분경, 무대 장막에 등으로부터 불이 옮겨붙었고, 불길은 신속히 실내로 번져갔다. 각종 불에 타기 쉬운 재료들이 타면서 유해물질이 대량으로 배출되었다. 우의관내에 많은 비상문들이 잠겨 있어서 325명이 사망하고, 132명이 부상을 입는 참극이 벌어졌다. 사망자중 288명은 학생이고, 나머지 37명은 교사, 업무인원등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고에 의하면 불길이 막 일어났을 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학생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 간부들이 먼저 나가야 한다(讓領導先走)" 이 말을 했는지에 대하여 정부측면에서 정면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그러나, 많은 당사자들은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가지 다툴 수 없는 사실은 활동에 참가했을 때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불길이 일어난 곳에서 가장 가까웠던 크라마이시의 간부, 교육위원회 간부들 수십명은 모두 살아남았고,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내보내느라 40명중 36명이 순직하였다. 

 

크라마이시는 우의관을 허물어버린 후, 그 자리에 화재기념관을 세워서, 희생자들의 사진등을 진열관에 전시하겠다고 했으나, 아직도 기념관은 건립되지 않았다. 지금은 이 곳이 "인민광장"으로 되어 있는데, 광장에는 그 때의 화재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남아 있지 않고, 소문으로는 한 개당 희생자 1명을 표시한다는 가로등만 300여개 늘어서 있다. 기념관을 짓지 않았을 뿐아니라, 정부측면에서 크라마이화재에 대한 어떤 공식적인 추도활동도 없었다.

 

2006년 초에, 크라마이시의 시장의 이름이 당건(唐健)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동요했다. 바로 크라마이 화재때 "학생들은 움직이지 마라. 간부들이 먼저가야한다"고 외쳤던 사람이 교위 부주임인 당건이었기 때문에, 그가 시장까지 오른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두 사람은 동명이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교위 부주임은 "선주당건(先走唐健, 먼저가야한다고 말한 당건)", 현 시장은 "광장당건(廣場唐健, 광장은 만들고 기념관은 만들지 않은 당건)"으로 나눠 부르고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간부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강석유관리국 부국장 방천록(方天錄), 크라마이시는 당시 20만의 인구를 가진 석유도시였다. 신강석유관리국의 부국장이면 시장급에 해당하며, 당시 현장에 있던 최고급간부였다. 그런데, 그는 비상문을 열도록 지시하거나, 학생들을 피난시키는 것을 지휘하지 않고 그저 자기만 도망치기 바빴다. 그는 불길에 그의 백발이 몇가닥 탔을 뿐임에도, 빠져나가자마자 승용차를 타고 바로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소방서를 지나갔음에도, 소방서에 알리지도 않았다. 그는 직무유기죄로 징역5년을 받았다.

 

둘째, 크라마이시의 부시장 조난수(趙蘭秀), 화재발생시에 그저 한 사람에게 나가서 신고하라고 얘기했을 뿐, 안전문을 열거나 학생들을 대피시키지 않고 자기만 도망치기 바빴다. 그도 직무유기죄로 유기징역 4년6개월을 받았다.

 

(이상 두명은 현장의 최고책임자였다)

 

셋째, 크라마이시 교육위원회 부주임 당건(唐健). 마찬가지로 안전문을 열지도, 학생을 대피시지키도 않고 자기만 도망쳤다. 직무유기죄로 징역 5년.

 

넷째, 신강석유관리국교육훈련중심 당위 부서기 황려(況麗). 마찬가지로 안전문을 열지도, 학생을 대피시키지도 않고 자기만 도망쳤다. 그녀는 우의관의 내부지형에 익숙한 것을 이용해서,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30명이상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의 문을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아무리 울며불며 소리쳐도 열어주지 않았다. 나중에 화장실밖에서 100여구의 학생들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녀는 그러나 "자기는 도피지식이 아주 풍부하다"고 자랑하였다. 직무유기죄로 징역4년.

 

다섯째, 시교육위 보급교육과 과장. 주명룡(朱明龍). 마찬가지 죄명으로 유기징역 4년.

 

여섯째, 시교육위 보급교육과 부과장 조정(趙征). 무대북쪽에 있는 일부 공연학생들만 대피시키고, 무대남쪽의 공연학생들은 돌보지 않았다. 직무유기죄는 인정되었으나, 형사처벌은 면제받았다.

 

(이상 네명은 현장의 공연활동의 책임자였다)

 

아부라티. 카데르 : 우의관 부주임. 중대범죄사고죄로 유기징역 6년

 

채조봉(蔡兆鋒) : 우의관 주임. 화재발생시 출장가 있었음. 그러나 평상시 우의관에 존재하는 불안전요소들에 대하여 방치한 죄(무대 장막이 등에서 23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소방부서로부터 개선명령을 받았음에도 방치하였음)로 화재발생에 직접책임을 부담하여 유기징역 5년.

 

진혜군, 누스라티. 위스프장: 우의관 직원. 우의관내 순회검사를 하지 않았고, 화재발생후 안전문을 열지 않은채 우의관 바깥으로 도망침. 진혜군은 유기징역 6년, 누스라티는 형량은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