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는 당, 송이래로 민간에 전해내려온 일종의 비밀종교결사(秘密宗敎結社)이다. 연원은 불교의 정토종(淨土宗)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정토종의 시조인 동진(東晋)의 석혜원(釋慧遠)이 노산림사에서 유유민(劉遺民)등과 백련사(白蓮社)를 만들어 같이 염불한데서 기원하며, 후인들이 그들을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북송시기에 정토염불결사는 아주 성행하였고, 백련사 또는 연사라고 칭하였다. 남송 소흥연간에는 오군(吳郡)의 곤산(昆山)에서 스님 모자원(茅子元, 법명은 慈照)이 당시 유행하던 정토결사의 기초하에서 새로운 종교문파를 만드니 백련종(白蓮宗)이다. 이것이 바로 백련교이다.
초기의 백련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염불과 계율을 중시했다. 신도들에게 살생하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며, 음란하지 말며, 헛되이 말하지 말며, 술을 마시지 말도록 하였고, 이외에 조상을 잘 모시도록 요구하였다. 이런 점에서 반승반속(半僧半俗)의 비밀단체였다. 백련교의 교의는 간단하고, 경전도 비교적 읽기 쉽게 되어 있었다. 하층백성들이 쉽게 받아들였으므로, 백성들을 조직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 여러번 활용되었다. 원나라, 명나라의 양대에 걸쳐 백련교는 농민반란을 여러번 조직한다. 청나라 초에 이르러서는 반청비밀조직으로 발전하자, 청나라정부로부터 수차례의 피비린내나는 진압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가경원년(1796년)이 되자, 백련교의 난은 당시 규모가 엄청나게 컸던 반란이었다.
가경년간의 백련교의 난은 9년4개월간 지속되었다. 최초에는 주로 백련교도들이 참가하였다. 참가한 사람도 수십만에 달하였다. 반란이 일어난 곳은 사천, 호북, 섬서의 변경지역이었고, 투쟁지역은 호북, 사천, 섬서, 하남, 감숙의 5개성에 달하였으며, 심지어 호남성의 용산현에까지 미친다. 백련교반란군은 9녀간의 전투중에서 청나라 정부의 주, 현, 청, 위등 204개를 점령하거나 함락시켰다. 청나라 정부는 전국 16개성의 병력을 동원했으나, 손실이 매우 컸다. 1, 2급고급장교들만 20여명이 사망했고, 부장, 참장이하의 장교는 400여명이 죽었고, 토호들은 1000여명이 죽었다. 청나라 정부는 백련교의 난을 진압하는데 백은2억냥을 쓴다. 이것은 당시 청나라정부의 5년간 수입에 해당한다. 이로부터 청나라 왕조는 무력이 쇠약하고, 재정이 부족한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며, 신속하게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백련교는 종교개념으로서는 매우 범위가 넓다. 1천여년동안 중국이라는 토지상에서 나타났던 각종 "이단", "좌도", "사교"의 종합세트라고 볼 수 있다. 불교, 도교이외의 또 하나의 중요한 종교가 되는데 중국하층백성들의 생활, 사항, 신앙과 투쟁을 반영한다. 이들은 중국농민전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백련교의 교도들의 주요한 특징은 소향(燒香, 향을 사르는 것), 송게(頌偈, 게를 읽은 것), 미륵불과 명왕을 신봉하는 것등이다. 그들의 경전은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대소명왕출세경(大小明王出世經)>>등이다. 하층백성의 상황을 반영하기 위하여 백련교도들은 "밤에 모였다가 새벽에 흩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입교를 원하는 자는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빈부, 성별, 연령등을 가리지 않았다. 남여노소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가입했고, 남녀가 같이 했다. 명말청초에 이르러 백련교는 점차 교리측면에서 완성되며, 교의도 더욱 체계화된다.
백련교의 교의는 이렇다. 세계에는 두 개의 상호 투쟁하는 세력이 있다. 이것은 명(明), 암(暗)의 두개이다. 명은 바로 광명으로 선량함과 진리를 대표한다. 암은 암흑으로 죄악과 불합리를 대표한다. 이 두개의 방면은 과거, 현재와 미래에 계속 투쟁한다.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온 후, 광명이 최종적으로 암흑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바로 "청양(靑陽)", "홍양(紅陽)", "백양(白陽)"의 삼제(三際)이다. 교도들은 무생노모(無生老母)를 신봉하고, "진공가향, 무생노모(眞空家鄕, 無生老母)"라는 8자진언을 중시한다. 무생노모는 하늘에서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노불(老佛)이다. 그녀는 속세의 사람들을 구원해서 하늘로 데려가는데, 그곳이 바로 진공가향이다. 무생노모는 연등불(燃燈佛),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차례로 세상에 내려보낸다. 그들은 각각의 한 시기에 있어서 인류사회를 통치한다.
청양시기는 바로 연들불이 통치하는 초제(初際)단계이다. 이 때는 아직 천지가 없다. 그러나 명암은 있다. 명은 총명지혜이고, 암은 우매치둔한 것이다.
홍양시기는 석가모니불이 통치하는 중제(中際)단계이다. 이 때는 암흑세력이 우세를 점하고, 광명세력을 압박한다. 이로써 "대환(大患)"이 나타난다. 이로써 공포대겁이 도래하면, 미륵불이 곧 탄생한다. 쌍방의 결투를 거쳐 최후에 광명이 암흑을 몰아낸다.
백양시기는 미륵불이 통치하는 후제(後際)단계이다. 명암이 각각의 자리를 찾아간다. 명은 대명으로 돌아가고, 암은 극암으로 돌아간다.
초제시기는 과거이고, 중제시기는 현재이며, 후제시기는 미래이다. 백련교에서는 교도들에게 백련교를 믿으면, 미륵불의 히호하에 대겁을 벗언 운성(雲城)으로 들어간다. 구제도는 철저하게 폐지된다. 구질서가 무너진 후, 새로운 천년복의 경계가 세우지고, 이때 사람들은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
백련교는 현재는 암흑세력이 우세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륵불이 마침내 세상에 내려오면, 광명이 최후로 암흑을 이긴다고 본다. 그들은 현상을 타파하고, 투쟁하도록 격려한다. 이 점에서 많은 빈곤한 백성들을 끄는 힘이 있다.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고무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종교지도자들이 평소에 경문, 부적, 권법, 좌정, 기공등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등 스승제자관계를 복잡하게 맺어간다.
백련교의 신도는 매우 많다. 주로는 사회의 하층출신들이다. 각파의 내부는 가장제의 통치를 한다. 존비가 분명하고, 등급이 명확하다. 많은 농민반란군의 조직형식은 여기에서 따온다. 원나라 말의 난현을 중심으로 기동과 장성연변은 백련교가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여기에서 전국으로 만연했고, 한산동(韓山童), 유복통(劉福通)이 이끄는 반원 농민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명나라 초 영락연간의 당새아(唐賽兒)가 이끈 농민반란, 명말 천계시기의 서홍유(徐鴻儒), 왕호현(王好賢)이 이끈 농민반란도 일어난다. 이외에 많은 소규모의 농민반란이 있었다. 예를 들면, 명나라 가정연간에 강남 태호유역의 마조사(馬祖師)가 이끄는 농민반란군과 산서, 내몽고 일대의 농민반란군등이 그것이다. 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가경연간, 즉 청나라 중엽에 폭발한 초섬(楚陝)의 백련교 대반란이었다.
백련교의 조직은 청나라때가 되면서, 널리 분포하게 된다. 항하의 상하류, 장강의 남북 곳곳에 모두 존재한다. 특히 직예(하북), 산동, 산서, 호북, 사천, 섬서, 감숙, 안휘등이 가장 활발했다. 각 계층의 인민들도 모두 참여하였는데, 농촌에는 "향약흘교(鄕約吃敎)"가 있고, 도시지역에는 "차역서판흘교(差役書辦吃敎)"가 있었다. 당시 백련교의 문파는 매우 많아서, 청차문교(淸茶門敎), 우팔교(牛八敎), 십자교(十字敎), 분향교(焚香敎), 혼원교(混元敎), 홍양교(紅陽敎), 노군문교(老君門敎), 대승교(大乘敎), 청향교(淸香敎), 팔침교(八針敎), 대양교(大陽敎)등 가지각색이었는데, 이들은 백련교의 지파였다. 백련교가 가장 컸고, 영향도 컸지만, 백련교 내부에도 분파가 있었다. 각각의 교주와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이 매우 복잡했다. 지도자의 명칭도 각각이어서, 조사, 사부, 노장거, 소장거, 장교원수, 선봉 등등으로 불리웠다. 백련교의 이런 조직형식은 비밀전교, 분산활동에 적합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경문을 노래가사로 바꾸어 민간의 음악에 맞추어 북을 치고 죽판을 두드리며 설창하는 방식으로 전교했다.
백련교의 교주와 수령들은 백련교의 경문중에서 암흑에 반대하고 광명을 추구했다. 광명이 반드시 최종적으로는 암흑을 이긴다고 가르쳤다. 대겁이 올 때면 하늘과 땅이 모두 어둡고, 해와 달이 빛을 내지 못한다고 하고, 황천이 곧 죽고, 창천이 곧 살아난다고도 하고, 세계는 반드시 변란이 일어난다고도 했다. 그들은 신도들에게 사해의 모든 사람이 가족이고, 교우관계를 부모형제자매관계와 같이 보도록 했다. 그리하여 신도들 상호간에 서로 도우고 남녀평등을 이루도록 하였다. 이런 구호는 직접적으로 농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절박한 요구였다. 이로써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호소력이 컸고,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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