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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방/북경의 어제

역대 북경시장

by 중은우시 2006. 11. 17.

1. 섭검영(葉劍英)

   

    십대원수(十大元帥)의 일인. 제1기 북경시장. 임기는 매우 짧았음. 1949년 북경시장을 맡은 후 같은 해 가을, 화남분국(華南分局) 제1서기로 가게 되어 많은 간부를 이끌고 남하함.

 

2. 섭영진(聶榮臻)

 

    십대원수의 일인. 섭검영의 뒤를 이어 1951년까지북경시장을 함. 건국초기에는 군사지휘관이 지방정부의 장을 지내는 경우가 보편적이었음. 1992년 사망.

 

3. 팽진(彭眞)

 

    임기가 가장 긴 북경시장. 1949년부터 중국공산당 북경시서기를 지냄. 1951년부터는 1966년 5월까지북경시장을 겸임. 문화대혁명 초기에 북경시당위원회는 "물한방울 스며들지 않고,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 "독립왕국"이었다는 이유로 팽진이 타도됨. 당내외의 모든 직무와 인신자유를 박탈당함. 1983년 6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됨. 1997년 사망.

 

4. 오덕(吳德 1913-1995)

   

    1966년부터 1978년까지 북경시서기 겸 북경시장. 1978년 12월, 북경시제1서기, 시혁명위원회주임의 직무에서 해임됨. 1980년 2월 중앙정치국위원의 직무에서 해임됨. 4월 전인대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사직. 1995년 사망. 그의 유저 <<십년풍우기사-나의 북경에서의 업무의 일부 경력>>이 최근 출판됨.

 

5. 사부치(謝富治, 1909-1972)

  

    호북성 홍안현 사람. 일찌기 홍군에 참가하고 신중국성립후 공안부장, 국무원부총리등을 지냄. 1955년 상장계급을 받음. 문혁기간중에 북경시장을 맡은 적이 있음. 1972년 사망. 1980년 임표, 강청의 반당반국가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당적박탈당함. 1981년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인민특별법정에서 임표, 강청반혁명집단의 주범으로 확인됨.

 

6. 임호가(林乎加)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북경시서기 겸 북경시장

 

7. 초약우(焦若愚)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북경시장

 

8. 진희동(陳希同, 1930- )

 

    사천성 안악 사람. 1948년 북경대학 중문학과. 1953년 북경시제2서기였던 유인(柳仁)의 비서. 1983년 4월부터 북경시장을 맡음 1995년 4월 사직. 중공중앙정치국위원, 중공북경시위서기를 역임. 그의 사직은 당시 북경시상무부시장 왕보삼(王寶森)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짐. 1995년 9월 중공중앙 제14기 5중전회에서 정치국 및 중앙위에서 제적됨. 당적은 보류됨. 1997년 탐오죄와 직무태만죄로 16년형을 받음.

 

9. 이기염(李其炎)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북경시장

 

10. 가경림(賈慶林)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북경시장.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북경시위 서기

    2002년 11월 중공중앙정치국상임위원에 선임. 2003년 3월 제10기 전국정협주석에 선임.

 

11. 유기(劉淇, 1942 - )

    

     1999년 2월부터 2003년 1월가지 북경시장. 2002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북경시위서기. 중앙정치국 위원

 

12. 맹학농(孟學農, 1950 - )

   

     임기가 가장 짧았던 북경시장 2003년 1월 19일 당선, 4월 20일 SARS에 대한 대응을 잘못한 이유로 당내 및 북경시장의 직무를 해임당함.

 

13. 왕기산(王岐山, 1948 - )

 

     2003년 4월, 북경시장대리. 2004년 2월 북경시장에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