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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송)

서하황제 이원호(李元昊)의 후궁

by 중은우시 2006. 11. 9.

이원호(李元昊, 1003-1048). 서하국의 개국황제. 하국(夏國)의 왕 이덕명의 아들이다. 1028년에 회흘을 깨뜨리고, 감주(甘州)를 획득하여 태자에 오른다. 항상 부친에게 송나라에 칭신(稱臣)하지 말도록 요청한다. 1032년 부친이 죽자 왕위를 이어받고, 송나라로부터 정난군절도사, 사평왕에 봉해진다. 하서주랑을 점령하고 1038년에 정식으로 황제로 칭하며 국호를 대하(大夏)로 부른다. 그는 독발령을 내려 당항족의 원래의 머리모양을 하고, 당나라 송나라로부터 받은 성씨를 버리게 하며 원래의 성씨로 회복하게 하였다. 스스로 올졸(兀卒, 푸른 천자라는 뜻임)이라고 칭했다. 그는 서하문자를 만들고, 효경, 얼아, 사언잡자등 한족의 글들을 번역시켰다. 흥경부에 수도를 정했는데, 지금의 녕하성 은천시이다.

 

그는 즉위후에 송나라와 크고 작은 전투를 40여회에 걸쳐서 하였는데, 연전연승하였다. 1040년의 연주지전에서는 송나라 장수 유평, 석원손을 물리쳤고, 다음해의 영천지전에서는 송나라 장군 임복을 죽였으며, 그 다음애 정천채지전에서는 송나라 장수 갈회민의 전군을 몰살시켰다. 전쟁으로 송나라는 위기가 왔으며, 서하국도 오랜 전투로 지쳐 있어, 서로 화해를 도모하게 된다. 그리하여 1044년 다시 화의를 맺는다. 또한, 요나라와도 사이가 벌어져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요나라 군사를 유인하여 남벽에서 대패시키고 그 틈을 타서 요나라와도 화의를 맺는다. 그는 군사적인 재능이 특출났고, 의심이 많고, 흉맹하였다.

 

그의 집안은 이씨성을 당나라로부터 사성받았는데, 원래의 성인 탁발을 써서 拓拔元昊라고도 부르고 혹은 그냥 元昊라고도 부른다. 이원호는 아주 패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후궁이 정확하게 몇명인지는 불명확하지만, 기록상 남아 있는 여인들은 대부분 결말이 좋지 않았다.

 

첫번째 부인 : 위모씨(衛慕氏). 이원호의 생모의 조카딸이다. 나중에 위모산희(衛慕山喜)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원호는 위모씨 일족을 몰살시키고, 생모까지 독사시킨다. 동시에 처인 위모씨도 가두어버린다. 이미 임신중이었던 위모씨가 아들을 낳는데, 당시에 이원호의 다른 후궁이던 야리씨가 들어와 아들이 이원호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하자, 이원호는 위모씨 모자를 한꺼번에 죽여버린다. 이원호는 생모, 처, 아들까지도 죽여버린 것이다.

 

두번째 부인 : 야율씨(耶律氏). 흥평공주(興平公主). 원래는 요나라 종족의 종실녀였다. 당시 요나라의 성종이 그녀를 흥평공주에 봉하고 이원호에게 시집보냈다. 그녀는 나중에 요나라의 황제가 되는 요흥종의 누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결혼은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다. 흥평공주는 스스로 대국의 공주라고 하여 자부심이 강했고, 이원호는 그녀에 대하여 아주 냉담했다. 흥평공주가 병이 들고 병으로 죽어도 이원호는 문병가지 않았을 뿐아니라, 요나라 황실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하여 요와 서하는 사이가 벌어져 이원호는 요 흥종과 혈전을 벌이게 된다.

 

세번째 부인 : 야리씨(野利氏). 헌성황후(憲成皇后). 야리는 서하 당항족의 대족이다. 야리씨는 원래 이원호의 중신 야리왕영(野利旺榮)과 야리우걸(野利遇乞)의 조카였다. 이원호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여 헌성황후에까지 봉한다. 야리씨는 아들 셋을 낳았는데, 장자는 태자가 된다. 그런데, 장자는 이원호와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인자하고 수도하는 것을 종하하여 정선선의 노수황이라는 유명한 도사에게 기공을 배우다가 나중에 기가 역류하여 죽는다. 이후 태자의 지위는 야리씨의 둘째 아들 녕령가(寧令哥)에게 넘어간다. 녕령가는 이원호와 성격이 비슷했다. 그는 몰이씨가 자기의 처에서 계모로 되자 원한을 가지고 있다가. 당시의 국상인 몰장와방(沒藏訛龐)이 그를 부추겨 "네가 부친을 죽이면, 너를 황제로 옹립하겠다"는 말을 믿고, 1048년 1월 15일, 녕령가와 야리낭렬(野利浪烈)은 이원호의 침실로 들어간다. 야리낭렬른 호위무사의 칼에 죽으나, 녕령가는 이원호의 코를 베고 도망친다. 다음 날 이원호는 사망하고(46세), 몰장와방은 누이 몰장씨와 더불어 서하의 대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시군죄(弑君罪)를 물어 황태자 녕령가와 그의 모친인 이미 폐위된 야리씨를 죽여버린다.

 

네번째 부인: 색씨(索氏). 색씨도 서하 당항족의 대족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좋지 않았으며, 색씨는 나중에 이원호에 잘못하여 죄가 겁이나서 자살한다. 이원호는 그녀의 전 집안을 몰살시킨다.

 

다섯째 부인: 도라씨(都羅氏). 역시 당항족의 대족이다. 일찍 죽는다.

 

여섯째 부인: 양미씨(佯迷氏). 역시 당항족의 대족이다. 양미씨는 이원호에게 버림받고 왕정진에서 살면서 아리(阿里)라는 아들을 낳는다. 아리는 성년이 된 후에 모친의 상황을 알고는 마음 속에 한을 품는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나, 동족의 사람이 고발하여, 이원호는 아리를 붙잡아 강물에 빠뜨려 죽이고, 사람을 보내서 왕정진의 양미씨도 죽여버린다. 이원호는 또 처와 자식을 죽인 것이다.

 

일곱째 부인: 몰이씨(沒移氏). 원래는 태자비(太子妃)로 맞이했으나, 이원호의 눈에 들어서 자기의 비로 삼고, 나중에 야리씨를 황후에서 쫓아내고, 몰이씨를 황후로 삼는다. 이 일은 나중에 이원호의 부자간의 원한을 남기는 단서가 된다. 나중에 요나라의 흥종이 이원호의 사후에 다시 서하를 친히 공격할 때, 전쟁중에 몰이씨를 포로로 붙잡아 그녀를 요나라로 데리고 간다.

 

여덟째 부인 : 몰장씨(沒藏氏). 그녀는 당항족의 미녀중의 미녀였다. 그는 두명에게 시집을 가는데, 첫남편은 야리옥걸(野利玉乞)이다. 야리옥걸은 이원호의 세번째 부인의 오빠이기도 하다. 당시 야리부족은 서하에서 가장 세력이 컸었는데, 송나라의 반간계에 걸려 이원호는 야리옥걸을 죽인다. 황후 야리씨는 자기의 오빠를 죽인데 불만이 많았고, 특히 이원호가 몰장씨에 눈독들이는 것이 보기 싫어, 몰장씨를 흥경부 계단사에서 머리를 깍고 여승이 되게 한다. 그러나, 이원호는 사원을 드나들며 그녀와 관계를 가지고 아이를 가진다. 둘 사이에 낳은 자식이 탁발양조(諒祚), 즉 의종이다. 그는 두 살때 황제에 오르고, 모친인 몰장씨와 외숙 몰장와방이 실권을 장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