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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건문제)

건문제(建文帝)의 미스테리

by 중은우시 2006. 11. 1.

건문제는 명태조 주원장의 손자로, 주원장의 사망후 명나라의 제2대황제가 된다. 그러나, 황제에 등극한 후 4년만에 그는 황위를 노리던 숙부인 연왕(燕,王) 주체(나중의 영락제)의 병사들에 의하여 황궁이 포위되고, 건문제는 황제로서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황궁을 불사르라.

 

사서에 기록된 건문제의 죽음에 관한 내용은 아주 간략하다. <<명태종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재하고 있다. "연왕 주체가 인마를 이끌고 궁중으로 쇄도해 들어갈 때, 건문제는 이미 종적을 알 수 없었따. 며칠간의 조사를 거쳐, 최후로 연왕의 병사가 잿더미 속에서 건문제의 시체를 발견한다. 사체는 이미 새카맣게 타있었고, 사지가 온전하지 못했다. 연왕 주체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고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다. 너는 왜 하필 이런 짓을 했느냐.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한 것인데." 그러나, 연왕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 새카맣게 탄 사체를 건문제로 단정하였을까?

 

<<명사>>에서 건문제에 관한 기록은 얼마되지 않는다. 건문제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 주문규(朱文奎)이고 차남이 주문규(朱文圭)이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2살인 차남은 명성조 영락제에 의하여 광안궁에 유폐되어 있다가 명영종 천순연간에 석방된다. 그러나, 건문제의 장남인 주문규는 행방이 묘연했다. 주문규가 도망칠 수 있었다면, 건문제도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명사기사본말>>에서는 건문제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연왕이 남경으로 몰려올 때, 건문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중의 한 신하가 건문제에게 명태조 주원장이 사망시에 그에게 주홍색의 비단갑을 남겼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그에게 바로 열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건문제는 급히 조부가 남겨준 주홍비단갑을 황급히 열어본다. 안에는 가사, 머리깍는 칼과 승려의 도첩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건문황제와 몇몇 충신은 승려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주원장이 지시한 바에 따라 비밀통로를 통하여 궁밖의 신악관으로 도망친다.

 

이러한 비밀통로로 도망쳤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이후 학자들 중에서 비밀통로를 찾으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명사고증>>이라는 책에서는 "궁중에 통로를 만들어 토성밖으로 통하게 하였다 높이가 1장2척, 넓이가 팔척이어서 사람과 말이 지나가기에 충분했다"고 적고 있다. 1978년에는 태평문 안의 남경강좌라는공장에서 건물을 신축할 때, 지하통로를 발견한다. 높이는 2미터50센티미터 넓이는 2미터정도였다. 발견한 곳이 명나라 황궁의 근처였다. 만일 건문제가 도망쳤다면 아마도 이 지하통로를 통해서 도망쳤을 것이다.

 

최근들어서는 스스로 건문황제의 후예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남경의 양경광(讓慶光)이라는 84세된 노인은 자신이 건문제의 후예이고, 건문제는 불에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족보를 내놓았는데, 족보에는 건문제가 남경을 도망쳐나와서 이름은 양란(讓鸞, 금란전이 황제의 상징이니 황제의 지위를 양보했다는 의미로 보임)으로 고치고, 호남, 호북일대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경광은 스스로 양란의 15대손이라고 주장했다.

 

영락제가 정화를 동남아,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보낸데 대하여도 해외로 도망쳤을지도 모르는 건문제를 수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영락제가 도사 장삼풍을 전국에서 모셔오도록 명을 내린 것도 사실은 건문제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