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은 중국봉건제도의 산물이다. 봉건왕조의 가장 잔인하고 인도에 어긋난 현상이다. 환관(태감, 내시)은 보통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생존을 위하여 자기의 생식기를 자르고 황궁에 들어와서 황실 구성원들을 모시는 직책이다. 환관이 되면, 사회로부터의 거대한 압력도 있으므로, 봉건사회에서 가장 하층에 속하는 가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몇몇의 아주 행운아인 환관들도 있었다. 위충현이라든지, 이연영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황상등 최고권력자의 총애를 받아서 무한한 권력을 가졌고, 모든 사람들이 들으면 알고 있는 환관들이다.
중국역사에도 외국국적의 환관이 있었다. 바로 고려의 박불화이다. 그는 원나라 문종시대에 태어났다. 박불화는 당시 기황후(奇皇后)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녀로 인하여 관직이 계속 올랐고, 나중에는 고관들까지도 그의 눈치를 보면서 일을 했으니,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고 볼 수 있다.
박불화가 7살때, 우연한 기회에 환관이 되었고, 원나라의 황궁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차를 따르고, 바닥을 청소하고 탁자를 닦는 잡일들을 하였다. 그와 함께 원나라의 황궁에 들어온 어린 아가씨가 있었으니, 이름이 기락(奇洛)이고, 역시 고려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어려서 함께 놀았고, 이 아가씨는 황궁내에서 바느질을 맡았다. 아무 일이 없을 때면 두 어린아이는 함께 얘기하고 고향을 그리워했으며 서로 도와주고, 돌보면서 궁중에서의 힘든 생활을 견뎠다. 몇년이 흘렀고, 기락은 아주 예쁜 아가씨로 성장했다. 원문종의 아들인 토곤테무르는 놀다가 아름다운 기락을 발견하고는 자기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기락은 예뻤을 뿐아니라, 아주 부드럽고 귀여웠었다. 그래서 토곤테무르가 아주 총애하였다. 오래지 않아, 토곤테무르가 등극하였으니 바로 원순제이고, 순제는 기락을 제2황후로 봉했다.
기락이 황후가 되자 비단옷과 좋은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와 같이 고려에서 온 박불화를 잊지 않았으며, 박불화를 자기의 흥성궁으로 불러들였으며, 영록대부로 승진시켰고, 여기에 자정원사의 관직까지 받도록 하였다. 자정원은 원나라에서 전국의 재정을 관리하는 부서였으므로, 돈을 짭짤하게 만질 수 있는 부서였다. 기황후는 이런 좋은 자리를 박불화에게 맡긴 것이다. 박불화는 차츰 재산을 모아서 엄청난 거부가 되었고, 기황후에게도 상당히 많은 자산을 나누어주었다. 박불화는 재산을 모으는데 매우 신중하고, 교묘하여 조정에서 눈치채지는 못하였다. 여기에 박불화는 빼돌린 재산을 조정의 고관들과 황친들에게 나누어주었으므로 모두 박불화에 대하여 좋게 말하였고,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박불화는 점점 변해갔다. 재물만으로는 그의 욕심을 다 채워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점점 권력을 엿보기 시작한다. 원순제도 박불화를 매우 좋아하였으므로, 자주 박불화를 보내서 조사시키기도 하고, 구호품을 나눠주게도 하였다. 기황후가 낳은 아들이 황태자로 봉해지자, 박불화는 모든 정성을 황태자에게 쏟았다. 황태자가 먹고 마시고 노는 모든 것을 박불화는 직접 처리했다. 원순제가 정사에 피곤해하고, 그저 성색을 탐하게 된 후에는 군국대사를 황태자에게 넘겨서 처리하게 하였을 뿐아니라, 박불화가 추천한 작사전(綽斯戩)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이 때의 박불화는 이미 권력이 전 조정에 미치는 인물로 성장한 것이다. 관리의 임면뿐아니라, 국가정책의 결정까지도 모두 박불화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다. 박불화는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은 관리들은 강급시키고 내보냈다.
원순제가 박불화의 전횡를 방임하고, 작사전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자, 조정내외에서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내의 군벌세력들은 기회를 틈타서 반란을 일으켰다. 군벌세력들은 세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궁정내의 권력투쟁에도 가담하였다. 일시에 천하는 어지러워 졌다. 황태자는 하루라도 먼저 황위에 오르고 싶어 했고, 국가의 정세가 다급한 것을 보고는 부친을 핍박하여 양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황후, 작사전, 박불화등도 모두 황태자의 계획에 찬동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사전에 원순제에 의하여 발각되었고, 이 몇몇은 조정대신들로 부터 탄핵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원순제는 박불화와 작사전을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이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불로드 티무르는 황태자가 북경을 떠난 틈을 타서 박불화와 작사전을 죽여버린다.
군벌들간의 혼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남방의 주원장은 이미 적지 않은 세력을 형성하였고, 원제국의 운명을 위협했다. 원순제는 국가의 위기를 접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황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모자가 나의 천하를 망쳤구나. 우리 대원의 강산이 너희 모자의 손 안에서 망하였도다" 원순제는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였지만, 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박불화의 전횡을 방임하였던 것이 결국은 가장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박불화가 죽은지 얼마되지 않아. 원나라도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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