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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그림

중국현대미술의 대표작 : 나중립(羅中立)의 <<부친(父親)>>

by 중은우시 2006. 10. 18.

 

나중립(羅中立)은 1964년 사천미술학원부중을 1등으로 입학하였고, 1968년에 사천미술학원부중을 졸업한 후에 달현에 가서 달주철강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77년 9월에 중국에 대학입학시험이 부활되자, 나중립은 사천미술학원에 입학했다. 그가 <<부친>>을 그리게 된 것은 1979년 대파산의 길가에 있는 공공변소에서 분뇨를 모아가는 농민을 보고서 그 장면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당시 제2회전국청년미술전이 열리기로 되어 있어서 노인을 그린 <<분뇨를 모으는 노인>>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그리는 과정에서 그림의 제목을 <<분뇨를 모으는 노인>>에서 <<나의 부친>>으로 바뀌었다.

 

그림제목이 다시 <<부친>>으로 바뀌게 되는데, 제2회청년미전의 심사위원이었던 저명한 화가 오관중(吳冠中)이 <<나의 부친>>은 범위가 너무 좁은 것같고, 모든 중국인의 부친으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어 화가의 동의를 받아 제목을 <<부친>>으로 변경하게 된다. 이 변경에도 한바탕 소동이 인다. 즉, 당시 농민은 국가의 주인이고, 농민을 그릴 때에는 행복한 모습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렇게 고통에 찌든 모습을 한 모습을 전형적인 중국의 농민, 즉 중국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을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보면, 농민은 머리에 볼펜을 꼽고 있다. 이 부분도 나중에 논란이 일었던 부분인데, 나중립은 옛날 농민이라면 당연히 볼펜을 꽂을 리 없지만, 신중국에 들어서는 불펜을 꽂는 것이 의미가 있고, 옛날과 현재를 구분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볼펜을 그려넣게 된다. 물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과연 농민의 머리에 볼펜을 꼽고 있는 것으로 그리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하여도 논란이 인다.

 

어쨌든 이 그림은 1980년 12월 20일에 제2회전국청년미전에서 참가작품 543점중에서 당당히 금상(최고상)을 차지한다. 관중의 투표로 정했는데, 800여표를 얻었고, 2위보다 700여표가 많은 결과였다.

 

나중립은 현재 사천미술학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