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후주22

제갈량이 염두에 둔 군사후계자는 누구였을까" 글: 정정(丁丁) 제갈량의 임종전에, 개인의 후사에 대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고, 많은 것은 촉한의 인사안배였다. 정치 방면의 후계자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이 지정한 사람은 장완(蔣琓), 비위(費褘)이고, 사실상 동윤(董允)도 있다. 이들 3명은 제갈량과 더불어 "촉한사상(蜀漢.. 2017. 1. 28.
"황포가신(黃袍加身)"의 세 가지 의문점 글: 문재봉(文裁縫) 현덕7년(960년) 정월 초나흘, 역사상 그 이름도 유명한 "진교병변, 황포가신"의 이야기가 마침내 서막을 연다. 사마광의 <속수기문(涑水紀聞)>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이날 새벽, 아직 꿈속에 있던 조광윤은 그도 무슨 일인지 모르는 사이에, 한 무리의 사람들.. 2015. 6. 16.
장완(蔣琬)의 기도(氣度) 글: 유건명(劉建明) 소위 "기도"는 기실 인품(人品)이다. 비판하는 의견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그 결과는 심히 우려될 수밖에 없다. 장완은 삼국시대의 걸출한 정치가이자 군사가이다. 그는 승상으로 12년간 재임.. 2015. 4. 25.
주세종(周世宗)은 외계인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글: 단전룡(段錢龍) 양한(兩漢, 동한과 서한)이래, 유가문화가 점점 정통의 지위를 차지한다. 비록 고대서적에 귀괴신마(鬼怪神魔)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기는 해도, 정통문인의 글에서는 공자의 말씀에 나오는대로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한다"는 태도를 지켜왔다. 그래서 대부분은 이를 .. 2014. 1. 14.
유선(劉禪) 외도사건: 가정폭력사건으로 불거지다 글: 섭지추(葉之秋) 건흥12년 이월, 즉 234년, 촉한(蜀漢)의 도성에는 조야를 깜짝 놀라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직 미모다 남아있는 중년의 호씨(胡氏)가 남편인 유염(劉琰)을 가정폭력으로 고발한 것이다. 조사를 하다보니, 이것은 당금황제 촉한의 후주 유선의 외도사건으로까지 발전.. 2013. 9. 14.
강유는 어떤 점에서 제갈량만 못한가? 글: 염호강(閻浩崗) 강유(姜維)는 제갈량이 고르고 고른 유일한 적전제자(嫡傳弟子)이다. 제갈량이 제자를 받으려는 마음은 삼고초려에서 나올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여러해가 지나도록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분명 마속(馬謖)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큰 기대.. 2013. 6. 27.
동한말기 가장 유명한 두 백정 글: 이치아(李治亞) 세상의 일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직업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고하의 구분이 있다. 동한말기에 유명한 두 백정이 있다. 시작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 한때 이름을 떨친다. 그리고 최후도 아주 비슷하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 목이 잘렸다는 것이다. 이점은 그들에.. 2012. 12. 22.
남당(南唐): 독살의 역사 글: 축희(祝熹) 중국 형명(刑名)의 시조는 하우시대의 고요(皋陶)이다. 그가 만든 "오형(五刑)"은 사건을 재판하면서 형벌을 가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전통사회에서 법외지형(法外之刑)은 항상 존재했다. 명망이 높은 사람을 죽여야겠는데 형법에 저촉되지 않거나, 궁중의 음모로 적.. 2012. 7. 6.
양신(楊信)의 "사(詐)"와 조한(曹翰)의 "괴(乖)" 글: 안건회(晏建懷) 양신과 조한은 같은 점이 너무 많다. 나이도 비슷하고, 경력도 비슷하며, 최후도 비슷하다. 그들은 모두 군전소졸(軍前小卒) 출신으로 후주(後周)때 아교(牙校)와 같은 하급장교를 지냈다. 그리고 둘 다 송태조 조광윤 및 송태종 조광의를 따라서 전투에 참가한다. 모두.. 2012. 3. 28.
황포가신(黃袍加身): 조광윤은 훌륭한 연기자이다 글: 왕위(王偉) “황포가신”이라는 고사성어는 북송의 개국황제 조광윤(趙匡胤)에게서 유래되었다. 내용인 즉슨 이렇다: 조광윤의 부하가 그에게 황제에 오르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조광윤은 황제가 되고싶어하지 않았다. 부하는 황제가 입는 황색의 곤룡포를 강제로 그에게 입혔따. 조광윤은 어.. 2011.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