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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술조12

송교인 암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글: 대중일보 1913년 3월 20일 밤, 후닝(滬寧)기차역은 평소처럼 사람들로 붐볐고, 인파는 끊이지 않았다.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와 함께, 송교인은 배웅나온 황흥, 우우임 그리고 요중개등과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검표소로 들어갔다. 바로 이 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검.. 2014. 4. 4.
송교인암살사건의 분석 글: 풍학영(馮學榮) 1913년 3월 20일, 송교인이 상해에서 암살당한다. 3월 22일, 송교인은 수술을 받았으나 목숨을 구하지 못하여 사망한다. 이 암살사건에 관하여는 지금까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원세개설, 다른 하나는 진기미설. 필자는 사건이 발생한 당일 상해 각계매체의 이사건 .. 2013. 9. 14.
송교인암살사건: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 글: 김만루 송교인이 암살된 후 크고 작은 관련인물들은 기이한 사망을 맞이했다. "송교인암살사건"은 마치 신비한 저주와 같다. 모든 사람이 벗어나질 못했다. 그리고 기이한 사건의 배후에는 어떤 관련과 이익이 흐르고 있을까? "송교인사건"에 관하여 방회비사성격의 또 다른 해석이 .. 2013. 4. 13.
송교인암살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글: 김만루 "이차혁명"이 발발할 때 응계형은 진기미의 묵인하여 도주한다. 이 일도 얘기하자면 복잡하다. 이때는 송교인암살로부터 이미 반년이 지난 때였고, 사건의 진상도 이미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실행범인 무사영이 이미 죽었고, 또 다른 혐의자인 홍술조는 여전히 도망중이었다... 2013. 4. 13.
송교인암살사건: 조병균 총리가 모살범? 글: 김만루(金滿樓) 상해지방검찰청이 총리 조병균에게 법정으로 와서 대질할 것을 요구했으나, 조병균은 병을 이유로 거절했고 이로 인하여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국민당인이 발간하는 <민립보>에서는 "살인범주범의 이름으로 조병균을 환영한다"는 글을 싣고 조병균이 "만악정부.. 2013. 4. 13.
송교인암살사건: 황흥이 사건에 휘말리다. 글: 김만루(金滿樓) 살수 무사영이 프랑스조계 순포방에서 상해지방검찰청으로 이송되고, 다시 응계형이 구금된 강소해운국으로 이송된 후, 호군 진기울의 부대인 61단에서 감시한다. 1주일도 되지 않아, 무사영은 돌연 군영에 구금된 상태에서 급사한다. 괜찮았던 사람이 그리고 아주 중.. 201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