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광제7

명나라말기의 황제들은 무능했지만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글: 문재봉(文裁縫) 북경대학 교수인 양쿠이송(楊奎松)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는 얼마나 죽기를 두려워했는가"라는 글을 쓴 바 있다. 확실히 부의(溥儀)는 무척이나 죽는 것을 겁냈다. 만주국시기 부의는 죽음을 겁내서 매번 일본 관동군의 고위참모 요시오카 야스나오(吉岡安直).. 2020. 3. 3.
명나라가 멸망한 후, 문신무장들이 대부분 청나라에 투항하고, 왜 남명이나 대순으로 귀순하지 않았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1644년은 중국역사상 아주 특수한 해이다. 바로 이 해에, 276년간이나 존속해오던 대명왕조가 종말을 맞는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는 다시 3개의 주요 세력이 나타나서 중원을 축록(逐鹿)하는 상황이 된다. 이 세 세력은 각각 대청(大淸)정권, 대순(大順)정권 그리고 .. 2019. 1. 12.
이자성은 북경의 실패후 왜 남경으로 가지 않았는가? 글:천애간점(天涯看點) 1644년, 이자성은 산해관에서 패배한 후 북경에서 퇴각한다. 1년도 되지 않아, 이자성의 근거지인 섬서는 청군에 의해 남북에서 협공을 받는다. 이자성은 할 수 없이 대순군을 이끌고 대본영 서안에서 퇴각한다. 처음에 이자성의 생각은 하남을 거쳐 남경으로 가는 .. 2019. 1. 7.
남명(南明)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도화선(桃花扇)>에서 공삼임(孔尙任)은 마사영(馬士英)의 입을 빌어 아주 정확한 시세판단을 한 바 있다: "나라에 변고가 있어야, 우리같은 자들이 뜻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일찌기 여러 사적(史籍)을 살펴봤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분석이 어떤 때는 희극가가.. 2018. 7. 14.
잔회팔염 유여시(柳如是): 가장 기개있는 진회명기(秦淮名妓) 글: 이신강(李新剛)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유여시는 진회팔염(秦淮八艶)의 하나로, 글재주가 있는 기녀일 뿐이다. 그러나 일대의 국학대가이며 두 눈이 거의 실명할 정도였던 진인각(陳寅恪)은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서, 10여년의 시간을 들여 그의 구술을 조수가 .. 2014. 8. 27.
좌량옥: 명나라말기 내부투쟁의 고수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홍광조(弘光朝)의 "남도삼안(南渡三案)"중에서 영향이 가장 컸던 것은 "북래태자안(北來太子案)"이다. 1644년말, 홍려시(鴻臚寺) 고몽기(高夢箕)에게 목호(穆虎)라는 종이 있었다. 그는 북방에서 남방으로 도망쳐 오다가 도중에 한 젊은이를 만나서 두 사람이 동..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