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제 7

명나라말기의 황제들은 무능했지만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글: 문재봉(文裁縫) 북경대학 교수인 양쿠이송(楊奎松)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는 얼마나 죽기를 두려워했는가"라는 글을 쓴 바 있다. 확실히 부의(溥儀)는 무척이나 죽는 것을 겁냈다. 만주국시기 부의는 죽음을 겁내서 매번 일본 관동군의 고위참모 요시오카 야스나오(吉岡安直)..

명나라가 멸망한 후, 문신무장들이 대부분 청나라에 투항하고, 왜 남명이나 대순으로 귀순하지 않았을까?

글: 야독사서(夜讀史書) 1644년은 중국역사상 아주 특수한 해이다. 바로 이 해에, 276년간이나 존속해오던 대명왕조가 종말을 맞는다. 이와 동시에, 중국에는 다시 3개의 주요 세력이 나타나서 중원을 축록(逐鹿)하는 상황이 된다. 이 세 세력은 각각 대청(大淸)정권, 대순(大順)정권 그리고 ..

이자성은 북경의 실패후 왜 남경으로 가지 않았는가?

글:천애간점(天涯看點) 1644년, 이자성은 산해관에서 패배한 후 북경에서 퇴각한다. 1년도 되지 않아, 이자성의 근거지인 섬서는 청군에 의해 남북에서 협공을 받는다. 이자성은 할 수 없이 대순군을 이끌고 대본영 서안에서 퇴각한다. 처음에 이자성의 생각은 하남을 거쳐 남경으로 가는 ..

잔회팔염 유여시(柳如是): 가장 기개있는 진회명기(秦淮名妓)

글: 이신강(李新剛) 사람들의 인상 속에서, 유여시는 진회팔염(秦淮八艶)의 하나로, 글재주가 있는 기녀일 뿐이다. 그러나 일대의 국학대가이며 두 눈이 거의 실명할 정도였던 진인각(陳寅恪)은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서, 10여년의 시간을 들여 그의 구술을 조수가 ..

남명(南明)은 왜 동진(東晋), 남송(南宋)처럼 지속되지 못했을까?

서기1644년(명숭정17년, 청순치원년) 3월 19일, 이자성이 대순군(大順軍)을 이끌고 북경으로 진입했다. 명나라 숭정황제 주유검은 황궁의 북문인 현무문(지금의 선무문) 밖의 만세산(경산)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 그러나, 숭정제의 죽음이 명나라 276년의 통치가 끝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왜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