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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광평6

강청의 전남편 당납(唐納): 신비한 신분의 수수께끼 (1) 글: 하월명(賀越明) 2012년 8월 23일은 당납 선생의 기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꼬박 2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납"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인방"이 타도되면서, 나라를 떠난지 오래되고 이름없이 살아가던 그가 다시 중국인들의 시야에 들어왔고, 보통민중들이 화제로 올리는 인물이 되었다. 일찌기 "사랑때문에 목숨을 버리려 했다" 1970년대말부터 현재까지, 신문잡지에는 당납을 소개하는 글이 적지 않았다. 수가 많아서 일일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총괄해서 말하자면, 이들 글 중에서 이전에 당납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몇몇 언론종사자들의 회고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대부분 포풍착영(捕風捉影)하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베낀 수준이었고, 적지 않은 글들은 .. 2023. 3. 4.
민국 4대 연애편지 글: 가천제기(佳倩帝期) 노신(魯迅)이 허광평(許廣平)에게 보낸 <양지서(兩地書)> 노신은 대명이 자자한 인물이고, 중국에서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광평은 노신의 부인이다. 그리고 노신의 예전 학생이다.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양지서>는 노신, .. 2018. 3. 9.
노신(魯迅)과 곽말약(郭沫若)의 문투(文鬪) 글: 역도선(易道禪) 노신과 곽말약은 문단의 두 숙적이다. 일생동안 만나지 않았지만 서로 계속 싸웠다. 필자는 이 두 사람의 전집이 있다. 기본적으로 진지하게 읽어보았다. 나는 노신과 곽말약 두 사람의 문단에서 싸우는 방법이 아주 재미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신의 소설 및 산문분.. 2015. 2. 25.
노신과 허광평 글: 사비상(史飛翔) 허광평은 노신보다 17살이 어렸다. 1923년 가을, 노신은 친구 허수당(許壽棠)의 초청을 받아, 북경여자고등사범학교로 가서 강의를 한다. 거기서 그는 허광평을 만났다. 처음에, 허광평은 다른 학생들과 같이 노신에 대하여는 그저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점점, 허광평은 .. 2014. 4. 4.
노신의 "편격(偏激)"은 가정혼인불행과 관련이 있다. 글: 조종국(曹宗國) 먼저 설명해야할 것이 있다. 필자가 제목에서 "편격"에 인용부호를 넣었는데, 이것은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는 "편격"은 역사상의 어떤 논자들처럼, 고의로 노신의 비판정신을 편격이라고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노신의 비판정신은 반드시 긍정해야 한다. 그의 비.. 2014. 1. 15.
노신(魯迅)과 주안(朱安) 글: 사비상(史飛翔) 노신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항상 허광평(許廣平)을 떠올린다. 또 다른 적막하게 집을 지킨 여인 주안을 떠올리는 사람은 아주 적다. 주안은 노신의 본부인이다. 그러나, 항상 유명무실했다. 1906년 여름, 일본유학중이던 노신은 집안의 전보를 받는다: "모병속귀(母病速.. 2014.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