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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4대 연애편지

by 중은우시 2018. 3. 9.

글: 가천제기(佳倩帝期)


노신(魯迅)이 허광평(許廣平)에게 보낸 <양지서(兩地書)>


노신은 대명이 자자한 인물이고, 중국에서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광평은 노신의 부인이다. 그리고 노신의 예전 학생이다. 스승과 제자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양지서>는 노신, 허광평 두 사람이 연인관계를 확립하기글 전후하여 두 곳에 떨어져 사는 심경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신이 삭제한 버전만 남아 있다. 그리고 후세에 주해영(周海嬰)이 수권받아 출판한 <양지서.원신(原信)>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노신이 수정을 한 것이다. 고치고 삭제한 것은 놔두고라도, <양지서>는 진실한 노신을 연구하는데 아주 좋은 자료이다.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을 때라면 그다지 거짓이 많이 섞여있지는 않지 않겠는가. <양지서>를 보면, 엄숙한 노신에게도 귀여운 일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은 노신선생의 또 다른 성격을 알 수 있게 된다. 노신은 허광평을 '괴고(乖姑)', '소자위(小刺猬, 자위는 고슴도치)'라고 부르고, 허광평은 노신을 '소백상(小白象)'이라고 부른다. 여러분은 이렇게 천진하고 귀여운 노신을 본 적이 있는가? 거의 금욕적이던 문혁때, 파출백가, 독존노신할 때도, 이 예전의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적은 연애편지집 <양지서>는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서지마(徐志摩)가 육소만(陸小曼)에게 보낸 <애미소찰(愛眉小札)>


민국시대 4대 정서(연애편지)를 비교해보면 가장 매력이 없는 것이 노신과 주상(朱湘)의 연애편지일 것이다. 이치대로라면 주상은 시인이니, 감수성이 풍부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의 유예군(劉霓君)은 이미 그의 처이고, 아이의 모친이었다. 그리고 봉건가족전통에 따라 부모가 정해준대로 이루어진 결혼이다. 주상의 연애편지에는 애정의 아름다움과 진정이 부족하다; 노신선생은 전문적인 '전투가'이다. 그의 연애편지를 읽어보아도 그다지 재미는 없다. 마치 어른이 허광평이라는 어린 학생을 돌봐주는 것같다. 서지마와 심종문은 다르다. 그들 둘은 사랑을 요란하게 했고,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들의 연애편지는 자연스럽고, 신선하고, 진실되고, 감수성있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글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서지마와 육소만의 결합은 쉽지 않았다. 여러 방면의 압력을 이기고 이뤄낸 것이다. 결혼식 현장에서 양계초의 혹독한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아낀다고 여겼다. 단지 장유의(張幼儀, 서지마의 본처)와 왕경(王庚, 육소만의 전남편)은 애정의 희생자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아름다움만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나쁜 점도 보아야 한다. 서지마가 미미(眉眉)라고 부르고, 육소만이 마마(摩摩)라고 부를 때, 하늘아래 다른 편에서는 두 명의 고독한 영혼이 있었다.


심종문(沈從文)이 장조화(張兆和)에게 보낸 <상행서간(湘行書簡)>


중국인들은 중학교때 교과서에 실린 <변성>의 한 대목을 배운 바 있고, 그때 우리는 이 상서향촌의 심종문을 알게 되었다. 심종문의 문장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독자들에게 상서향촌의 아름다운 광경을 하나하나 묘사해준다. 여기에는 진정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여자를 쫓아다닐 대도 자신의 장점을 발휘한다. 진심이 어린 아름다운 문구의 연애편지를 쓴다. 심종문이 바로 그런 전형적인 사례이다. 평생의 연애편지를 썼다고도 할 수 있다. 심종문은 시골사람이고, 장조화는 도시여인이다. 심종문은 자신에게 배우는 학생인 그녀를 한번 보고는 사랑에 빠진다. 이때부터 연애펹의 폭탄세례가 시작된다. 4년에 걸쳐서. 처음에는 장조화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에게 보낸 여러 남자들의 연애편지를 나누어서 청개구리시리즈와 두꺼비시리즈로 나누기도 했다. 심종문은 당시 "두꺼비13"이었다. 청개구리시리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 정도면 전혀 희망이 없다. 그래도 심종문은 4년간 계속한다. 장조화는 결국 무너졌고, 장조화의 부친도 그들의 결합에 동의한다. 아쉽게도 그들이 함께 산 것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나중에 고청자(高淸子)가 나타나고, 정신병도 들고, 둘이 별거했고, 나중에 조화는 심종문이 수시로 보내는 연애편지를 볼 수도 없었다. 다만, 심종문이 장조화에게 보낸 글은 너무 아름다웠다. 예를 들어: "나는 많은 지방의 다리를 지나보았고, 많은 구름을 보았고, 여러 아름다운 술을 마셨다. 그러나 가장 좋은 연령의 사람 한명만을 사랑했다.


주상(朱湘)이 유예군(劉霓君)에게 보낸 <해외기예군(海外寄霓君)>


주상은 반역아이다. 반역으로 청화대학에서 학업을 잃고, 반역으로 안휘대학에서 일자리를 잃고, 반역으로 인생이 절망에 빠져 강물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은 주상이 반항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집에서 정해준 처인 유예군과의 결혼이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하늘이 고의로 일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게 아닌가 싶다.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든게 아닌가 싶다. 시인에게 더더욱 생존압력을 느끼게 하여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주상에게 처가 없었다면, 아이가 없었다면, 그리고 혼자서 먹고살 수 있는 생활을 누렸다면, 그가 자살했을까? 비극적이게도 주상은 가장 선택하지 말아야할 길을 선택했다. 주상이 죽은 후, 유예군은 삭발하고 비구니가 된다. 이 가련한 여인도 선택할 것이 없었다. <해외기예군>은 주상이 미국유학기간동안 처인 유예군에게 보낸 서신이다. 나중에 친구 나념생(羅念生)이 정리하여 출판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주상의 진실한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주상은 비극적 인물이고, 재능이 넘쳐났다. 노신은 그를 "중국의 키이츠"라고 불렀다. 주상의 시는 격률형식을 중시하고, 싯구는 정련되고 힘이 있으며, 장중엄숙하며 인생철학이 담겨 있고, 글자수는 적지만 그 뜻은 유원하다. 그의 시 <유억(有憶)>은 더더욱 문일다(聞一多)가 말한 삼미의 경지를 얘기한다. 결국, 주상의 재능을 다 펼쳐보기도 전에, 주상은 떠난다. 나념생은 이렇게 말한다: 영국의 키이츠가 죽지 않았듯이, 중국의 키이츠도 죽지 않았다." 만일 주상을 알게 된다면 그의 <석문집>을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