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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총6

관우가 형주를 지킬 때, 그의 문신무장(文臣武將)은 누가 있었을까? 글: 이치아(李治亞) 유비(劉備)가 형주를 차지한 후, 서천(西川)을 칠 때, 제갈량(諸葛亮)으로 하여금 형주를 지키게 한다. 당시 형주에는 많은 명장이 있었다. 제갈량이 형주의 수비총사령관이고, 관우(關羽)는 양양(襄陽)의 요충지를 지키고 있었다. 장비는 영사군순강(領四郡巡江)이었고.. 2018. 7. 21.
제갈량이 염두에 둔 군사후계자는 누구였을까" 글: 정정(丁丁) 제갈량의 임종전에, 개인의 후사에 대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고, 많은 것은 촉한의 인사안배였다. 정치 방면의 후계자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제갈량이 지정한 사람은 장완(蔣琓), 비위(費褘)이고, 사실상 동윤(董允)도 있다. 이들 3명은 제갈량과 더불어 "촉한사상(蜀漢.. 2017. 1. 28.
위연과 조운: 누가 대장이 되기에 더욱 적합할까? 글: 이치아(李治亞) 둘 다 촉한(蜀漢)의 명장이다. 소설에서 조운은 아주 대단하다. 촉한 오호장에 들어가고, 또한 유비의 결의형제이다. 사람들이 사천세(四千歲)라고 부른다. 도원삼결의를 나중에 조자룡이 잇는다. 사실상 위연은 조운보다 더 우수했다. 유비는 사람을 잘 알아보았고, .. 2016. 2. 16.
제갈량의 황제꿈 글: 호각조(胡覺照) 제갈량은 황제꿈을 꾸었다. 이 말이 잘못되었는가? 아니면 제갈량을 모욕하는 것인가? 아니다. 여기에 많은 사실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첫째, 구년여동안 보정(輔政)을 하고, 권력을 돌려주지 않았다. 유비가 백제성에서 탁고하였을 때, 유선은 이미 17세였다. 전제사회.. 2012. 8. 15.
건륭은 왜 해녕진가(海寧陳家)의 아들이라고 소문났을까? 글: 일명(佚名) 건륭제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고 이름은 홍력(弘歷)이다. 청왕조가 중원을 차지한 후 네번째 황제이다. 그는 육십년간 재위하면서 여정도치하여 사람들이 즐겨 언급하는 '강건성세'를 이룩한다. 그런데, 민간에는 건륭제의 신세내력에 대하여 아주 기이한 내용이 전.. 2012. 7. 1.
출사표(出師表): 제갈량의 숨은 야욕 글: 호각조(胡覺照) 악비가 쓴 출사표 후세에 더없이 칭송받는 <출사표>는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고 있을까? 이것은 명확히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다. 후세인들의 화려하나 실속이 없는 칭찬의 말을 배제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제갈량이 쓴.. 2012.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