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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량18

항우(項羽)의 패망후 그 휘하의 4대맹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 서초패왕 항우는 힘이 남달라서, 상대가 두려움을 느끼던 맹장이다. 동시에 항우의 휘하에는 4명의 맹장이 있었다. 그들은 항우를 따라 동정서토, 남정북전하였다. 거록지전에서는 진군 40만을 격파하기도 했고, 팽성지전에서는 유방의 56만대군을 물리쳐서 위명을 천하에 떨친다. 그러나, 항우는 결국 패망했다. 그렇다면 그의 휘하에 있던 4대맹장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가장 먼저 얘기해아할 맹장은 용차(龍且)이다. 용차에 관한 사료는 많지 않다. 그는 분명 일찌감치 항량, 항우를 따랐을 것이고, 계속하여 항씨집안이 심복이었다. 용차는 항량의 휘하에서 사마(司馬)를 맡았고, 동아전투에 참가하여 진군을 대파한다. 항우의 용인술에는 특징이 있다. "그가 즐겨 기용하는 사람은 항씨일족이거.. 2021. 6. 6.
항우가 자결한 후 그의 부인과 2명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글: 풍상담사사(風尙談史事) 기원전202년,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인다"는 서초패왕 항우는 인생의 마지막 열차를 탔다. 그의 첩인 우희(虞姬)가 자결한 후, 그도 이어서 오강(烏江)에서 자결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패왕별희(覇王別姬)"의 장면이 펼쳐졌다. 그때 항우의 나이 겨우 30살이었다. 항우는 후손을 두었을까? 우희는 항우의 첩일 뿐이고, 그에게는 원래 정실부인이 있다. 성은 원(袁)이다. 이건 헛소리가 아니다. 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천하의 항씨는 모두 일가(一家)이다"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즉 천하의 모든 항씨성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는 2200여년의 일이다. 항우의 할아버지인 항연(項燕)은 세 아들을 둔다.. 2020. 10. 8.
초회왕과 여러 장수들간의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을 왕으로 봉한다"의 약속의 존재여부 글: 정보(程步) 유방이 왜 험난한 길을 걸어 함양으로 공격해 들어갔는지에 관하여 원인으로 얘기하는 한가지는 바로 초회왕(楚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정하기를,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을 왕으로 삼는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항우는 진군이 그의 숙부인 항량을 죽였으.. 2019. 1. 27.
한신(韓信)이 스스로 왕에 올랐다면 삼족정립(三足鼎立)이 이루어졌을까? 글: 직하서생(稷下書生) 기원전203년, 초한지쟁의 관건적인 해이다. 이 해에 한신은 한군(漢軍)을 이끌고 유수(濰水)를 건너 초군(楚軍)의 일부를 격패시키고, 초군대장 용차(龍且)를 죽인다. 당시 한왕(漢王) 유방과 초왕(楚王) 항우는 양하(陽夏)의 남쪽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유방은 한실.. 2019. 1. 26.
거록지전(巨鹿之戰)의 수수께끼 글: 독력견문(讀歷見聞) 거록지전은 전략적인 결전이었다. 진군(秦軍)과 반진군(反秦軍)의 어느 한측이 승리를 거두면 다른 측은 불가피하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 전쟁사상 보기 드문 이소승다(以少勝多)의 저명한 전투는 전체 과정을 보면 통상적인 이치에 맞지 않는 괴이한.. 2018. 2. 16.
숙손통(叔孫通): 진나라 비인기학문 선생이 한고조를 따라 창업하다. 글: 광주일보 선진양한(先秦兩漢)은 중국역사상 취업기회가 가장 많았던 시기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바로 중국의 여러가지 제도가 창립되고 성장한 시기이기 대문이다. 새로운 업무가 계속하여 나왔고, 인재들이 출현하는데 광활한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외교를 잘 하는 자, 전투를 .. 2014. 1. 15.
숙손통(叔孫通): 서한개국구경(西漢開國九卿)의 한 명 글: 조염(趙炎) 한 가지 의문이 몇 달동안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서한의 개국구경중 한 명인 숙손통같은 중요한 인물이 왜 TV드라마 <초한전기>에서는 13집의 첫머리에 잠깐 등장할 뿐인 것일까? 최근 들어 홍량(洪亮) 선생의 대작 <우회와 집착>을 읽고서야 편극 왕해림(汪海林)의.. 2014. 1. 14.
범증(范增)과 장량(張良)의 모략 비교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초한전쟁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점한 항우가 유방의 손에 패배한다. 사람들은 항우실패의 원인에 대하여 정치군사적인 방면 외에 용인술에 더 많이 집중하고 있다. 당연히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는 비교적 견해가 일치했다. 유방이 황제가 되고나서, 여.. 2013. 12. 24.
항량(項梁)의 사후 초군(楚軍) 내부의 권력투쟁 작자: 미상 초군(楚軍)은 잡탕밥같아서, 각종 세력이 모두 있었다. 항량이 살아있을 때는 그래도 통일시킬 수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 지휘권을 둘러싼 쟁탈전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항량이 돌연 전사했고, 그 자신이 아마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지 않아서인지 후계자를 명확히 지.. 2013. 12. 21.
진승,오광의 난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글: 장부걸(張溥杰) 이천여년전에, 중국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농민의 난이 일어난다. 이 의거의 남자1호주인공과 2호주인공은 진승, 오광 두 사람이다. 현재 보편적인 견해는 진승오광은 농민의 난의 비조라는 것이다. 그들의 반란은 가가가읍(可歌可泣, 찬미하여 눈물을 흘릴만큼 감동적.. 2013.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