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30

모안영(毛岸英)의 죽음과 팽덕회(彭德懷)의 관계

글: 안창해(顔昌海) 오랫동안 중국당국의 공식 선전내용은 이러했다: 모택동은 "항미원조(한국전쟁)"를 위하여, 자진하여 장남 모안영을 중국인민지원군에 참가시켰고, 모안영은 한국전쟁에서 희생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역사자료들이 공개되면서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공식 선전내용의 모택동이 자신하여 장남을 한국전쟁에 보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모안영이 인민지원군에 들어간 것은 조직의 안배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과 팽덕회는 관련이 있을까? 사건의 내막은 이러하다: 1950년 10월 3일, 모택동은 김일성으로부터 다급한 도움요청서신을 받는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직접 출동해서 아군의 작전을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월 5일, 모택동은 한반도에 출병하여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10..

"404": 중국의 가장 신비한 도시

글: 감시서원(砍柴書院) 중국에 이런 도시가 있다. 이름도 아주 기괴하다. 그저 숫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404" "404"는 중국의 서북, 궁벽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도시와의 거리도 백킬로미터가 넘는다. 이곳은 황량하고 가난하다. 그러나 그 지위는 아주 높다. 일기예보때, 방송국에서 가장 먼저 알려주는 도시는 성회(省會, 성정부 소재지)도시이고, 그 다음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아주 대단하다.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햇볕을 쬐고 있는 노인들도 북경대학 아니면 청화대학 졸업생이다. 이곳에는 일찌기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 가장 뛰어난 주방장이 모여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같이 신비롭게 감숙의 가장 서쪽에 들어섰다. 왜 이렇게 황막한..

중국은 "대만카드"를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글: 진숙함(陳叔涵) 2022년 11월 7일 해협양안의 분치(分治)라는 정권국면은 2차대전이래 국제정치질서의 불가분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만카드"라는 말은 바로 이 사실이 기인한다. 미국은 수시로 "대만카드"를 꺼내든다. 중국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진정 "대만카드"를 즐겨 쓰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대만카드"를 써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는 중공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8.23포격전은 중국이 "대만카드"를 쓰는 서막을 열었다. 전면적인 국공내전은 1945년부터 시작하여, 1958년까지 지속된다. 중국은 대만본섬으로 진격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륙과 지척지..

팽덕회(彭德懷) 죽음의 배후

글: 임휘(林輝) 1974년 12월 17일, 한 구의 시신이 301병원에서 비밀리에 화장장으로 보내어져 화장된다. 화장신청서에 쓰인 것으로는 "신청인: 왕규(王奎), 주소: 301, 사망자와의 관계: 부자, 사망자성명: 왕천(王川), 남, 76세, 번호: 0012690" 사실상, 이 왕천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바로 중국의 전 국방부장, 원수 팽덕회였다. 중공내부에서 팽덕회는 성격이 솔직하고, 충동적이며, 감히 직언을 마다하지 않고 정의감이 넘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찌기 항전시기, 팽덕회는 중공의 적극항전을 주장했다. 서북의 구석에 숨어서 병력과 힘을 비축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가 주도한 "백단대전(百團大戰)"은 바로 모택동의 '마작전'만 하라는 지도사상을 어기면서 진행한 것이다. 이 전투는 중..

구소운(邱少雲): 조작된 영웅의 전형인가?

글: 백매(白梅) 1953년 8월 30일, 중공 지원군당위(志願軍黨委)는 구소운을 중공당원으로 추인했다. 중국인이라면 구소운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등학교를 다닌 학생이라면, 모두 이라는 글을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교과서의 글을 통하여 우리는 "영웅" 구소운이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을 가리킴)"때의 빛나는 사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공식문헌에 따르면, 구소운은 사천 사람이고, 1949년 군대에 입대했다. 1951년 3월 한국으로 가서 전투에 참가한다. 1952년 10월 12일, 소속부대 500명이 유엔군진지앞에 매복하고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떄, 유엔군이 맹목적으로 발사한 한발의 소이탄이 구소운이 잠복한 부근에 떨어졌고, 신속히 그의 몸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매복을 들..

임표(林彪)는 왜 한국전쟁 참전에 반대했을까?

글: 봉황역사(鳳凰歷史) 중공 고위층이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할 때, 모택동(毛澤東)과 임표(林彪)는 견해가 달랐다. 당시, 모택동은 확실히 임표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한국전쟁체 참가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임표는 몸이 좋지 않아서 참전하지 않았고, 나중에 팽덕회(彭德懷)가 총사령관을 맡아서 참전한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특히 "9.13"사건이후, 대다수의 견해는 이러했다: "임표는 한국전쟁문제에서 소극적이었고, 병을 핑계로 참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의 진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모택동은 동북지방이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고, 또한 동북지구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라는 것을 고려하여 당중앙에 동북변방군(東北邊防軍)을 설립할 것을 건의했다. 모택동의 ..

동북아의 새 촛점: "한미일" vs "북중러"

글: 심주(沈舟) 최근, 미국, 한국, 일본은 한반도 동부해역에서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8월말, 중국해군함정은 쓰시마해협을 지나 동해로 진입하여, 러시아해군과 훈련한 후, 쌍방함대는 다시 한번 일본혼슈를 한바퀴 돌았다; 동시에 북한은 다시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미국, 일본, 한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군사대항은 현재 타이완해협외의 동북아에서 새로운 촛점이 되고 있다. 미중간의 제3전장의 가능성도 얘기되고 있다. 중러간의 계속되는 군사협력 중러지도자의 최근 회담후, 쌍방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러시아는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에 대한 지원이 절실했으나, 중국은 러시아군이 패배하는 것을 보자, 지원을 약속해주지 않고, 명목상의 지지도 회피했다. 그러나, 중러간의 군사협력은 여전히 계속..

1960년대 중국은 소련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었는가?

글: 지식도학잡료(知識都學雜了) 1960년대초 중소관계가 악화되고, 기근이 나타난 후, 중국내에서는 일찌기 간부들의 강연과 군중들에게 구전되는 방식으로 "중국은 항미원조(한국전쟁)으로 빚을 많이 졌고, 소련이 빚독촉을 해서 굶게 되었다."는 말이 있었고, 여러 해동안 일부 문학예술작품이나 비당사자들의 글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만일 중국정부의 공개된 문건이나 중소"논전"때의 글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빚독촉'을 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기실, 3년곤란기에 소련측은 먼저 중국측에 채무상환을 연기할 수 있다고 제안했었다. 중국은 당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빚을 소련에 지고 있었을까? 첫째, 항미원조때, 중국은 대량의 무기장비가 급하게 필요했다. 소련은 비록 제공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북한원조를 '공동부..

우의관(友誼關)의 역사와 현황

글: 소여자대인물(小女子大人物) 자종실관애(自從失關隘) 국탕무번리(國蕩無藩籬) - 유극장(劉克莊), 중화대지에 있어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관애(關隘)는 험요(險要)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중원을 침략하는 자들을 막는 외에 천하의 대문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긴 강물을 살펴보면, 이들 관애를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은 부지기수이고, 거기에는 강개비장, 음한매골의 이야기가 있으며 오랑캐를 멀리 쫒아낸 역사는 피를 들끓게 만든다. 관애, 성벽에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예전의 칼자국 도끼자국이 남아 있고, 불에 탄 흔적도 있어, 역사의 창상을 보여준다. 이들 관애중에서 특히 산해관(山海關), 안문관(雁門關), 가욕관(嘉峪關)등 9대관애가 가장 치명적이다. 거기에는 지금의 우의관도 포함된다. 그러나 "우의관"이라는..

현재와 향후의 중국정치방향 (3): 독재제중국의 미래는 북한이다.

중국정치는 일인독재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시진핑이 특별히 위대해서도 아니고, 그가 특별히 사악해서도 아니다. 그저 현재의 현실하에 다른 정치체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등소평식 과두제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보증인이 한명 필요하다. 각 파벌의 역량을 위협할 수 있고, 균형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 다만 등소평이 사망한 후, 더 이상 그런 강자는 없다. 미래에 그런 강자가 나타날 것같지도 않다. 그리하여 각파벌은 서로 신뢰할 수가 없어서 마지막 한명의 승리자가 남을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모두 무릎꿇려야 비로소 사회의 평화와 안정이 실현되는 것이다. 유사한 상황에 처한 다른 나라와 지역에서는 외부의 도움을 구했다. 예를 들어, 일본과 대만은 내부 각파벌간의 문제를 미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