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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9

중산국(中山國): 춘추전국시대에 어떤 존재였을까? 글: 소중옥(笑中屋) 춘추전국시대에 전국칠웅외에 또 하나의 제후국이 특수한 역사를 남겼다: 중산국. 중산국은 존재기간이 길지는 않다. 존속기간동안 중산국은 화하문화에 융합하고자 노력했다. 비록 전국칠웅의 시대에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위(魏), 조(趙)등의 나라에 골치거리였고, 여러번 곤란을 겪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중산국은 도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중산국은 기원전507년에 건립되며, 중산무공(中山武公)이 건립했으며, 최초로 중원문화를 대거 흡수한 융적제후국(戎狄)제후국이다. 그리고 중산국 내부에서는 계속 이런 인식이 있었다: 그들은 주왕실(周王室)의 한 갈래이다. 심지어 국성(國姓)도 주왕실과 같은 희(姬)성이었다. 영지도 중원에 위치하여, 조, 위, 제(齊)와 연결되어 있다. 당연히 또 다른 .. 2022. 8. 24.
당금의 국제정세와 춘추전국시대 글: 이중천(易中天)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당금의 국제정세와 춘추전국시대간에 어떤 상이점이 있습니까. 서로 비교할만합니까? 나의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비교할 수 없다. 왜 그런가? 먼저 두 가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춘추와 전국은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시대이다 당금의 국제사회는 춘추전국시대와 다르다. 춘추와 전국 춘추전국시대에 국제사회가 있었는가? 있었다. 주, 제, 진, 초는 모두 나라이다. 외교라는 말도 있었다.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나, 춘추와 전국은 나라의 성격이 달랐다. 춘추시대의 나라는 반독립주권을 가졌을 뿐이고,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주나라천자의 분봉국이었다. 혹은 주나라연맹의 구성국이었다. 전국칠웅은 그러나 완전한 주권국가들이었다. 그러므로, 춘추와 전국은 시대가 다르다. 춘추는 '.. 2022. 3. 5.
수후지주(隨侯之珠) 행방의 수수께끼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수후지주"는 춘추전국시대 수(隨)나라의 보물이다. 그것은 "화씨지벽(和氏之璧)"과 함께 나란히 춘추시대의 양대기보(兩大奇寶)이다. 이 두 개의 기보는 춘추전국시대에 여러번 언급된다. 예를 들면, "변화보박(卞和報璞)", "완벽귀조(完璧歸趙)" 등 역사이야기는 .. 2015. 2. 10.
숙손통(叔孫通): 진나라 비인기학문 선생이 한고조를 따라 창업하다. 글: 광주일보 선진양한(先秦兩漢)은 중국역사상 취업기회가 가장 많았던 시기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바로 중국의 여러가지 제도가 창립되고 성장한 시기이기 대문이다. 새로운 업무가 계속하여 나왔고, 인재들이 출현하는데 광활한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외교를 잘 하는 자, 전투를 .. 2014. 1. 15.
진령공(晋靈公) 시해(弑害): 모두 개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글: 포강객(浦江客) 명왕조의 개국공신 유기(劉基, 劉伯溫)은 우언소품집 <욱리자(郁離子)>를 저술했는데, 글이 날카로웠다. 유머가 넘치는 가운데 폐해를 정곡으로 찌르고 있다. 견식과 공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 책을 "길흉화복에 밝고, 고금의 성패득.. 2013. 11. 27.
"춘추", "전국"은 어떻게 나누는가? 글: 금암조휘(金巖朝輝) 춘추전국(春秋戰國)은 하나의 역사시기로서, 존재하던 기간에 대하여 원래는 이의가 없었다. 즉, 주평왕(周平王) 희의구(姬宜臼)가 기원전770년에 낙읍(洛邑)으로 천도한 때로부터, 주난왕(周赧王) 희연(姬延)이 기원전256년 진군에 투항할 때까지이다. 전후 합.. 2013. 6. 11.
풍도(馮道)의 육기(六奇): 중국역사상 유일한 '십조원로(十朝元老)' 글: 손옥량(孫玉良) 중국역사상 세번의 대동란시대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위진남북조시대, 오대십국시대. 그 때는 정말, '네가 노래를 다 부르면 내가 올라간다'는 식으로 중화대지에는 56개민족의 엘리트들이 속속 등장했다. 난세에 얼마나 많은 지식인, 얼마나 많은 영웅이 나타났는.. 2012. 5. 3.
백규(白圭): 중국상인의 비조 글: 유계흥(劉繼興) 상(商)나라때부터 청나라말기까지, 중국에는 수많은 상인들이 나타났다. 그중 학계에서 상성(商聖)으로 공인된 사람은 오직 3명 뿐이다: 도주공(陶朱公), 백규(白圭) 그리고 호광용(胡光鏞) 도주공은 바로 범려이다. 호광용은 호설암이다. 이 두 사람의 사적은 모두 낯.. 2010. 3. 20.
곽해(郭解): 한무제에 멸문당한 무림제일고수 글: 수은하(水銀河)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강호(江湖)가 있고, 강호가 있는 곳에는 자연히 대협(大俠)이 있다. "협(俠)"은 중국에서 오래된 단어이다. 멀리는 춘추전국시대에 협객은 이미 역사상의 제1차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때는 예의가 무너지고,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며, 사상의 구속을 받지 않던 때이다. 이긴 자가 왕이 되는 것이 당시의 법칙이었다. 그리하여 대량의 협객이 나타난다. 그들은 의리를 중시하고 목숨을 가벼이 여겼다. 무공으로 금지된 일들을 해냈고, 국가의 법률은 깡그리 무시하면서, 검 하나에 의지해서 천하를 횡행했다.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전제(專諸), 요리(要離), 섭정(聶政)등이 있다. 그들은 한 몸의 힘을 가지고 혹은 크게 혹은 적게 중국의 역사를 고쳐 썼다. 난세는 협객이 흥성하는 토양이.. 2009.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