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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류왕5

조조는 왜 고향인 박주(亳州)가 아닌 진류(陳留)에서 거병했을까? 글: 역사백가쟁명(歷史百家爭鳴) 진류(陳留)는 아주 신기한 곳이다. 동한말기에 하나의 군(郡)으로 연주(兖州)에 속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왕(王)의 작위를 내리는 지방이기도 하다. 역사에 기록된 진류왕(陳留王)은 한헌제(漢獻帝) 유협(劉協), 조환(曹奐)등이 있다. 유협과 조환의 특수성으로 진류왕은 자주 망국지군이 죽기 전에 강등되어 봉해지는 곳이 되었다. 우연하게도 조조가 거병한 곳이 바로 진류이다. 조위의 마지막 황제인 조환은 진류왕에 봉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조위가 진류에서 시작해서 진류에서 망했다고 말한다. 조조는 진류 사람도 아닌데, 왜 진류를 선택해서 거병했을까? 조조는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즉 현재의 안휘 박주이다.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거병하기 가장 좋은 곳은 당연히 .. 2021. 4. 16.
동탁(董卓)의 본모습은 어떠했을까? 글: 삼갑제사(三甲第四) 먼저 얘기할 것은 이 글은 동탁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탁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바로 "권경조야(權傾朝野)", "전횡발호(專橫跋扈)", "흉포잔인(凶暴殘忍)", "도행역시(倒行逆施)", "죄악영천(罪惡盈天)", "악관만영(惡貫滿盈)"으로 표현한다.. 2018. 6. 19.
사마염(司馬炎)은 왜 삼국후주(三國後主)를 후대했는가? 글: 정정(丁丁) 삼국시대를 만일 208년 적벽대전으로 삼국의 서막이 열렸다고 계산한다면, 280년 삼국이 진(晋)으로 통일될 때까지 합계 72년의 기간이다. 당연히 진정한 삼국역사는 마땅히 220년 한헌제가 조비에게 선양한 때로부터 계산하여 280년 삼국귀진(三國歸晋)한 때까지 딱 60년으로 .. 2017. 2. 1.
원소(袁紹)의 영웅기개: "모두 어딜 갔는가?"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원소의 가족은 사세삼공(四世三公)으로 명성이 혁혁했다. 원소에 이르러, 마찬가지로 삼공의 지위에 이르렀다. 그는 조상의 음덕으로 명성과 지위를 잃은 적이 없다. 단지, 한나라황실이 쇠약해지고, 정치가 부패하였으며, 원소의 지위는 대장군 하진(何進)의 뒤.. 2014. 4. 4.
동탁(董卓)의 실패원인 글: 진사황(秦四晃) 동한말기, 만일 황제위를 빼앗고 스스로 왕조를 세운다면, 동탁이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주관적으로 분석하면 동탁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허작가(弄虛作假) 동탁이 하진(何進)의.. 2013.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