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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장142

명나라 멸망직전에 발생한 2건의 괴이한 사건 글: 흔몽경성(昕夢傾城) 철학적으로 이런 말이 있다: "새로운 사물이 반드시 오래된 사물을 대체한다" 이 진리는 고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처음부터 강성하기 그지없고, 발군이었던 왕조도 백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은 다른 왕조로 쉽게 교체되곤 한다.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국황제 주원장은 비록 글도 몰랐지만, 여전히 국가를 조리있게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나라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고 만다. 주원장이 만일 자신의 후손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기실 우리가 역사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의 24시간동안, 조금 노력을 했더라면,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었을 것같다. 그러나, 두 가지 괴.. 2022. 8. 30.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의 형제들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글: 흔다적노력(很多的努力) 주체(朱棣, 나중의 명성조 영락제)는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4남이다. 주표(朱標)는 주원장은 장남이다. 홍무원년, 주표는 황태자에 오른다. 즉 제국의 합법적인 후계자이다. 주원장은 관리들을 극단적으로 불신해쏙, 많은 개국공신을 죽여버렸다. 그러나, 주원장은 황태자 주표에 대한 교육을 아주 중시하여, 송렴(宋濂), 이선장(李善長), 서달(徐達), 유기(劉基)등은 모두 주표를 가르친 바 있다. 주원장과 달리, 주표는 온문이아(溫文爾雅)했으며, 일처리는 온화했다. 여러번에 걸쳐 주원장에게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말 것을 권했다. 만일 그가 순조롭게 황위를 이어받았다면 아마도 인후한 군주가 되었을 것이다. 주원장의 생각은 일장일이(一張一弛)였다. 그가 지배하는 국가는 .. 2022. 6. 24.
조휘(趙輝): 중국역사상 가장 장수한 부마, 명나라 9조(朝)의 황제를 겪다 글: 도도설문사(濤濤說文史) 최근 몇 년간 전통적인 한문화를 젊은이들이 갈수록 더 좋아하고 있다. 원래 TV를 수십년동안 차지하고 있던 청나라궁중드라마가 많이 줄어들었고,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드라마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최근 비교적 인기리에 방영된 그리고 이전의 그리고 오랫동안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던 . 봉건왕조중 가장 마지막 한족통치의 왕조로서, 명나라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다. 명나라는 끝까지 화친하지도 않고, 투항하지도 않으면서 천자가 국문을 지켰던 왕조이다. 대명은 후세에 많은 보물을 남겼다. 예를 들어 4대명저, 본초강복, 그리고 수많은 문인, 장수. 예를 들어 왕양명, 탕현조, 서하객, 이시진등등. 그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설적인 인물도 있다. 예를 들어 9명의 황제를 .. 2022. 6. 7.
원순제(元順帝)는 어떻게 중원에서 쫓겨났는가? 글: 문재봉(文裁縫) 토토(脫脫)가 축출되어 죽임을 당한 후, 원순제는 철저히 추락한다. 그는 하마(哈麻)에게 고혹되어 성색견마(聲色犬馬)에 빠진다. 궁중에 청녕전(淸寧殿)을 짓고, 청녕전의 주위에 백화궁(百花宮)을 지어, 매 5일마다 궁을 옮긴다. 조정은 황태자인 아유시리다라(愛猷識理答臘)에게 맡겨버린다. 지정16년(1356), 하마는 원순제가 황위를 황태자에게 양위하도록 계획을 꾸민다. 그러나, 그의 매부인 투루테무르(禿魯帖木兒)가 원순제에게 밀고하여, 원순제가 대노하여, 하마를 쫓아낸다. 그후에 다시 박불화(朴不花), 삭사감(搠思監)이 조정을 교란시킨다. 역사서에는 "당시 천하에 사고가 많았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밖으로는 반란군이 일어나 강역이 날로 줄어들었고, 안으로는 국고가 텅비어, 쓸 곳.. 2020. 12. 14.
포수경(蒲壽庚): 송원교체기의 아랍계 부호 글: 하신(何新) 중국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각종 원인으로(주로 사신(史臣)이 무지하거나, 혹은 유가적인 이데올로기로 편견을 가져서), 정사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역사의 그림자 속에 매몰되어 버렸다. 남송말, 원초에 한 아랍계통의 상인이 있었다(아마도 유태인일 수도 있다. 당시 유태인과 아랍인을 중국인들은 혼동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포수경이다. 포수경(1205-1290). 일명 포수경(蒲受畊), 호는 해운(海雲)이다. 출신은 불명인데, 고조우(顧祖禹)에 따르면 그의 부자는 서역에서 왔다. 일부 연구자들은 그의 선조가 점성(占城, 지금의 월남)의 서역 아랍인의 후예라고 한다. 남송시기, 육상비단길은 이미 막혔고, 중국과 아랍의 교역은 해운을 위주로 .. 2020. 12. 1.
정난지역(靖難之役)후 주체(朱棣)는 왜 5번이나 몽골정벌에 직접 나섰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정난지역이후, 주체는 성공적으로 조카인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으로부터 황제위를 빼앗는다. 그러나 후세인들은 그가 '황위를 찬탈'한 일에 대하여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를 '영락대제(永樂大帝)'로 칭송한다. 주체의 주요 공적을 나열해 보자면, 북경천도, 영락대전편수, 정화하서양, 안남수복, 오정막북(五征漠北)이 있다. 특히 5차례에 걸쳐 막북을 친정(親征)한 것은, 후세의 찬양을 받는다. 자고이래 제왕이 직접 정벌에 나서는 일도 많지 않지만, 주체는 역사상 최초로 직접 장성이북을 친정한 황제이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이다. 주원장이 원왕조를 쫓아낸 후, 몽골통치자의 잔여세력은 완전시 소멸되지 않고, 새외(塞外)로 도망쳐 '북원(北元)'을 건립한다.. 2020.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