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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왕19

주무왕(周武王)은 상(商)을 멸망시킨 후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주무왕(周武王)은 이름이 발(發)이다. 그는 주문왕의 차남이다. 그의 형인 백읍고(伯邑考)가 상나라 주왕(紂王)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그가 왕위를 승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즉위한 후 강상(姜尙, 강태공)을 스승으로 삼아 군사를 책임지게 하고, 주공단(周公旦)을 보좌하게 하여 주로 정무를 책임지게 했다. 소공(召公)과 필공(畢公)은 그의 오른팔 왼팔로 내정과 군대를 정돈했다. 그리고 도성을 호(鎬, 지금의 섬서성 서안 양하동쪽)로 옮겨서 상나라를 멸망시키는 전쟁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그가 즉위한 다음 해, 상왕조의 전쟁대비활동을 탐색하기 위하여, 군대를 출동시켜 대규모로 동진한다. 맹진(盟津, 지금의 하남성 맹진 동북쪽)까지 진격한다. 그는 먼저 필원(畢原, 지금의 섬서성 성양.. 2020. 7. 1.
주문왕(周文王)의 장남 백읍고(伯邑考) 이야기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백읍고는 주문왕 희창(姬昌)의 장남이다. 그는 성격이 돈후인애(敦厚仁愛)하였고, 효자였다. 그의 이름은 외자로 '고(考)'였다. 그리고 성은 희(姬)이다. 그러므로 그의 성명은 '희고(姬考)'이다. 그는 읍(邑)의 관직에 봉해지므로, 읍고(邑考)라 불렸다. 읍고는 주문왕의 아들들 중에서 장남이다. 옛날에 장유의 순서는 "백(伯), 중(仲), 숙(叔), 계(季), 현(顯), 혜(惠), 아(雅), 유(幼)"였으므로, 백읍고라고 불리게 된다. 주문왕은 주왕(紂王)의 분노를 사 감금된다. 백읍고는 부친을 구하기 위하여, 칠향거(七香車), 성주전(醒酒氊)과 백색원후(白色猿猴)의 세 가지 보물을 주왕에게 바쳤다. 달기(妲己)는 백읍고의 용모가 준미하고, 금예(琴藝)가 절륜한 것을 보자 가까.. 2020. 4. 9.
<죽서기년(竹書紀年)>: 중국고대의 비주류 사서 글: 지역사(知歷史) <죽서기년>은 위양왕(魏襄王) 시대에 저술되었다. 이 시대에 여러 나라가 나타나고, 유가(儒家)는 아직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죽서기년>은 서진(西晋) 연간이고, 이 때는 <사기>가 이미 중국역사기록의 '대표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서기.. 2019. 4. 22.
중국에서의 작명법 변천사: 삼국시대 인물은 왜 모두 외자이름일까? 글: 비상역사(非常歷史) <삼국연의>를 보면 이런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왜 삼국시대에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외자이름을 가졌을까? 확실히 그렇다. 역사를 뒤져보면, 전체 동한(東漢), 삼국의 300여년간의 인명을 보면 거의 모두 외자이다. 두자 이름은 극소수이다. <후한서>.. 2019. 1. 23.
주(周)왕조의 작위(爵位)에 관하여 글: 유지사(有志社) 주왕족의 작위는 5등급으로 나뉘어진다.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이건 아마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많은 친구들이 선진(先秦)의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혼란이 온다. 예를 들여, 제(齊), 노(魯)등의 국가의 작위는 분명히 "후작(侯爵)'이고, 진(秦), 정(鄭)등.. 2019. 1. 16.
공자(孔子) 소정묘살인사건의 진상 글: 연비(燕飛) 여러분 안녕하세요. 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연비입니다. 고금중외, 인류역사상 수많은 의문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다는 것처럼 애매모호하고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는 사건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쪽은 공자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공자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쌍방 모두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송은 이천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선진(先秦, 진나라이전)문화를 얘기하면서 이 역사적인 미스테리한 사건에 대하여 저는 약간 새로운 발견을 했고, 새로운 견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얘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우리가 간단하게 공자가 .. 2018. 7. 5.
[황자쟁위술] 이퇴위진술(以退爲進術) 양중득위패(讓中得位牌) 송양공편 황위는 누구나 탐내는 자리이지만 손에 넣기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황위다툼의 매커니즘은 자리를 지키려는 황태자나 그를 빼앗으려는 다른 황자나 너무 황위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위에는 심판보다 훨씬 냉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황제가 있기 때.. 2015. 8. 13.
현군 유비와 간신 조조는 누가 더 간사한가? 글: 염호강(閻浩崗) 모종강(毛宗崗)은 <삼국>에 "삼절(三絶)"이 있다고 하면서, 조조는 "간절(奸絶)", 관우는 "의절(義絶)", 제갈량은 "지절(智絶)"이라고 했다. 그는 유비가 무슨 절인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모두 유비는 조조와 대조하여, '인덕'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유.. 2015. 2. 25.
제(齊): 춘추전국시대의 상업패주(商業覇主) 글: 양반(梁盼) 한 국가의 인민이 부유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경제왕래가 활발한지 여부가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수요와 공급이 모두 만족되면, 보편적으로 백성과 상인은 모두 각자가 원하는 것을 얻고 서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경제왕래가 활발한지 여부는 주로 민.. 2015. 2. 10.
운하 이야기 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3000년전, 두 명의 사내가 강남으로 온다. 그들은 누구인가?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하여 왔는가? <사기.오태백세가>에는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오태백(吳太伯)과 둘째동생 중옹(仲雍), 셋째동생 계력(季歷)은 모두 주태왕(周太王)..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