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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22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I): 조비 vs 조식 글: 의사리(衣賜履) 조식의 곁에는 주로 3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의 정의(丁儀), 한명은 정이(丁廙)로 둘은 형제간이다; 그리고 또 한명은 총명하기 그지없는 양수(楊修)이다. 정씨형제의 부친은 정충(丁冲)으로, 패군(沛郡, 안휘성 회북시) 사람이다. 일찌감치 조조와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 정충은 조조가 한헌제 유협을 맞이하여 '천자를 끼고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조조는 정의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가 재능과 학문이 뛰어나다는 것은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하고, 조비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때 조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부친! 제 생각에 비록 남재여모(男才女貌), 즉 남자는 재주가 뛰어나야 하고, 여자.. 2021. 10. 20.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II): 조비 vs 조식 글: 의사리(衣賜履) ​ 211년 정월, 한헌제 유협이 조서를 내려, 조조의 세자 조비를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에 임명하고, 관속(官屬)을 둘 수 있게 해서, 승상 조조의 부수(副手)로서의 역할을 하게 한다. 부승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일을 통하여, 필자는 이전에 판단한 바 있다. 조조는 이미 조비를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한 것이다) ​ 부승상으로서, 개부(開府)도 할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태자의 지위는 조비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조식이 급속히 부상하여, 조비에게 큰 위협이 된다. 사서에 따르면 조조는 성격이 기민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재능이 특출났고, 민첩하며 지혜가 많아, 조조가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 우리는 여기서 조식의 재능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 당시.. 2021. 10. 19.
조조(曹操)의 후계자다툼(1): 조조의 아들들! 글: 의사리(衣賜履) 조조는 영웅이다. 자식을 낳는 것도 남달랐다. 앞뒤로 25명의 아들을 낳았다. 딸도 적지 않게 낳았을 것이다. 최소한 3명은 한헌제 유협에게 시집보냈고, 그중 한명은 한나라의 마지막 황후가 된다. 여기에서는 그의 아들들중 몇몇을 골라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조앙(曹昻): 조조가 가장 미안해 한 아들 조앙의 자는 자수(子修)이고, 조조의 장남이다. 만일 일찌감치 죽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황제가 된 것은 조비가 아니라 조앙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앙은 조비보다도 근정묘홍(根正苗紅)하기 때문이다. 바로 적장자(嫡長子)이다. 조조의 첫부인은 정(丁)씨이다. 그러나 정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 조조의 작은 부인 유부인(劉夫人)은 아들 조앙과 딸 청하장공주(淸河長公主)를 낳는다. 유부인은.. 2021. 5. 19.
조조의 딸들은 누구와 결혼했는가? 글: 이치아(李治亞) 정략결혼은 고대 정치투쟁에서의 큰 일이다. 삼국시대에는 아주 빈번했다. 조조도 여러번 이를 활용한다. 조조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많은 여인이 있었고, 많은 딸들을 낳아서 길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조는 자신의 부하 혹은 상대방과 정략결혼시키는 .. 2018. 2. 9.
삼국소인물(7), 오질(吳質), 조비의 고급참모 글: 정순방(鄭純方) 필자는 자주 두 사람을 생각한다. 조위의 두 중요한 모사이다. 그들은 각각 학식도 뛰어나고, 모략에도 각각의 장점이 있었다. 총명도로 보아도 고하를 가리기 힘들었다. 그들은 적수이면서 그렇다고 원수는 아니었다. 그들의 장점과 결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최후를 .. 2018. 1. 9.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천사재화패(天賜才華牌) 계찰편외 오(吳)나라에서 처음으로 왕(王)을 칭한 수몽(壽夢)은 25년간 오나라를 통치한 후 기원전561년 세상을 떠난다. 임종시에 후계자를 골라야 하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4명 있었다. 첫째가 제번(諸樊), 둘째가 여제(餘祭), 셋째가 여매(餘昧), 넷째가 계찰(季札)이었다. 그중 계찰이 가장 현명하여.. 2015. 10. 11.
[황자쟁위술] 여인노선술(女人路線術) 화기소장패(禍起蕭墻牌) 조식편외 동한말기, 조조는 군웅들 중에서 굴기한 후, 자신의 사업을 후대만세에 전해주고자 했다. 그리하여 조조는 아들중에서 완벽한 후계자를 뽑기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그중 조식은 조조의 넷째아들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과 업무처리능력으로 가장 앞서갔다. 그러나, 그와 동모형인 조.. 2015. 8. 25.
[황자쟁위술] 부저추신술(釜底推薪術) 파괴기회패(破壞機會牌) 자고이래로 국가에 공헌이 있는지 여부는 황제가 황자를 평가하고 후계자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황태자 및 황자들은 모두 공헌을 세우는데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혹은 부친이 출정했을 때 후방에서 정국을 안정시키며 전방을 잘 지원하거나, 혹은 명을 받들어 .. 2015. 8. 25.
[황자쟁위술] 교식위현술(矯飾僞賢術) – 각수예제패(恪守禮制牌) 중국고대에는 황제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을 규정해두고 있었다. 예를 들어, 황금색 기와는 황제가 거처하는 황궁, 사찰, 능묘등의 건축물에만 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왕’에 불과한 조선왕궁에는 황금색 기와를 볼 수 없다. 그리고, 붉은색 글씨(朱批)도 황제만이 쓸 수 있다. 상소문이 .. 2015. 8. 4.
[황자쟁위술] 양장피단술(揚長避短術) - 집사광익패(集思廣益牌) 여불위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얘기할 때, 유가, 묵가, 법가, 도가, 농가등 제자백가는 모두 들어맞고 좋은 점도 있지만, 맞지 않고 나쁜 점도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2천여년전에 이미 “사람이 많이 모여있다는 것이 군주의 큰 보물이다”라고 하여 집소성다(集少成多), 중지성.. 2015.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