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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마12

여포가 죽은 후 방천화극(方天畵戟)은 어디로 갔을까? 글: 계설필담(溪說筆談) 여포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후, 적토마는 조조에 의해 관우에게 하사된다. 그렇다면, 그의 병기인 방천화극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무기는 사용하는 사람이 원래 많지 않다. 방천화극을 주병기로 사용할 수 있는 무장은 더욱 적다. 대장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손에 익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명소졸은 여포의 병기를 쓸만한 자격이 없다. 그래서 조조가 누구에게 하사하고 싶어도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방천화극은 여포의 상징이 되었고, 아마도 전리품으로 조조가 소장했을 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소설의 후반부에 언급되어 있다. 조비(曹丕)가 칭제하기 전에, 그의 동생인 황수아(黃鬚兒) 조창(曹彰)이 불복하여 병력을 이.. 2020. 12. 10.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는 칭송할만한 일인가? 글: 풍현일(馮玄一) <삼국연의>에 여러 무장들간의 멋진 대결이 그려져 있다. 예를 들어, 태사자와 소패왕(손책)의 싸움, 허저의 마초와의 맨몸싸움, 마초와 장비의 일대일대결등등. 그리고 이들 대결중 지명도가 가장 높은 것은 당연히 "삼영전여포"이다. 소위 '삼영'은 유비, 관우와 .. 2016. 8. 28.
여포는 백전백승이 아니었다. 글: 이치아(李治亞) 삼국시대의 여포는 아주 유명하다. 삼국연의에서는 심지어 그를 최고명장으로 꼽았다. 그래서 소위 "일여이마삼전위(一呂二馬三典韋), 사관오조육장비(四關五趙六張飛), 황허손태양하후(黃許孫太兩夏侯), 이장서방감주위(二張徐龐甘周魏), 창신장수화문안(槍神張繡.. 2015. 6. 16.
관우의 "참안량주문추(斬顔良誅文醜)의 배후사정 글: 동호소주(東湖少主) 이런 말이 있다: "예고인담대(藝高人膽大)" 기예가 뛰어나면 담량이 커진다. 전투를 함에 있어서는 첫째는 무예에 의존하고, 둘째는 담량에 의존해야 한다. 특히 단병접전때 동등한 무예실력인 상황하에서는 좋은 심리소질을 지니는 것이 최종승리를 거두는 결정.. 2014. 5. 30.
사서에서 전위(典偉)는 여포(呂布)보다 용맹하다 글: 가동(佳桐)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 여포는 공인된 제일용장(第一勇將)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소설이다. 그럼 사서에서는 어떨까? 당시에 더욱 용맹한 장수가 있었을까? 여포의 용맹함은 절대로 그냥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삼국지>의 작자인 진수(陳壽)는 이렇게 말했.. 2014. 4. 4.
삼국명장들은 어떤 무기를 썼는가? 글: 불감왕언(不敢枉言) 1. 여포(呂布) 척토마(赤兎馬)를 타고, 방천화극(方天畵戟, 畵杆方天戟)을 휘두르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여포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설적인 기법으로 승화된 후의 모습이다. 사료의 기재를 보면, 적토마는 진실로 존재했다. 그러나, 방천화극은 .. 2013. 11. 10.
적토마(赤兎馬)의 여섯 주인 글: 노후(老猴) 소설 <삼국연의>에서 적토마에 대한 이미지와 전쟁터에서의 풍채는 여러번 생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적토마는 단순히 전투시의 주요역량으로 전쟁터에 나타났을 뿐아니라, 무언의 영웅으로 삼국시대에 이름을 날렸다. 분등천리탕진애(奔騰千里蕩塵埃) 도수등.. 2013. 8. 5.
여포(呂布)는 왜 백문루에서 목숨을 잃었는가? 글: 이치아(李治亞) 여포는 삼국명장이다. 일찌기 삼국의 전장에서 풍운을 질타한다. 동탁을 위하여 자사 정원을 죽였고, 호뢰관에서는 혼자서 도원삼영(유비,관우,장비)와 싸웠다. 나중에 왕윤과 공모하여 동탁을 죽인다. 그리고 일찌기 이각 곽사에게 도전한 바 있다. 그는 그 이름도 유.. 2013. 4. 27.
여포(呂布)는 개세효웅(蓋世梟雄)인가? 글: 이치아(李治亞) 여포는 아주 잔인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정원(丁原)을 죽였다; 여포는 아주 잔인했다. 자신을 발탁한 바 있는 동탁(董卓)을 죽였다. 대의멸친으로 보이고, 여포가 정의를 추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도 여포를 그렇게 봐주지 않았다. 비록 .. 2013. 4. 13.
척설오추(踢雪烏騅): 황제가 하사한 천리마 글: 안입지(安立志) 최소한 호복기사(胡服騎射)부터, 전마(戰馬)는 군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반려였다. 북방의 흉노, 거란, 여진, 몽골등 민족이 중원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심지어 유라시아대륙을 종횡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기병(騎兵)이 강대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은 냉.. 2012.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