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량8 당태종은 왜 위징의 묘비를 부수었다가 다시 세웠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당태종(唐太宗)과 위징(魏徵)은 지금까지 현군직신(賢君直臣, 현명한 군주와 직언하는 신하)의 모범으로 얘기되었다. 위징이 살아있을 때에는 당태종이 그를 '거울'로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돈관계를 맺었다. 위징이 죽었을 때, 당태종은 5일간이나 조회를 열지 않고, 친필.. 2008. 12. 6. 당태종의 후계자 선정 배경 만년의 당태종에게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태자문제였다. 정관17년 4월, 이승건(李承乾)이 태자위에서 폐위되었다. 이후 태자가 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장손황후의 또 다른 두 아들이었다. 바로 위왕(魏王) 이태(李泰)와 진왕(晋王) 이치(李治)였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이태의 조건이 훨씬 뛰어났다. .. 2007. 5. 2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