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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6

1861년: 함풍제(咸豊帝)와 공친왕(恭親王) 글: 언구림(言九林) 1861년, 러시아는 농노제를 폐지했고,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제국의 운명도 마찬가지로 미묘한 전환점에 놓여 있었다. 이 해에 두 가지 큰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청나라조정에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이 성립되었고, 다른 하나는 함풍제가 열하(熱河)에서 사망한다. 1. 함풍제의 존엄 총리각국사무아문은 이 해의 1월에 성립된다. 나중에 '총리아문'이라고 약칭된다. 이전에 외국관련업무를 처리하던 중앙기관은 "무이국(撫夷局)"이었는데, 이는 임시기구였다. "무이"에서 "총리각국사무"로 바뀐 배후에는 청나라조정의 외교에 대한 심리상태가 미묘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함풍제 혁저(奕詝)에 있어서, 도광제(道光帝) 시절 '영이(英夷, 영국오랑캐)'에 패배한 것.. 2022. 8. 9.
함풍제는 왜 숙순(肅順)을 중용했을까? 글: 왕개새(王開璽) 북경사범대학 역사학원 교수 역사학자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재원(載垣), 단화(端華), 숙순등은 북경에 있을 때, 함풍제가 중시한 대신들이다. 함풍제를 따라 열하(熱河)로 도망친 후에는 다른 왕공대신들도 없고하니, 재원등 그 중에서도 특히 숙순이 함풍제의 신.. 2017. 3. 29.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2) 지자천려 필유일실(智者千慮 必有一失)인 법이다. 함풍제가 임종시에 정교하게 설계한 권력분배방안은 기실 여러 방면의 견제로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황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안배는 보기에는 교묘하게 균형을 맞춘 것같고, 전혀 빈틈이.. 2015. 10. 11.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적장신분패(嫡長身分牌) 동치제편(1) 함풍제는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가 없었다. 함풍제는 조부인 가경제처럼 후계자를 느긋하.. 2015. 10. 11.
청나라궁중투쟁: 고명대신 숙순(肅順)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글: 오구(吳鉤) 함풍11년(1861년) 칠월 십칠일, 이게 겨우 이립(而立, 30)의 나이가 된 함풍제는 열하행궁(熱河行宮)에서 병사한다. 임종때, 그는 구두로 두 가지 유지(諭旨)를 남긴다.: "봉주유(奉朱諭): 황장자 어명(御命) 재순(載淳)을 황태자로 세운다.", "봉주유: 황장자 어명 재순을 황태자.. 2013. 12. 21.
함풍제는 임종전 십일간 권력분배방안을 어떻게 설계했는가? 글: 역사상나사사(歷史上那些事) 황위계승자문제에 대하여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함풍제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서태후(자희태후)가 낳은 재순(즉, 나중의 동치제)뿐이다. 그러므로, 옹정제때 만든 비밀건저(秘密建儲)도 실시할 필요성과 가능성이 없었다. .. 2012.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