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동22 하나의 민족에게 최대의 비애는 무지(無知)가 아니라, 무지를 자랑이라 여기는 것이다. 글: 뇌이(雷頤) 역사는 사악한 선생이다. 단지 자유인에게만 진상을 말해주어서, 오직 자유인만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자격과 능력이 있다. 서방을 배우는 학습과정에서, 근대 중국인들은 시종 진정한 문제를 찾지 못했다. 소위 남원북철(南轅北轍)이다. 방향이 틀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헛일인 것이었다. 이하지방(夷夏之防) 아편전쟁때, 임칙서(林則徐)는 광동으로 가서 방어를 했다. 다만 그는 영국인을 전혀 몰랐고, 적의 상황에 대하여도 전혀 몰랐다. 당시 서양인은 무릎을 굽힐 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을 누가 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모두 그렇다고 믿었다. 그래서 임칙서도 믿었다. 일찌기 외국사신이 건륭제를 만날 때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그들이 무릎을 꿇기 원치 않는 것이.. 2022. 1. 8. 누가 서태후로 하여금 서방열강에 선전포고하게 하였는가? 글: 후유(煦濡) 1900년 6월 21일, 서태후는 광서제의 명의로 각국에 선전포고하는 조서를 내린다. 서태후는 서방열강의 여러가지 죄행을 나열했다. "삼십년동안, 우리나라가 인자하고 후덕하게 다독거리는 것을 빌미로 그들은 갈수록 발호하며 우리나라를 핍박하며, 우리의 토지를 침범하고, 우리의 인민을 유린하고, 우리의 재물을 강탈해갔다." "그들은 스스로 교화지국이라고 하면서 예의없이 횡행하고 병력과 무기의 날카로움을 믿고 이렇게까지 했다." 서태후는 이렇게 분노를 표시한 후, 마지막에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선전구호를 내놓는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만고에 수치를 남기기보다 들고 일어나 자웅을 겨뤄보아야 한다!" 이 선전포고를 전환점으로 하여, 청정부는 정식으로 서방열강과 갈라지고, 중국과 서방열강의 전.. 2021. 6. 22. 이홍장(李鴻章)과 좌종당(左宗棠)은 무슨 일로 20년간 계속 싸웠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만청(晩淸) 중흥사대명신(中興四大名臣)중 이홍장, 좌종당은 20년간 좌종당이 1885년 사망할 때까지 명쟁암투(明爭暗鬪)를 벌였다.(나머지 2명은 증국번과 장지동이다) 이홍장과 좌종당은 무슨 일로 20년간이나 싸운 것일까? 동치3년(1864년), 태평천국이 멸망할 때, 이홍장과 좌종당의 모순이 폭발한다. 이홍장 수하의 회군(淮軍)은 상주(常州)를 공격하려 함락시켰고, 태평천국의 호왕(護王) 진곤서(陳坤書)를 붙잡아 죽였다. 이 기초 위에서, 강소 남부지구의 태평군은 기본적으로 모두 제거했다. 청나라는 이홍장에게 기도위(騎都尉)의 세직(世職)을 내린다. 이때 증국번의 상군(湘軍)은 이미 태평천국의 도성인 천경(天京)을 포위한지 오래 되었다. 쌍방은 마지막 결전을 벌이고 있었다. 상.. 2020. 11. 26. 과거제 폐지의 과정 글: 맹헌실(孟憲實) 팔고문(八股文)을 폐지하는 것은 과거제도의 고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특과(經濟特科)의 설립은 고시제도의 새 방향을 대표한다. 엄수(嚴修, 1860-1929), 천진사람이며 광서9년 진사이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생한 후, 귀주성학정(貴州省學政)에 임명된다. 현.. 2019. 5. 24. 영년(英年): 서태후가 총애한 풍수가 글: 포강객(浦江客) 광서24년(1898) 팔월 초엿새, 서태후는 정변을 일으켜, 변법을 시행하는 광서제는 영대(瀛臺)에 연금하고, 훈정(訓政)이라는 명목으로 최고권력을 다시 장악한다. 기실 1년전에, 대권을 놓칠까 우려하던 서태후는 이미 광서에제게 손을 쓴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칠왕분(七.. 2019. 1. 20. 고대의 시호(諡號)제도와 규칙 글: 배주품역사(杯酒品歷史)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두껑을 닫고나서 결론을 내린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대한 시비공과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와 문무대신이 죽은 후에 조정은 그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1개의 글자로서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호가 그냥 간단한 글자 1자는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황제의 시호와 묘호는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는 우리가 그를 성조인황제(聖祖仁皇帝)라고 부른다. '성조'는 묘호(廟號)이고, '인(仁)'은 시호(諡號)이다. 황제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불문율이 있다. 조(祖)는 공(功)이 있어야 하고, 종(宗)은 덕(德).. 2019. 1. 8.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