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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희태후10

동치제(同治帝)의 사인은 매독인가 천연두인가? 글: 시습사사(時拾史事) 동치13년말, 대청은 다시 한번 황제가 바뀌게 된다. 조정은 대행황제(사망한 전임황제를 가리킴)의 유조(遺詔)를 반포한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짐은 몸이 원래 강건했으나, 금년 십일월에 천화(천연두)에 걸렸다. 조심해서 조리했으나, 날이 갈수록 원기가 약해지고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이전에 우리는 얘기했었다. 청나라황제의 유조에 사인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동치제는 명확하게 유조에서 자신이 천연두로 사망한다고 적었다. 에도 편자는 다시 한번 동치제가 천연두고 사망했다고 적는다: "천연두에 걸려 성체가 나빠지고 결국 신민을 떠나게 되었다." 청나라황제중에서 동치제는 수명이 가장 짧은 황제이다. 그전까지 이 기록보.. 2021. 11. 17.
광서제의 죽음(1): 서태후에 유폐당한 광서제는 어떻게 죽었는가?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담사동(譚嗣同), 강유위(康有爲)와 무술변법의 '삼위일체'의 주장으로서, 그들은 성공과 실패를 함께 할 운명이 되었다. 과연 '백일유신'이 실패한 후, 담사동은 죽임을 당하고, 강유위는 망명했으며, 홀로 남아서 죽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게된 운나쁜 광서제는 변법실패의 책임을 혼자서 지게 돈다. 사갈처럼 악독한 친이모(서태후)에게 영대(瀛臺)에 유폐되어 힘들게 10년을 살았다. 원래는 서태후가 죽으면서 그는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데, 결국 미스테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은 천고의 수수께끼가 된다. 가경제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모두 외인들은 알 수 없는 사인불명이었다. 활실에 태어나면 자유란 없는 것이다. 원래 청나라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었던 그는 대청을 회생시킬.. 2021. 9. 16.
여후(呂后)는 광견병으로 죽었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고대 중국에 3명의 국가통치권을 장악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들은 각각 여치(呂稚, 즉 여후), 무조(武曌, 즉 무측천)과 자희태후(慈禧太后, 서태후)이다.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여인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욕마이 있고, 일단 정점에 도달하면 전.. 2018. 11. 7.
서태후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어떻게 안배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자희(慈禧), 만주족. 예허나라씨. 안휘 휘냥 지광태도, 증삼등승은공 혜징(惠徵)의 딸. 옥첩(玉牒), 즉 황족족보에 기록된 내용은 이러하다: "예허나라씨. 혜징의 딸" 아명은 난아(蘭兒)이며, 예허나라가족중에서는 그녀가 행아(杏兒)라고 불리웠다. 함풍원년, 즉 1851.. 2018. 2. 19.
동치황후(同治皇后)의 죽음 글: 등해춘(鄧海春) 운명이 비참했던 청나라 황후를 들자면 아마도 사람들은 마지막 황후 완용(婉容)을 떠올릴 것이다. 완용은 확실히 운명이 비참했고, 시신이 어디에묻혔는지도 찾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 국구(國舅)인 곽포라 윤기(郭布羅 潤麒)의 동의를 받아 2006년 "초혼"의 방식으로 .. 2017. 12. 21.
숙순(肅順): 빈사상태의 청왕조를 살려냈지만, 청왕조에 의하여 잔혹하게 처형되다 글: 아방단대장금(我方團隊張嶔) 1840년이후의 청나라말기역사는 쳐다보면 항상 울분이 인다. 특히 그중 함풍연간을 보면 더욱 울분이 일어 피를 토할 지경이다. 남쪽의 태평군(太平軍), 중원의 염군(捻軍), 그리고 조직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영불연합군, 매년 이렇게 고난을 겪고 있었.. 2017. 7. 13.
서태후가 47년간이나 중국을 통치한 원인은? 글: 왕개새(王開璽) 1861년 11월, 서태후가 공친왕 혁흔과 연합하여 신유정변을 일으킨 때로부터 3번의 수렴청정을 거쳐 1908년 사망할 때까지, 서태후는 중국을 47년간이나 통치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은 서태후가 정치권모술수에 능하여, 음험하고 독랄한 독특한 정치수완을 지니고 있.. 2012. 6. 6.
어느 미국인이 본 서태후 글: Isaac Taylor Hedland 비록 지금 서태후(자희태후)는 세상에 살아있지 않지만, 여러 사람들이 공개적인 장소 혹은 비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녀와 교분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일생과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하여 관.. 2008. 4. 30.
한 서방기자가 목격한 서태후의 장례식 글: 헨리 보렐 자희태후(慈禧太后, 서태후)의 방대한 영구(靈柩)가 가마꾼들에 의하여 보렐이 서 있는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금황색의 비단이 영구를 덮고 있는데, 거기에는 푸른색 봉황과 붉은색 구름무늬와 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영구의 윗부분에는 금색 원구가 상감되어 있었다. 도로의 건너편.. 2007. 9. 14.
서태후(西太后)의 글씨 2006.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