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초8 여불위(呂不韋)는 왜 음독자살해야 했을까? 글: 최찬성공(璀璨星空) 자고이래로 공신으로서 자신의 목을 잘 보전해서 선종(善終)한 자는 아주 적었다. 거기에는 윗사람이 각박하고 은혜를 갚을 줄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신하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스스로 죽을 길을 연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모든 책임을 윗사람에게 지울 수 없기도 하다. 중국역사기록에서 공신을 처음 죽인 사람은 진시황이 아니다. 월왕 구천이다. 여기에는 구천이 각박하고 은혜를 모르는 점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월나라의 복국에큰 공을 세운 문종(文種)과 범려(范蠡)가 모두 초(楚)나라 사람이며, 초나라로부터 월나라를 강화시켜 오나라를 약화시키려는 사명을 띄고 있던 사람들이다. 오나라가 멸망하자, 이 두 명의 인재들이 다음에 해야할 일은 무엇이었.. 2021. 5. 1. 서한(西漢)에는 왜 재혼한 황후가 많았을까? 글: 진사황(秦四晃) 열심히 고증해본 것은 아니고 개인의 유한한 학문으로 추측해보면, 우리의 진,한 심지어 그 이전시기에는 남녀 및 혼인관계가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것같다. 예를 들어, 진시황 영정의 모친 조희(趙姬)는 여불위, 남편인 자초(子楚), 그리고 노애(嫪毐)와의 사이에 자식.. 2020. 1. 13. 진시황 모친 조희(趙姬)의 신세내력의 수수꼐끼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조희(趙姬)는 여불위(呂不韋)를 도와 고금중외에 가장 유명한 리스크투자에 성공하였고, 진시황을 낳아서 중국의 역사발전에 영향을 끼친 여인이다. 그녀는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신세내력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사기.여불위열.. 2018. 7. 17. [황자쟁위술] 여인노선술(女人路線術) 파결총희패(巴結寵姬牌) 자초편외 ‘베겟머리송사’의 효과에 대하여 자고이래로 정인군자들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영웅도 미인이라는 관문은 넘기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英雄難過美人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애교나 눈물앞에 무너지지 않는 남자는 드물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남자의 통병(通病)일 것이다.. 2015. 10. 11. 진시황의 "사망" 의식 글: 유강(劉剛), 이동군(李冬君) 세상의 그 어느 군주도 죽음을 진시황처럼 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즉위한 다음 해부터 자신의 묘를 준비한다. 그 때 그는 겨우 14살이었다. 모든 일은 태후(太后)와 중부(仲父)가 처리하고 있을 때이다. 왕권은 사망의 그림자 속에 있다. 중부는 바로 여불위(.. 2013. 11. 10. 중국의 태상황(太上皇) - 당이전 글: 소가노대(蘇家老大) 중국의 태상황은 중국황권정치의 특산이다. '가천하(家天下)'의 특유한 현상이다. 사서(辭書)에는 '태상황'을 이렇게 해석한다: "제의 부친, 태상황제(太上皇帝)도 한다. 약칭하여 상황(上皇)이라고도 한다." 황제에서 태상황이 되는 것은 현대의 정치술어로 말하자.. 2012. 3. 14.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