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원창5

이치(李治)는 황태자(皇太子) 자리를 그저 주워먹었는가?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당태종 정권17년(643년)의 사월, 흘간승기(紇干承基)가 당태종 이세민에게 고발한다. 태자 이승건(李承乾)이 모반을 꾀한다고, 당태종 이세민은 대신을 소집하여, 조사한 후, 흘간승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태자 이승건을 폐출시키고, 그를 서인으로 .. 2018. 7. 28.
당태종의 태자 이승건(李承乾)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당태종 이세민의 적장자로서 8살때 태자가 된 이승건은 당연히 역사의 행운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나중에 서둘러 부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죽게 되었을까? 얘기하자면 길다. 이승건은 어렸을 때 매우 총명하고 철도 들고 결단력도 있었다. 진중하다고 할 .. 2017. 12. 29.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내선득위패(內禪得位牌) 이세민편외 요순우의 선양이후, 역사는 가천하(家天下)의 시대로 접어든다. 그 이후, 한(漢), 위(魏), 진(晋), 남조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 그리고 북조의 주(周), 수(隋), 당(唐)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양의 방식으로 왕조가 교체된다. 선양이 이렇게 매번 활용된 원인은 바로 구황제와 신황제의 .. 2015. 10. 11.
당태종의 14명의 아들 글: 일득재주(一得齋主)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일대명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을 얘기하자면, 그들은 대부분 싹수가 없었다. 결말도 아주 비참했다. 그중 3명은 피살당하고, 3명은 자살했으며, 3명은 요절했고, 1명은 유폐되었다. 2명은 서인으로 폐해진 후 다시 유배.. 2012. 8. 15.
이승건(李承乾) : 당태종의 불운한 황태자 이승건 묘비 일대의 명군인 당태종은 태자교육에 아주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생각과 달라졌고, 그가 처음에 세웠던 황태자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후보자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정관말년이 되면서, 태자를 폐위하는 일과 새로 태자를 세우는 일이 당태종의 정치역정에서 가장 골.. 2007.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