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화운초(和運超) 당선종 이침이 즉위한 후,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람들을 회유하여, 이덕유(李德裕)에게 악의적인 보복을 진행하며, 그가 했던 것은 모조리 반배하며 회창(會昌)연간의 인원을 축소정비하는 책략을 바꾸어 버린다. 대중원년(847년) 하반기, 이부(吏部)에서 "회창4년에 주현 관내에서 감원했던 383명을 다시 증원했다"고 보고한다. 문학가인 마식(馬植)은 과거에 이덕유에게 중용되지 못했는데, 당선종은 그를 형부시랑으로 삼고, 염철전운사를 맡긴다. 취원식(崔元式), 위종(韋琮)등 신진관리도 대부분 이덕유가 있을 때는 중시되지 않던 자들이다. 위모(魏謨, 위징의 오대손, 대중후기에 서천절도사가 된다)같은 인물이 중용된다. 그는 일찌기 양여사(楊汝士), 이종민(李宗閔), 우승유(牛僧孺)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