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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20

"구자탈적(九子奪嫡)"때, 왜 황십사자(皇十四子) 윤제(胤禵)는 동모형제(同母兄弟)인 황사자(皇四子) 윤진(胤禛)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글: 이뢰일(李磊一) 최근 시간이 남아서 다시 한번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강희제(康熙帝) 말년에 발생한 소위 '구자탈적'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즉, 황위를 서로차지하기 위하여 황자들간의 다툼이 발생한 것이다. 황장자(皇長子) 윤제(胤禔), 폐태자(廢太子) 윤잉(胤礽), 황삼자(皇三子) 윤지(胤祉), 황사자 윤진(나중의 옹정제), 황팔자(皇八子) 윤사(胤禩), 황구자(皇九子) 윤당(胤禟), 황십자(皇十子) 윤아(胤䄉), 황십삼자(皇十三子) 윤상(胤祥), 황십사자 윤제이다. 이들중에서 한쌍의 형제가 아주 특수하다. 그것은 바로 황사자 윤진과 황십사자 윤제로 동모친형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적대진영에 속했다. 이치대로라면 고인들이 항상 말하는 것처럼, "상진친형제(上陣親兄弟),.. 2023. 6. 22.
옹정제(雍正帝)는 왜 구자탈적(九子奪嫡)후 반대편에 섰던 황십자(皇十子) 윤아(胤䄉)를 관대하게 처리했을까? 글: 사설신어(史說新語) 청나라 강희제(康熙帝)떄, 강희제의 황자(皇子)들 사이에 황위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역사에서 구자탈적(九子奪嫡)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최종적으로 황사자(皇四子) 윤진(胤禛)이 승리하여 황제에 오르니 그가 바로 옹정제(雍正帝)이다. 구자탈적때, 처음에는 황장자(皇長子) 윤제(胤禔)와 황태자(皇太子, 皇二子) 윤잉(胤礽)간의 명쟁암투였고, 그들이 양패구상(兩敗俱傷)한 후, 나머지 7명의 황자들은 3개의 파로 나뉘어 황위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황삼자(皇三子) 윤지(胤祉), 황사자(皇四子) 윤진, 황팔자(皇八子) 윤사(胤禩)는 황태자의 자리를 놓고 싸우게 된다. 그 중 황사자 윤진과 황팔자 윤사간의 투쟁이 격렬했다. 황사자의 편에 섰던 황자로는 황십삼자(皇十三子) 윤상(胤祥), 황십육자(.. 2023. 1. 18.
옹정제(雍正帝)는 왜 아홉째 동생 윤당(允禟)을 죽였을까? 글: 역사상적괴점(歷史上的拐點) 옹정4년(1726년) 팔월 이십칠일, '팔야당(八爺黨)'의 핵심구성원중 하나였던 윤당(胤禟, 나중에 피휘로 允禟으로 개명)은 3개월간 각종 혹형을 받은 후, 보정(保定)의 한 감옥에서 처참하게 죽는다. 이 날은 마침 윤당의 마흔여섯살 생일이었는데, 이제는 그의 기일이 되어 버렸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경성에 전해졌다. 옹정은 그 소식을 들은 후, 그저 담담하게 "자복명주(自伏冥誅)"라고 한 마디 했다. 이 말의 뜻은 바로 윤당은 죽어 마땅했고,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의 아홉째 동생인 윤당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옹정제가 그를 그렇게 괴롭혔고, 죽고나서도 전혀 애석해하지 않다니. 이 모든 것은 옹정제가 즉위한 후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 2022. 10. 19.
점간처(粘杆處): 옹정제가 만들고, 가경제가 없앤 신비의 특무조직 글: 양우모초(样雨慕初) 이전에 의 자매편 시리즈를 볼 때, 옹정이 가장 의지하던 기구의 명칭이 '점간처'라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왜냐하면, 이름을 너무 성의없이 지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건 작가가 무신경해서라고 생각했다. 인식 속에서 고대의 각 부문의 명칭은 장엄하였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역사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원래 '점간처'가 역사상 진짜 존재했던 것이고, 옹정제때 영향력이 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점간처"라는 명칭은 겉으로 보기에 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아주 실질적인 지하특무기관이었다. 명나라때의 동창, 서창과 금의위에 해당한다. 주요작용은 정보를 수집하고, 백관을 감찰하는 것이다. 이는 황제에게 적지 않은 편의와 정보를 제공하게 되고, 황제가 전면적으로 조정을 장악.. 2021. 2. 9.
건륭제(乾隆帝)의 형제들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건륭제는 중국고대의 유명한 제왕이고, 강건성세를 만든 황제이다. 그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생산을 발전시키며, 인구를 늘였고, 동란을 평정하며 국가의 주권과 이익을 보호했다. 선조들의 기초 위에서 민족의 조화로운 발전을 더욱 공고히 했다.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괜찮은 몊이다. 그렇다면, 건륭제가 즉위한 후, 그의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건륭제의 여러 형제들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그의 부친부터 얘기하기로 하자.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건륭제의 부친은 옹정제이다. 그는 비록 13년간 재위했지만, 완벽하게 강희와 건륭의 사이를 이어주었다. 그는 청나라에서 가장 업적이 많은 황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그가 황위를 부정한 수단으로 얻었다고 말하여.. 2020. 11. 27.
이현친왕릉(怡賢親王陵): 지금은 폐허가 된 윤상(允祥)의 묘 글: 방효욱(方曉旭) 애신각라 윤상(1686.4.16 - 1730. 5. 4)은 청성조 강희제의 13째 아들이고, 생모는 경민황귀비 장가씨(章佳氏)이다. 윤상은 옹친왕 윤진(胤縝)과 관계가 가장 가까웠고, 옹정제도 그를 남다르게 대우한다. 윤진이 즉위한 후 윤상은 화석이친왕(和碩怡親王)이 되어, 조정을 총.. 2019.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