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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11

옹정은 세 아들을 어떻게 차별했는가? 글: 독력견문(讀歷見聞) 옹정은 강희와 비교했을 때 자식이 훨씬 적다. 그의 생전에 성년이 된 아들은 홍시(弘時), 홍력(弘曆), 홍주(弘晝)의 세 명뿐이다. 이 삼형제가 옹정에게서 받은 부친의 사랑은 천양지차라 할 수 있다. 홍력이 후계자가 된 것을 제외하고, 홍시, 홍주의 두 형제는 모.. 2018. 6. 27.
[황자쟁위술] 이퇴위진술(以退爲進術) – 후발제인패(後發制人牌) 이런 말이 있다: “고개내민 새가 총을 맞고(槍打出頭鳥), 솟아나온 나무가 바람에 쓰러지고, (風摧秀林木), 튀어나온 서까래가 먼저 썩는다(露頭椽子先腐朽).”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가면 위험이나 곤란에 처하는 경우에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원장이 휘주를 .. 2015. 7. 27.
[황자쟁위술] 여론제조술(輿論製造術) – 신화이기패(神話利己牌) 주(周)왕조때부터 군왕이 스스로를 “하늘의 아들(天子)”로 칭한 후, 황제가 되려는 자들은 스스로 ‘천명(天命)’을 받았음을 입증해야 했다. 그리하여, 진승오광의 난, 백련교의 난,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실패한 혁명에서부터 유방, 징기스칸, 조광윤, 주원장, 누르하치등 각 왕조의 .. 2015. 7. 27.
옹정제는 왜 연갱요(年羹堯), 융과다(隆科多)를 제거했는가? 글: 일득재주(一得齋主) 연갱오, 융과다는 원래 옹정이 윤사집단을 상대하는 두 개의 칼날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옹정제 즉위후 윤사집단보다 먼저 제거되어 버린다. 도대에 무슨 원인에서였을까? 일부 청사연구자들은 연갱요, 융과다가 "교종불법(驕縱不法, 교만하고 방자하여 법을 지키지 않다)"하였다는 것을 유일한 답안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확하다. 그리고 연갱요, 융과다가 제거당한 진상을 말해주지도 않는다. 옹정제는 윤사, 윤당, 윤제를 견제하기 위하여, 약간의 정치적인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그런 조치가 효과를 낼지 말지는 옹정제가 정치적으로 실적을 내느냐마느냐에 달렸다. 연갱요가 청해반란을 평정한 것은 조야에 옹정제가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데 충분했다. 그리고 .. 2015. 1. 2.
옹정제는 왜 동복(同腹) 동생과 사이가 나빴을까? 글: 우좌(于左) 옹정제의 동생들 가운데 한 사람의 신분이 가장 특수하다. 그는 바로 십사아거(十四阿哥) 윤제(胤禵)이다. 옹정제는 모두 2명의 동모(同母) 동생을 두었다. 육아거(六阿哥) 윤조(胤祚)는 요절해서 윤제만이 유일하게 배같은 동생으로 남았다. 이치대로라면, 형제 두 사람.. 2014.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