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 8

유비(劉備)가 건립한 정권은 분명 "한(漢)"인데, 왜 "촉(蜀)"이라 부르는 것일까?

글: 장생전(張生全) 유비가 황제를 칭할 때, 국호로 선정한 것은 "한(漢)"이었다. 다만 후세에 이르러 우리는 기본적으로 유비가 건립한 이 국가를 '촉(蜀)'이라 부르거나, '촉국(蜀國)'이라 부른다. 기껏해야 '촉한(蜀漢)'으로 불러준다. 결국 유비가 당초 건국할 떄 정한 국호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때문일까? 만일, 이렇게 부른다면 목적은 한왕조의 '한'과 구분하기 위해서일 것인데, 그것도 아닌 것같다. 역사상 건국때 '한'으로 지은 왕조는 아주 많다. 그러나 후인들은 그들이 취한 국명과 한왕조의 '한'이 중복된다고 여겨서 '한'이라는 국명을 빼버리지는 않았다. 양한(兩漢, 서한과 동한)의 사이에 유현(劉玄)이 건립한 '한'이 있는데, 구분을 위하여 우리는 "현한(玄漢)"이라 부른다...

조어성(釣魚城): 몽골철기가 36년간 함락시키지 못한 산성.

글: 삼창(森彰) 1234년 송(宋)-몽골(蒙)연합군이 금(金)을 멸망시킨 후, 남송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 다음 해, 몽골칸 오고타이가 서로는 천섬(川陝)에서 동으로는 회하(淮河)하류에 이르는 수천리전선에서 동시에 남송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송-몽골전쟁이 전면적으로 발발한 것이다..

괴뢰황제 유분자(劉盆子): 신하들에게 퇴위하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다.

글: 풍전사감(瘋癲史鑒) 이런 말이 있다. 털뽑힌 봉황은 닭보다 못하다고. 서한 말기, 번숭(樊崇)은 산동 거현(莒縣)에서 적미군(赤眉軍)을 이끌고 거병했다. 반군은 용맹하게 싸워서 연전연승하며, 규모를 계속 확대해서 장안 부근까지 쳐들어간다. 승리를 눈앞에 두었는데, 병사들은 피..

염민(冉閔): 그는 한족의 대영웅일까? (1)

글: andy 염민의 자는 영증(永曾)이고, 소자(小字)는 극노(棘奴)이며, 원명은 석민(石閔)이며 한대 이민(李閔)이라고 하기도 했다. 위군(魏郡) 내황(內黃, 지금의 하남성 안양 내황 고제향 채외촌) 사람이다. 그는 1600여년전의 동진 및 남북조시대에 살았던 명장 중 하나이다. 갈호조(羯胡趙, ..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청군측패(淸君側牌) 오초칠국의난

중국 역대의 반란에서 명분으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을 꼽는다면 단연 “청군측”이다. 즉, 황제의 곁에 있는 소인/간신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물론, 거병의 목적이 단순히 소인/간신만 제거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거병의 목적은 황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다만, 거병시 ..

유수(劉秀): 그는 어떻게 농민에서 황제로 되었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한나라때 유씨황족에 기인(奇人)이 나타난다. 만일 왕망의 찬탈이 없고, 난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고조의 9대손 유수는 일생동안 아마도 약간의 학문을 지니고, 열심히 일하는 농민으로 살았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풍속최미(風俗最美)”, “유학최성(儒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