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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백온17

유백온(劉伯溫): 장량, 제갈량에 비견되는 그는 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 글: 흑색군(黑色君) 민간전통이야기에서 유백온은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과 나란히 이름을 떨치는 지자(智者)이다. 주원장(朱元璋)이 명나라를 창립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한다. 그후 공성신퇴(功成身退)하여 귀은전원(歸隱田園)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시기를 받아 주원장 혹은 호유용(胡惟庸)에게 독살당한다. 역사상 유백온은 정말 그렇게 신기하였을까? 왜 귀은한 후에 선종하기 힘들었을까? 유백온은 주원장의 눈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유백온은 언제 관직에 나왔을까? 주원장의 부모가 아직 건재하고, 주원장 본인이 아직 지주를 위해 소를 키우고 있을 때, 유백온은 이미 지방관리를 지낸지 오래되었다. 그 자리에서 4,5년간 있은 후, 현(縣)에서는 더 이상 승진할 기회가 없다고 보고, 또한 동료들과의 관계도.. 2023. 7. 8.
유방(劉邦)은, 주원장(朱元璋), 이연(李淵)과 비교하여, 가장 힘들게 천하를 얻었다. 글: 역사경전비(歷史經典沸) 유방은 대한(大漢)의 개국황제로, 그의 주요 적수는 대진(大秦)과 항우(項羽)였다. 이연은 대당(大唐)의 개국황제로, 그의 주요 적수는 대수(大隋)와 왕세충(王世充)이었다. 주원장은 대명(大明)의 개국황제로, 그의 주요 적수는 원조(元朝)와 진우량(陳友諒)이었다. 유방은 평민이고, 주원장도 평민이면서 거지까지 되었었다. 이연흔 황친국척이다. 그들의 출신으로 보면, 이연이 강산을 얻기 가장 쉬운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연은 신분이 귀족이니, 평생 다른 사람들이 뛰어넘기 어려운 계층의 이점이 있었다. 즉, 그의 출발점이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더욱 쉽게 최초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왕왕 한 사람에 있어서 일생에서 최초의 기반을.. 2022. 11. 21.
명초풍운(明初風雲): 유백온(劉伯溫) vs 이선장(李善長)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유백온은 명나라초기의 개국공신이며, 한때 주원장에게 중용되었다; 이선장도 주원장의 믿을만한 신하로 주원장으로부터 중용되었다. 이 두명의 문신이 대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립한 후, 중앙행정기관은 원나라의 중서성(中書省)을 .. 2020. 1. 7.
명나라의 최고군사지휘관은? 글: 오수(吳垂)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립한 후, 군대관리에 대하여 고심을 하게 된다. 명나라는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했고, 당연히 무장들의 공로가 가장 컸다. 그리하여 무장들이 발호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그리고 소수인들을 제외하고 대두분의 무장들은 스스로를 절제할 줄 몰랐다. 가.. 2019. 9. 5.
주원장은 왜 음력 정월 초나흘에 황제등극식을 거행했을까? 글: 경전회모(經典回眸) 여러 민간소설에서 유백온(劉伯溫)은 운주유악(運籌帷幄)의 기문둔갑(奇門遁甲)도 알고, 산무유책(算無遺策)의 '대선(大仙)'으로 그려진다. <삼국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의 영향을 받아, 유백온은 거의 또 다른 버전의 제갈량으로 그려졌다. 실제로 <명사.유.. 2019. 4. 18.
유병충(劉秉忠): 한인으로 쿠빌라이를 도와 남송을 멸망시킨 인물 글: 남몽도주(藍夢島主) 처음으로 "유병충"이라는 이름을 보게 된 것은 <명사>를 읽을 때였다. <명사.요광효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원공(袁珙)이 처음 도연화상(道衍和尙)을 만났을 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다: "정말 기이한 스님(異僧)이로다. 눈은 삼각형이고, 모습은 병든 .. 2019. 4. 7.
주원장과 유백온의 관계는 왜 점점 멀어졌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원장이 황제로 오르기를 전후하여, 유백온은 주원장을 위하여 운주유악(運籌帷幄), 결승천리(決勝千里)하였을 뿐아니라, 그를 도와 입강진기(立綱陳紀)하도록 도와주어, 대명제국의 개국에 큰 공헌을 세웠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좋았다... 2018. 12. 28.
나대강(羅大綱): 태평천국의 일류전략가, 그의 3가지 계책을 채택했더라면.... 글: 종횡역사(縱橫歷史) 1864년 6월, 상제가 천병천장을 보내주어서 '주요(誅妖)'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홍수전(洪秀全)은 태의(太醫)의 건의를 묵살하고, 계속 '첨로(甜露, 잡초)'를 먹고, 약물을 일체 먹지 않다가 사망하고 만다. 7월, 증국전(曾國荃)의 길자영(吉字營) 휘하의 대장 .. 2018. 12. 5.
바둑과 관련된 고대명인의 대련(對聯) 3건. 글: 간견역사(看見歷史) 바둑은 지자(智者)의 유희이다. 어떤 방면에서 보자면 기도(棋道)는 인생과 같고, 변수가 충만하다. 그리고 희망이 충만하다. 바둑은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이므로 고대에도 명인들의 바둑에 관한 대련이 탄생했다. 첫째, 송하위기(松下圍棋), 송자우수기자락(.. 2018. 8. 1.
남명(南明)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글: 한정우기(閑情偶記) <도화선(桃花扇)>에서 공삼임(孔尙任)은 마사영(馬士英)의 입을 빌어 아주 정확한 시세판단을 한 바 있다: "나라에 변고가 있어야, 우리같은 자들이 뜻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일찌기 여러 사적(史籍)을 살펴봤다. 역사에 대한 인식과 분석이 어떤 때는 희극가가.. 2018.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