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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유방)

유방(劉邦)은, 주원장(朱元璋), 이연(李淵)과 비교하여, 가장 힘들게 천하를 얻었다.

by 중은우시 2022. 11. 21.

글: 역사경전비(歷史經典沸)

 

유방은 대한(大漢)의 개국황제로, 그의 주요 적수는 대진(大秦)과 항우(項羽)였다.

이연은 대당(大唐)의 개국황제로, 그의 주요 적수는 대수(大隋)와 왕세충(王世充)이었다.

주원장은 대명(大明)의 개국황제로, 그의 주요 적수는 원조(元朝)와 진우량(陳友諒)이었다.

 

유방은 평민이고, 주원장도 평민이면서 거지까지 되었었다. 이연흔 황친국척이다. 그들의 출신으로 보면, 이연이 강산을 얻기 가장 쉬운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연은 신분이 귀족이니, 평생 다른 사람들이 뛰어넘기 어려운 계층의 이점이 있었다. 즉, 그의 출발점이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더욱 쉽게 최초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왕왕 한 사람에 있어서 일생에서 최초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런 최초의 기반을 갖게 되면 거기에 개인적인 영향력과 명망을 보태서, 반란을 일으키기 쉬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연은 최초의 기반을 아주 손쉽게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유방이나 주원장은 이연같은 이점이 없었다. 그래서 세 사람중에서 이연은 황제에 오르는 것이 보다 쉬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원장과 유방 두 사람중 누가 황위를 얻기에 더욱 손쉬었을까?

주원장이 좀더 손쉬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주원장의 출발점은 유방보다 낮았지만, 주원장은 군대에 들어간 후, 혼인을 통하여 좋은 부인을 얻었다. 즉 나중의 마황후(馬皇后)이다.

마황후의 부친 곽자흥(郭子興)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주원장은 최소한 이런 인척관계를 이용하여 군대내에서 명망을 키울 수 있었고, 그는 장인 곽자흥에 의해 직접 발탁될 수 있었다.

주원장은 그런 신분을 가진 후에 진급이 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나중에 둘은 싸우게 된다. 그렇지만, 그때는 이미 주원장에게 어느 정도 명망이 갖추어진 때였다. 어쨌든 그는 장인 곽자흥에게 감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주원장의 당시의 적수는 원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원나라는 몽골인이 건립한 것이고, 그들은 한인을 최하등백성으로 삼았다. 한인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었고, 그들은 단합하여 몽골인이 건립한 원왕조를 무너뜨리고자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주원장의 의거를 일으켰을 때, 더욱 쉽게 병사들을 모집할 수 있었으며 더욱 쉽게 병사들을 단결시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원나라를 제외하고 주원장에게 가장 큰 적수는 진우량이었다.

다만, 진우량이라는 인물은 유방의 적수인 항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항우는 개인적인 능력이건 아니면 군사재능이건 모두 진우량을 압도한다. 알아야 할 것은 항우는 서초패왕(西楚覇王)이었다. 중국역사상 황제는 아주 많았지만, 패왕은 그 후에 항우 한명이다. 

항우의 개인적인 능력과 명망은 제후들이 모두 칭신할 정도이었다. 당시 진우량이 가진 실력은 근본적으로 항우와 비견할 수 없었다. 다만 이런 항우도 결국은 유방에게 패배당한다.

그래서 주원장이 황제에 오르는 길에서 유방보다 훨씬 쉬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방이 황제에 오르기 가장 어려웠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중국역사상 최초로 평민에서 반란을 통하여 황제에 오른 인물이다. 그보다 앞서는 황제들은 모두 부자간에 황위가 전해졌다. 계층은 뛰어넘을 수 없는 홍구(鴻溝)였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을 유방은 해냈다.

진시황이 황제로 있을 때, 그의 가족은 이미 600여년, 30여대에 걸쳐 진나라를 경영해왔다.

다만, 유방은 겨우 7년의 시간을 들어 일개평민에서 자신의 실력만으로 한걸음 한걸음 올라서 황제가 된다.

이 기간동안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장량, 소하와 한신은 모두 유방의 부하들이다. 그들이 유방을 도우는 것은 직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관직이 모두 그보다 낮았다. 그보다 관직이 높은 사람은 아무도 그를 발탁해주지 않았고, 모두가 그의 적수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모든 난관을 그는 혼자서 극복했다.

유방은 또한 세 사람중에서 황제에 오르는 과정에서 전투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다. 특히 강력한 항우에 맞서서 싸웠다. 항우는 상승장군이라 할 수 있고, 항우는 그를 백번이나 이겼다.

다만, 유방은 한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설사 항우가 그의 세력을 모두 제거하더라도 그는 다시 권토중래했다. 그는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는 소강(小强)이라 할 수 있다.

유방은 자신의 인태력으로 유방을 이기고 계층을 뛰어넘어 황제가 된다. 그 어려움은 누구나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그와 항우의 싸움에서 그는 오직 한번 이겼다고 할 수 있다.

한번만으로도 충분했다. 100번 진들 어떻겠는가? 그저 101번째 이기면 되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101번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그래서 황제가 되는데 아무도 유방만큼 큰 압력을 받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하층출신이 황제에 오른 적이 없었다. 그는 강대한 대진과도 싸워야 했고, 다시 강대한 항우도 무너뜨린다.

그렇게 결국 제왕의 패업을 이루었다.

유방은 황제가 되는 것이 더욱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말해서 더욱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방 수하의 세 사람 장량, 소하와 한신을 보면, 이연과 주원장 수하의 사람들중 누가 그들을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유백온(劉伯溫), 이선장(李善長)과 서달(徐達)이 한초삼걸(漢初三傑)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역시 유방집단이 더욱 강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