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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17

토목보지변(土木堡之變)의 원흉인 왕진(王振)은 충신인가, 간신인가? 글: 역사상적괴점(歷史上的拐點) "토목보지변"은 명나라 수십년간 축적한 국력을 하루아침에 모조리 날려버린 사건이다. 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문신, 무장, 병사들이 부지기수였다. 이 전쟁은 명나라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그후 명나라는 다시 대규모로 병력을 일으켜 몽골을 공격하지 못한다. 알아야 할 것은 이때는 명나라가 수십만대군을 일으켜 몽골을 친지 겨우 25년이 지난 때였다. 그리고 이 비극을 일으킨 것은 바로 왕진이었다. 천순(天順)원년, 명영종(明英宗)은 왕진의 관직을 회복시켜주고, 영예롭게 장례를 치러주고(의관총), 왕진을 위해 사당을 지어 기념한다. 지금도 그 사당은 남아 있는데, 바로 베이징의 지화사(智化寺)이다. "왕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장례를 지내도록 하고, 사당을 세워주었다(賜王振祭葬, 立.. 2023. 1. 9.
시진핑과 홍얼다이(紅二代)가 철저히 갈라지게 된 3대원인 글: 연월일(年月日) 시진핑의 가장 위험한 적은 국외적대세력도 아니고, 반대파인사도 아니다. 시진핑은 최근 여러번에 걸쳐 특별히 당내집단을 언급했다. 그것이야말로 심복지환(心腹之患)이다. 보통집안 출신의 관리들은 일반적으로 비교적 조심스럽고 몰래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집단을 만들만큼 담량은 없다. 황친국척(皇親國戚)인 홍얼다이는 특수한 집단이다. 기층조직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집법부서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국사(國事)를 논하는 것이 가사(家事)를 논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고, 가사도 국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홍얼다이는 사위가 된 가짜홍얼다이와 홍산다이(紅三代)를 포함하여, 태자당(太子黨)이라고도 한다. 그들이 보기에, 천하는 그들의 것이고, 강산.. 2022. 2. 15.
수호전에서 무공이 양산오호(梁山五虎) 수준인 인물은 양산에는 4명, 양산밖에는 15명이 있었다. 글: 노하(老何) 양산오호는 임충(林沖), 관승(關勝), 진명(秦明), 호연작(呼延灼)과 동평(董平)을 가리킨다. 이 5명은 모두 마군두령(馬軍頭領)으로 각각 무공이 고강하여 양산의 기둥들이었다. 양산에는 비록 108명의 호한이 모여 있지만, 대부분은 무공수준이 평범했고, 오호수준에 이른 인.. 2019. 2. 22.
영락제(永樂帝)에 배향(配享)된 네 명의 공신 글: 역사상적나점사아(歷史上的那點事兒) 명나라 영락22년(1424) 명성조 주체는 북정에서 회군하는 도중에 유목천(楡木川, 지금의 내몽고 우주무친)에서 사망하고, 장릉(長陵)에 묻히며 묘호를 태종(太宗)이라 한다. 영락제 주체가 22년간 재위하는 동안, 명왕조는 경제가 번성했고, 국력이 .. 2018. 10. 16.
왕진(王震)의 자녀들 글: 진령신(陳令申) 왕진(王震), 1908년 4월 11일 호남성 유양현에서 출생. 신중국의 57명 상장(上將)중 한 명. 왕진은 19세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21세때 중국공농홍군에 참가하여 평생 혁명사업에 투신한다. 신중국의 해방, 사회주의건설과 개혁개방에 큰 공헌을 세운다. 그는 일찌기 중.. 2017. 12. 27.
홍루몽과 수호전은 첫부분이 10가지 점에서 놀랍도록 닮았다. 글: 이옥광(李玉廣) 홍루몽과 수호전은 모두 중국의 4대명저에 들어가고, 세상에 전해지는 판본이 비교적 많다. 필자는 이번에 이런저럴 판본은 모두 놔두고, 그저 통행본인 (124회본) 홍루몽과 통행본 (100회본) 수호전의 첫부분에 대한 대조비교를 해보기로 한다. 정확히 말하면, 홍루몽은 임대옥이 가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두 첫부분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고, 수호전에서는 사진이 노달(나중의 노지심)을 만나기 전까지를 첫부분의 범주로 보았다. 필자가 자세히 읽어본 결과 과 은 첫부분에서 10가지나 놀랍게도 닮은 점이 있었다. 一. 홍루몽과 수호전의 첫부분 비교 1. 돌맹이(石頭)의 각도에서 통행본 홍루몽과 통행본 수호전의 첫부분은 모두 이미 세상에 오래동안 존재해온 "요석(要石, 중요한 돌맹이)"에.. 2016. 3. 20.
왕양명(王陽明): 삼불후(三不朽) 글: 고성(高成) 중국고대에 어떤 사람이 불후의 인물이었을까? 노(魯)나라의 대부(大夫) 숙손표(叔孫豹)는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해야 한다고 하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중 하나도 하기 힘들다. 위청, 설인귀, 이정, 반초등등의 선현도 겨우 그중 한두개만을 완성했을 뿐.. 2015. 3. 5.
고쳐진 역사사진들 글: 노이람사(老李覽史) 2010년 광동연주촬영절때 예술가 장따리(張大力)은 130여조의 사진으로 구성된 <제2역사>를 전시했다. 이는 그 촬영전에서 볼만한 거리였고, 이 전람은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해주었다.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사진이 여러번에 걸쳐서 미화되.. 2015. 1. 18.
석형(石亨): 탈문지변의 공신 글: 두문자(杜文子) '탈문지변(奪門之變)'을 일으켜 명영종 주기진(朱祁鎭)은 '태상황'에서 다시 '황상'이 되었다. 여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석형이다. 석형은 무장으로 전공이 혁혁했다. 명영종을 옹립하여 복위히킨 후, 자신의 권력과 부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내.. 2014. 10. 2.
태감 왕진(王振)은 어떻게 국가대권을 장악했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명나라에는 수많은 태감이 있었지만, 명성을 날린 태감들은 모두 한가지씩 재주가 있었다. 저명한 태감 왕진이 바로 그러하다. 그는 원래 하북(河北)의 한 현성에서 놀던 불량배였다. 젊었을 때는 책도 조금 읽었고, 몇번 과거에 참가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처를 얻고 .. 2014.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