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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18

진(秦)나라가 육국(六國)을 멸망시킨 후, 국군(國君)들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글: 금색설역사(金色說歷史) 전국칠웅(戰國七雄)은 진(秦)나라, 제(齊)나라, 초(楚)나라, 연(燕)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이다; 주위열왕23년(기원전403년), 조, 위, 한의 삼가분진(三家分晋)후, 중화역사는 전국시대로 접어든다(시간에 대하여는 다른 견해도 있다). 그후 주안왕16년(기원전386년), 주천자는 제나라 전씨(田氏)에게 많은 돈과 재물을 뇌물로 받은 후, 실질적으로 제나라의 국정을 여러 해동안 통치해오던 전씨의 우두머리 전화(田和)를 제후(齊侯)로 봉하여, 전씨가 정식으로 제후가 된다. 주위한의 삼가분진으로부터 전씨제국(田氏齊國)까지, 그리고, 격렬한 제후간의 병합투쟁에서 살아남은 진, 초, 연의 세 대국을 합쳐 정식으로 전국시대에 가장 강대했던 7개 국가가 형성되.. 2022. 7. 21.
진시황의 왕후는 어느 나라출신이었을까? 글: 해숙설춘추(海叔說春秋) 사서를 아무리 뒤져 보아도 진시황의 왕후에 대한 기록이 없다. 소위 진황한무당종송조(秦皇漢武唐宗宋祖)중 나머지3명의 왕후에 대하여는 모두 기록이 있다. 그러나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아주 중요한 군주임에도 왕후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는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현존하는 사서에서는 진시황의 황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 왕후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추측해보는 것은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진시황의 앞 3대 즉, 진소양왕(秦昭襄王), 진효문왕(秦孝文王), 진장양왕(秦莊襄王)을 살펴보면, 진시황 가족내의 미묘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진소양왕이 가장 총애한 후궁은 초나라여인 미팔자(羋八子, 羋月)이고, 진효문왕이 가장 총애한 후궁은 화양부인(華陽夫人)이다. 이 두 명은 .. 2022. 7. 5.
한비자(韓非子)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글: 초근야담역사(草根也談歷史)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은 이러하다: 한비자는 이사(李斯)가 모함하여 죽었다. 그리고, 원인은 바로 이사가 한비자의 총명함을 질투했고, 한비자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봐 우려해서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하여 에는 또 다른 내용이 실려 있는데, 한비자의 신분이나 당시에 처한 상황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에는 뭐라고 쓰여 있을까? 1. 우수한 한비자 한비자는 한(韓)나라의 공자이고, 한왕헐(韓王歇)의 아들이다. 출신이 존귀하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고, 거유인 순경(荀卿)의 문하에 들어간다. 이사와는 동문사형제가 된다. 두 사람은 모두 공부를 좋아하고, 아주 우수했다. 졸업후, 이사는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관직을 얻으려 했고, 결국 천신만고.. 2021. 10. 9.
여불위(呂不韋)는 왜 음독자살해야 했을까? 글: 최찬성공(璀璨星空) 자고이래로 공신으로서 자신의 목을 잘 보전해서 선종(善終)한 자는 아주 적었다. 거기에는 윗사람이 각박하고 은혜를 갚을 줄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신하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스스로 죽을 길을 연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모든 책임을 윗사람에게 지울 수 없기도 하다. 중국역사기록에서 공신을 처음 죽인 사람은 진시황이 아니다. 월왕 구천이다. 여기에는 구천이 각박하고 은혜를 모르는 점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월나라의 복국에큰 공을 세운 문종(文種)과 범려(范蠡)가 모두 초(楚)나라 사람이며, 초나라로부터 월나라를 강화시켜 오나라를 약화시키려는 사명을 띄고 있던 사람들이다. 오나라가 멸망하자, 이 두 명의 인재들이 다음에 해야할 일은 무엇이었.. 2021. 5. 1.
서한(西漢)에는 왜 재혼한 황후가 많았을까? 글: 진사황(秦四晃) 열심히 고증해본 것은 아니고 개인의 유한한 학문으로 추측해보면, 우리의 진,한 심지어 그 이전시기에는 남녀 및 혼인관계가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것같다. 예를 들어, 진시황 영정의 모친 조희(趙姬)는 여불위, 남편인 자초(子楚), 그리고 노애(嫪毐)와의 사이에 자식.. 2020. 1. 13.
진(秦)왕조의 마지막 왕 자영(子嬰)은 누구의 아들일까? 글: 일합쾌락인생(壹哈快樂人生) 천고일제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최초로 통일왕조를 이룬 제왕이다. 그러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시피, 진왕조는 3세만에 망한다. 기원전207년 유방의 대군이 함양성 아래로 쳐들어왔을 때, 진삼세(秦三世) 자영은 성 밖으로 나와서, 역.. 2019. 6. 26.
진시황 모친 조희(趙姬)의 신세내력의 수수꼐끼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조희(趙姬)는 여불위(呂不韋)를 도와 고금중외에 가장 유명한 리스크투자에 성공하였고, 진시황을 낳아서 중국의 역사발전에 영향을 끼친 여인이다. 그녀는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신세내력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사기.여불위열.. 2018. 7. 17.
감라(甘羅)는 실존인물일까?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지금까지 신동(神童) 감라는 전설이라고 여겼다. 신화전설이면 그냥 무시해도 된다. 생각해보라, 무슨 12살짜리가 재상이 되느냐. TV드라마 <대택문>에서 그 할머니가 아이를 교육시킬 때, "인력거를 끌래 아니면 은행을 열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겁을 .. 2018. 7. 12.
진시황은 왜 말년에 스스로를 "짐(朕)"이라 칭하지 않았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진(秦)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에 "짐"은 1인칭대명사로 "나"라는 뜻이었다. 남녀노소, 존비를 불문하고 모두 자신을 '짐'이라 칭할 수 있었다. 기원전221년,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고, 진왕 영정은 천하를 통일한 지고무상의 군주가 된다. 영정은 이렇게 생각한다. 자.. 2015. 12. 29.
[황자쟁위술] 여인노선술(女人路線術) 파결총희패(巴結寵姬牌) 자초편외 ‘베겟머리송사’의 효과에 대하여 자고이래로 정인군자들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영웅도 미인이라는 관문은 넘기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英雄難過美人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애교나 눈물앞에 무너지지 않는 남자는 드물다. 아마도 이것은 모든 남자의 통병(通病)일 것이다.. 2015.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