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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당10

명말당쟁의 시비곡직 글: 양청균(楊淸筠) 동림당과 엄당의 투쟁은 천계제때 엄당의 승리로 끝난다. 비록 동림당이 천계제의 즉위에 거대한 공을 세웠지만, '삼대안(三大案)'을 통해서 기회를 만들어 주었지만, 천계제는 확실히 이들 재야에서 성장한 선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충현이 이끄는 엄당을.. 2014. 12. 12.
숭정제는 어떻게 위충현을 제거했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위충현은 명나라 말기의 환관이며, 그는 명희종의 총애를 받아서 권력이 조야를 뒤흔들고, '구천구백세(九千九百歲)'로 불리웠으니 그의 지위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명희종 주유교가 죽은 후, 동생 주유검(숭정제)가 즉위한다. 주유검은 자신이 황제에 오르리.. 2014. 8. 27.
명나라는 지나친 언론자유로 멸망했는가? 글: 주가웅(朱家雄) 청나라는 100년이상에 걸치는 잔혹한 문자옥(文字獄)정책을 썼다. 명나라때 살았던 사람들이 누린 언론의 자유라는 행복은 청나라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상, 명나라 통치자들의 언론자유에 대한 포용력은 대단했다. 역대왕조와 비교하더라도 첫손에 꼽힐 정도.. 2010. 11. 22.
동림당과 엄당(閹黨) 명나라의 천계제가 들어서면서 그를 황제로 올리는데 공을 세운 동림당 사람들이 중용되기 시작한다. 이미 은퇴하였던 섭향고는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서 내각수보를 맡는다. 한광과 유일경은 내각대학사가 된다. 그리고 조남성은 이부상서를 맡고, 손신행은 예부상서를 추원표는 좌도어사를 맡는다... 2006.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