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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충10

마외역(馬嵬驛)의 수수께끼: 진현례(陳玄禮)는 당현종의 사람인가, 태자 이형(李亨)의 사람인가? 글: 화운초(和運超) 고선지(高仙芝), 봉상청(封常淸) 두 명장이 사리분별못하고 충동적인 당현종 이융기(李隆基)에 의해 사사된 후, 유일하게 황제가 떠올린 노장은 이전에 하서(河西)와 농우(隴右)에서 여러 전공을 세운 바 있는 가서한(哥舒翰)이었다. 그러나, 우선 나이가 아주 많고, 다음으로 병을 앓고 있어서 사서에는 특별히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가서한이 출정할 때 병세가 다시 위중해져서 업무를 처리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심복인 왕사례(王思禮)는 일처리가 너무 과격해서 업무를 또 다른 신임하는 부하인 전량구(田良丘)에게 맡겨서 처리하게 했다. 전량구는 명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감히 독단적으로 처리하지는 못했다. 부하들을 따르게 하기 위해 왕사례로 하여금 기병(騎兵)을 맡게 하고, 이승광(李承光)으로 하여.. 2021. 12. 11.
양국충(楊國忠)의 부인과 애인 글: 사지동(謝志東) 양국충은 당현종 시기의 유명한 간상(奸相)이다. 그는 양귀비의 먼 친적 오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적에서는 모두 양국충이 양귀비의 언니인 괵국부인(虢國夫人)과 간통했다고 적고 있다. 예를 들어, <구당서.양국충전>에서는 "귀비의 언니 괵국부인은.. 2018. 12. 2.
안록산(安祿山)은 어떻게 장안을 점령하였을까?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천보15년(756년) 육월, 동관(潼關)이 함락된 그 날, 가서한(哥舒翰)의 부하는 화급히 상황을 조정에 보고하여 모두 준비를 하도록 한다. 그런데 당시에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당현종 이융기는 사자(使者)를 접견하지 않고, 단지 이복덕(李福德)등에게 부대를 .. 2018. 7. 19.
이임보(李林甫)는 간신인가?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이임보는 간신인가? 황제시대에 황제는 개인기업의 오너와 같다. 황제 수하의 대신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이라 하더라도, 역시 황제를 위하여 일하는 머슴이다. 그래서, 황제의 눈에, 신하를 간(奸)과 불간(不奸)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충(忠)과 불충(不.. 2017. 1. 29.
이보국(李輔國): 환관으로 재상에 오른 인물 글: 사종의(史宗義) 중국역사상, 환관의 신분으로 재상에 오른 인물은 딱 2명이다. 한 명은 지록위마의 조고(趙高)이고 다른 한명은 이보국(李輔國)이다. 조고는 음흠하고 독랄하여 역사에 악명을 남겼다. 이보국은 조고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는 아부를 잘하여, 배우지 않고.. 2015. 1. 1.
천고명장 곽자의(郭子儀) 글: 철마빙하w(鐵馬氷河w) "안사의 난(安史之亂)은 중국역사상 저명한 대사건이다. 또한 당나라가 흥성에서 쇠망으로 돌아선 전환점이기도 하다. 다만, 날로 쇠약해지는 당왕조의 국운은 한 광고절금(曠古絶今), 역만광란(力挽狂瀾)의 영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바람에 왕조의 생명은 .. 2014. 5. 30.
대당천자 이형(李亨)과 신(神)의 인연 글: 완여청양(宛如淸揚) 대당천자 이형은 비정의 황제이다. 아직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대 하마터먼 부친 이융기의 낙태약에 의하여 죽을 뻔했었다. 만일 세번의 투약이 세번 신인(神人)에 의하여 저지되지 않았다면 당숙종 이형은 뱃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는 출생후부터 계속하여 황.. 2013. 5. 4.
중국의 태상황(太上皇) - 당 글: 소가노대(蘇家老大) 당나라는 중국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왕조이며, 중국역사상 태상황을 가장 많이 배출한 왕조이기도 하다. 양견이 북주의 고아과부로부터 북주정권을 탈취한 후, 개황원년(581년) 정식으로 수왕조를 건립한 때로부터 당공 이연이 양유(楊侑)를 괴뢰황제로 옹립한 .. 2012. 3. 14.
양귀비와 안록산의 사통설 글: 월초(越楚) 후세인들에 의하여 중국고대 ‘4대미녀’중 하나로 꼽히는 양귀비는 태어나면서부터 빼어난 용모를 지녔을 뿐아니라,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었으며, 음률에도 능통했으니, 당나라 연예계의 제일인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의 최고 스타로서, 스캔들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 2010. 11. 24.
양귀비(楊貴妃)의 죽음에 얽힌 몇 가지 의문점 756년, 안사의 난의 폭발했다. 일대의 절세미인 양귀비는 마외파(馬嵬坡)에서 생을 마쳤다. 2년후 양귀비의 묘를 팠는데, 양귀비의 사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설마 양귀비가 마외파에서 죽었다가 살아났단 말인가? 미스터리 1 “양귀비유체”에 대한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재가 다르다. 신당서에서는 향주.. 2006.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