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초재 9

"충의군(忠義軍)"의 진상

글: 최애역사(最愛歷史) 명나라때의 희곡가 탕현조(湯顯祖)의 대표작 는 판타지애정물의 거작이다: 두려낭(杜麗娘)이 꿈속에서 서생 유몽매(柳夢梅)와 서로 사랑에 빠졌다가, 죽게 된다. 그후 한줄기 혼백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사랑하다가 결국 기사회생하여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탕현조는 판타지와 애정이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많은 역사이야기를 포함시켰다. 그는 두려낭의 이야기를 송금전쟁(宋金戰爭)이라는 배경하에 두고, 다시 강도부부를 출연시킨다: 이전(李全)과 양낭낭(楊娘娘). 극에서 금나라황제 완안량(完顔亮)이 군대를 몰고 남으로 쳐내려와 남송을 삼킬 준비를 한다. 산동(山東) 회해(淮海)일대에서 활약하던 이전 부부는 장두초(墻頭草, 담장위의 풀과 같이 이리..

원나라때 이슬람과의 천문학 교류와 접촉

글: 강효원(江曉原) 징기스칸이 남정북전(南征北戰)하면서,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뒤에는 중국을 차지한 원(元)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칸국이 병립하고 있었다. 원나라는 명목상 종주국이고, 각국간의 문화와 교류가 아주 활발했다. 이 시기의 중국천문학과 이슬람천문학간의 접촉에 관하여 국내외의 학자들이 모두 기술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이런 접촉이 존재한 것은 확실하지만, 적지 않은 구체적인 이슈는 아직 명확한 단서나 결론이 없다. 본문에서는 대체로 연대순서에 따라, 비교적 중요한 6가지 이슈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 시기의 중국과 이슬람천문학간의 교류와 접촉에 대하여 더욱 전면적이고 분명한 인식을 얻고자 한다. 1. 야율초재(耶律楚..

고대의 시호(諡號)제도와 규칙

글: 배주품역사(杯酒品歷史)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개관정론(蓋棺定論)! 관두껑을 닫고나서 결론을 내린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대한 시비공과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제와 문무대신이 죽은 후에 조정은 그들에게 시호를 내린다. 1개의 글자로서 그의 일생을 개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호가 그냥 간단한 글자 1자는 아니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통상 황제의 시호와 묘호는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는 우리가 그를 성조인황제(聖祖仁皇帝)라고 부른다. '성조'는 묘호(廟號)이고, '인(仁)'은 시호(諡號)이다. 황제에게 묘호를 올릴 때는 불문율이 있다. 조(祖)는 공(功)이 있어야 하고, 종(宗)은 덕(德)..

야율초재(耶律楚材): 징기스칸은 왜 그를 중용했는가.

글: 황수(黃帥) 1211년, 징기스칸의 철기(鐵騎)가 야호령(野狐嶺)에서 금나라군대와 격전을 벌일 때, 야율초재(耶律楚材)는 겨우 21살이었다. 그는 가슴에 큰 뜻을 품고 금나라 황제와 함께 곧 중원으로 쳐들어올 몽골인을 격퇴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역사의 저울은 이때 이미 몽골인에게 기울어 있었다. 수십년간의 향락과 소비로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의 자손들이 지탱해온 국가는 사상유례없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야호령 전투에서 금나라군대는 정예병을 모조리 잃는다. 심지어 황제 금선종(金宣宗)마저 남으로 도망쳐 변경(지금의 개봉)으로 간다. 일시에 금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공포분위기가 중원의 대지를 감싸게 된다. 야율초재는 몽골인과 더욱 거리가 가까웠던 중도(中都)에 남는다. 즉 지금의 북경이다. 이곳은 여..

오고타이: 몽골전통과 중원문화가 만나면서 후계자에 오르다.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징기스칸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주치, 차남 차가타이, 삼남 오고타이, 사남 톨루이. 네 아들 중에서 주치(몽골어로 '손님'이라는 의미임)를 제외하고는 모두 징기스칸의 친아들이다. 네 아들은 모두 각자의 장점을 지니고 있고, 모두 영웅호걸이었다. ..

징기스칸은 왜 인도를 점령하지 못하였는가?

강대한 몽골기병은 왜 인도경내로 들어갈 수 없었고, 인도로 들어간 후 얼마되지 않아 철수하고 만 것일까? <<원사(元史)>>와 <<야율초재전>>의 기록에 의하면 징기스칸으로 하여금 회군하게 만든 것은 인더스강에서 만난 각단(角端)이라는 괴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당시 징기스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