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궁16 왜 우물이 고향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장생전(張生全) "배정리향(背井離鄕)"이라는 성어가 있다. 어떤 사람은 "배(背)"를 1성으로 읽어서, 이 성어의 의미는 바로 "우물을 등에 짊어지고 고향을 떠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보면 의문이 생긴다. 우물을 어떻게 등에 짊어진단 말인가? 당연히 이건 오해이다. 정확한 해석은 여기의 '배(背)'를 4성으로 읽어야 하고, "등을 돌리고 떠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의미는 자신의 고향집에 있는 우물을 등지고 고향을 떠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우물'은 고향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고향에는 사물이 많다. 이치대로라면 집, 토지야말로 고향을 대표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물이라 할 수 있다. 왜 토지, 집과 같은 물건이 고향의 대명사가 되지 않고, 우물이 고향의 대명사가.. 2020. 6. 30. 진왕조가 천하통일후 15년만에 멸망한 원인은 폭정이 아니다. 글: 천천천(天天天) 진시황은 겨우 10년의 시간을 들여 일거에 6국을 멸망시키고 전국을 통일하여, 최초의 중앙집권제국가를 건립했다. 그러나 이 국가는 겨우 15년간 존속하고는 운명한다. "합구(合久)"되기도 전에 다시 "분(分)"한 것이다. 원래 진시황은 만대를 내려가는 진왕조를 원했으.. 2018. 8. 27. 아방궁의 역사진상(9): 아방궁이 보존된 주요원인은 무엇일까? 글: 진경원(陳景元) 아방궁 문제를 연구하면서 실제가치가 있는 성과를 얻어내려면, 반고의 <한서>를 돌아가서 기타 사료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안된다. 왜냐하면 <한서>에 명확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방궁은 아성이라고도 부르고, 진혜문왕이 건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8): 아방궁의 기와는 어디로 갔는가? 글: 진경원(陳景元) 한마디로 말해서, 아방궁전 건축유적지에서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아방전전이 일찌기 완공되었다는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신뢰성이 낮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방전전 건축유적지 위에서 진나라벽돌, 진나라기와나 기타 건축재료를 발견..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7): 아방궁이 불질러졌다는 사료는 어디에 있는가? 글: 진경원(陳景元) <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명성조 주체는 영락4년(1406년)에 새로운 부지를 정해 북경고궁을 건설하도록 조서를 반포한다. 영락18년(1420년)에 공사는 완공되었다고 선언한다. 왜 이렇게 규모가 큰 궁전을 짧은 14년의 기간내에 완공할 수 있었을가? 원래 이것은 그저 .. 2018. 2. 23. 아방궁의 역사진상(6): 후화원을 먼저 지을 수는 없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35녕에 아방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관련된 관련 사료는 당연히 이육방선생과 그 고고팀이 아주 신뢰성있는 자료에 의하여 철저히 부정되었다. 다만, 이육방이 만일 다른 학자들이 제기한 '진혜문왕때 아방궁이 건축되기 시작했다"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2018. 2. 23.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