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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쟁위술] 양호상쟁술(兩虎相爭術) 어부지리패(漁父之利牌) 순치제편 황위계승후보자들 가운데 실력이 엇비슷한 경우에 둘이 황위를 놓고 다투다가 상처를 입어 둘 다 황위를 놓치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제3의 황자가 황위를 승계하는 사례가 제법 많다. 그 제3의 황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저절로 굴러들어온 황위를 받은 경우도 있지만, .. 2015. 8. 25.
다이샨(代善)은 왜 칸에 오르지 못했는가? 글: 자일(子逸) 1615년, 명나라 만력43년, 추잉(諸瑛)이 죽은 후, 다이산은 누르하치의 눈에 다음번 후계자로 떠올랐다. 다이샨은 누르하치의 차남이고, 추잉의 친동생이다. 누르하치의 아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고, 공훈이 탁월했으며, 양황기(兩黃旗)를 통솔했다. 다음 해, 누르하치는 스.. 2012. 6. 5.
도르곤은 왜 황제에 오르지 못했는가? 글: 이성능(李聲能) 도르곤은 누르하치, 홍타이시이후 대청왕조의 제3대정권에서 핵심인물이고, 걸출한 정치가이며 군사가이다. 그는 16세때 군대를 이끌고, 몽골을 정복하고, 조선을 정벌했으며, 대명을 토벌했고, 전투마다 승리했다. 33세에는 군대를 이끌고 산해관을 넘었으며, 파죽지.. 2012. 3. 12.
홍타이시와 도르곤: 누가 누르하치가 생각한 후계자인가? 글: 인민망 누르하치가 죽기전 몇년동안, 그의 후계자문제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했다. 그중에 "귀영개(貴永介)에게 말하기를 '구왕자(九王子)를 후계자로 삼아야겠는데, 나이가 어리니, 네가 섭정의 직위를 맡은 후, 나중에 구왕자에게 왕위를 전하라."고 했다는 말이 있.. 2012. 1. 30.
누르하치와 그의 부인들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奴爾哈赤, 1559-1626)는 황제로 칭하지 않았으므로 그 부인들을 당시에는 황후로 부르지는 않았다. 만주어로 부인은 푸진(福晉)이라고 불렀고, 정실부인을 대푸진(大福晉)으로 불렀으며, 이후 역사서에서는 대비(大妃)로 불리운다. 누르하치의 대비는 전후 4명이 있다. 첫째 정실.. 2005.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