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 여공(呂公)은 왜 딸을 유방(劉邦)에게 시집보냈을까?
글: 역사대작회(歷史大炸燴) 만일 역사서의 설명대로라면, 여공이 당시 처음 유방을 만났을 때, 딸을 유방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주요 이유는 유방이 처음 만났을 때 좋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여공이라는 사람은 관상을 보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여공이 처음 유방을 만났을 때, 즉시 유방은 아주 귀한 인물이 될 것이고, 나중에 분명 황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즉시 유방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일에 관하여, 사서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에 따르면, 당시 여공이 유방에게 이런 이유를 댔다. 신소호상인(臣少好相人), 상인다의(相人多矣), 무여계상(無如季相), 원계자애(願季自愛), 신유식녀(臣有息女), 원위기추첩(願爲箕帚妾) 번역하자면, "저는 관상을 볼 줄..
2023. 9. 19.
위,촉,오 삼국의 승상제도는 어떻게 달랐을까?
글: 장공성조(長空星照) 삼국이 정립된 후, 가장 먼저 건국하여 황제를 칭한 위(魏)는 승상을 두지 않는다. 그후에 건립된 촉(蜀)과 오(吳)는 처음부터 승상을 둔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오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상을 두었지만, 촉한은 제갈량이후에 더 이상 승상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위나라. 건안13년 조조가 승상에 오른다. 건안18년에 이르러 조조는 위공(魏公)이 되고, 기주(冀州)내의 10군은 그의 봉지가 된다. 두달 후, 조조는 위나라의 종묘사직을 건립하고, 십일월에 이르러, 상서(尙書), 시중(侍中)과 육경(六卿)을 설치한다. 원래 건안연간에, 조정백관은 모두 조조의 말을 들었고, 승상이 되었으며, 승상부를 두며, 모든 정령은 승상부에서 나왔다. 조조..
2021. 10.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