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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93

진실한 조조(曹操)를 찾아서... 글: 이자제(李子霽) 는 명나라때 세상에 나타난 이래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 안에는 지혜, 용맹, 충의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풍류인물에 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설전군유(舌戰群儒)"에서 "칠금맹획(七擒孟獲)", "화소적벽(火燒赤壁)"에서 "화소연영(火燒連營)"까지, "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에서 "주마천제갈(走馬薦諸葛)"까지, "맹덕헌보도(孟德獻寶刀)"에서 "자주논영웅(煮酒論英雄)"까지.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1994년 TV드라마 가 방영된 이래, 다시 한번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고, 중국인들에게 다시 "삼국"에 대한 미련(迷戀)을 환기시켰다. 이는 전체 중국문화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오늘날 함께 "삼국"을 이야기할 수 있고.. 2023. 6. 20.
관우의 후손이 있을까? 글: 선한(宣漢) 중국인에게 "의용(義勇)" 두 글자의 화신인 관우는 성공을 다 이루지 못하고 동맹군에게 성을 빼앗기고 도망치다가 죽는다. 그의 최후는 역대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일이다. 관우의 장남 관평은 부친을 따라 전투에 나섰다가 맥성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붙잡혀 부친과 함께 죽는다. 차남 관흥은 제갈량이 중시했으나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띨 관씨는 여몽의 손에 붙잡한 후 행방이 묘연하다. 관우의 혈맥은 그리하여 더욱 희박해지게 된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 수백년 천여년이 지나는 동안 관우는 역대군왕, 무인,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신으로까지 모셔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일부 관우의 후예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정부의 녹봉과 관직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관우의 후손은 이어져.. 2021. 12. 25.
촉한(蜀漢) 오호상장(五虎上將)의 부인은...? 글: 천애간점역사호(天涯看點歷史號) 에 이런 문구가 있다: "자룡일신도시담(子龍一身都是膽), 갱유인심병의간(更有仁心幷義肝)" 조운의 자는 자룡이고, 오호상장중 하나이다. 유비에 대하여 충성심을 가졌고, 유비가 조조의 오천 호표기(虎豹騎)에 쫓기느라 처자식을 돌볼 겨를이 없어, 처자식을 전진에 놔두고 혼자서 도망쳤다. 유비는 자신의 처자식을 버린 것이다. 그러나, 조운은 부하로서의 직책을 잊지 않고 장판파에서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유비가 버리고간 미부인(糜夫人)과 유선(劉禪)을 찾아다녔다. 조운은 이처럼 협의로운 인물이다. 여자들은 모두 그에게 시집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에 그의 처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렇다면 조운의 처는 도대체 누구일까? 오호상장은 모두 결혼을 했고, 부인이 있다. 비록 에는 .. 2021. 7. 13.
중국과 일본이 경제전쟁을 벌인다면....? 글: 왕혁(王赫) 일본의 대중국정책변화를 제약하는 기본요소는 중일간의 경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만일 중일간의 경제연결은 의존관계이며, 쌍방향이고, 나아가 중국의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일본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보다 높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전략적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것같지는 않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쇠락하였으며, 일본의 중국과의 협력은 아마도 '기술적으로는 성공, 시장적으로는 실패'라는 실패의 저주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논조가 중국의 매체와 온라인에 넘쳐나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다만, 이는 중국이 만들어낸 방대하고 정교한 거짓말이다. 중공당국의 대일정책은 아직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2016년 한미간에 .. 2021. 4. 16.
유비, 관우, 장비는 어떻게 생겼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를 보면,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용모는 모두 선명한 특색이 있다. 너무나 선명하여 수천수만명 속에 있어도 바로 찾아낼 수 있고, 한번 보면 잊지 않을만한 그런 용모이다. 먼저 유비를 보자. "키는 칠척오촌,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뜨려지고, 두 팔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간다. 눈으로 자신의 귀를 돌아볼 수 있고, 얼굴은 관옥(冠玉)같고, 입술은 분을 바른 것같다." 다음으로 관우를 보자: "키는 구척, 수염은 2척이다; 얼굴은 대추같고, 입술은 분을 바른 것같다; 단봉안(丹鳳眼), 와잠미(臥蠶眉)이다. 용모는 당당하며 위풍이 늠름하다." 장비는 또 어떨까?: 키는 팔척, 표두환안(豹頭環眼, 표범같은 머리에 동그란 눈), 연액호수(燕頷虎鬚, 큰 턱과 호랑이수염), 목소리는 큰 우.. 2020. 11. 20.
여포의 부하장수들.... 글: 취담역사(趣談歷史) 여포의 일생은 기복이 심하다. 원래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丁原) 휘하의 주부(主簿)였다. 그런데 정원을 죽인 후 동탁(董卓)의 부하가 되고, 다시 동탁을 죽인다. 이각(李傕), 곽사(郭汜)에 의해 장안에서 쫓겨난 후, 연주(䆓州)를 기습하여 조조의 본거지를 거의 박살낸다. 다시 조조에 쫓겨난 후 유비가 그를 거둔다. 그 결과 유비는 양호위환(養虎爲患)하게 된다. 유비가 원술(袁術)을 토벌하러 나섰을 때, 여포가 서주를 기습한다. 그리하여 여포는 서주의 주인이 된다. 여포가 이렇게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무공이 고강한 점도 있지만 그의 부하들 중에서 잘 싸우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용맹한 사대호장(四大虎將)을 꼽자면, 모두 잘 알고 있는 고순(高順), .. 2020. 9. 21.
관우의 딸은 결국 누구에게 시집갔을까? 글: 지역사(知歷史) 사서에 이름을 남긴 여성은 아주 적다. 관우의 딸도 예외는 아니다.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건안24년(219년), 관우는 형주를 잃고, 아들 관평(關平)과 함게 오나라장수에 붙잡혀 살해된다. 그를 따라 도망쳤던 나머지 가족(그의 딸을 포함해서)의 행방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진수의 기록에 따르면, 관우에게는 아들 관흥(關興)이 있고, 그가 관우의 작위를 승계했다. 추측하건데 그는 나이가 어려서 성도(成都)에 남아 있었던 것같다. 그래서 부친과 함께 겁난을 당하지 앟은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추측할 수도 잇다. 아이는 전란중에 적의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쉽게 도망칠 수 있었다고. 그러나 어떻게 추측하든간에 관흥은 사서에 기록된 유일하게 살아남은 관우의 아들이다. 민.. 2020. 9. 4.
왜 유비의 촉한진영에 반도가 가장 많았을까? 글: 기점역사(起點歷史) <삼국지>에서 유비에 대한 평가는 "홍의관후(弘毅寬厚), 지인대사(知人待士)"였다. 그에게 "한고조의 풍이 있고, 영웅의 그릇이었다." 조조도 유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오늘 천하의 영웅은 오직 그대와 나 조조뿐이다." 손권은 이렇게 말한다: "유예주(유.. 2020. 1. 3.
유표(劉表) 휘하의 7대맹장은 위,촉,오로 어떻게 나누어졌는가? 글: 취관역사(趣觀歷史) 모두 알고 있다시피, 삼국은 군웅이 다투던 시기이다. 저명한 모신(謀臣), 무장(武將)이 많이 나타났다. 동한 말기에 굴기한 각로의 군벌을 살펴보면, 그들의 휘하에 인재들이 아주 많았다. 형주(荊州) 일대는 당시 부유한 곳으로 병가의 필쟁지지이다. 자연히 능력.. 2019. 10. 11.
촉한(蜀漢)이 멸망한 후 유선(劉禪)의 아들 7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유선(207-271)은 형주 강릉 사람으로, 촉한 회제(懷帝(재위223-263)이다. 후주(後主)라고도 부른다. 자는 공사(公嗣)이고, 아명은 아두(阿斗)이다. 촉한 소열제 유비의 아들이다. 모친은 소열황후 감씨(甘氏)이며, 삼국시대 촉한의 제2대황제이다. 재위41년으로 삼국시기.. 2019.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