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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양정부12

청사편찬전전(淸史編纂前傳) 글: 이양(李揚) 1914년 8월, 원세개의 수행비서 오구(吳璆)는 원세개의 친필서신을 가지고 청도(靑島)로 간다. 오구가 이번에 청도에 간 목적은 무창의거후 청도에 은거하고 있던 전임 청 동삼성총독 조이손(趙爾巽)에게 청사(淸史) 편찬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몇 달 전으로 거.. 2013. 11. 10.
송교인암살사건의 분석 글: 풍학영(馮學榮) 1913년 3월 20일, 송교인이 상해에서 암살당한다. 3월 22일, 송교인은 수술을 받았으나 목숨을 구하지 못하여 사망한다. 이 암살사건에 관하여는 지금까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원세개설, 다른 하나는 진기미설. 필자는 사건이 발생한 당일 상해 각계매체의 이사건 .. 2013. 9. 14.
이십일조: 역사의 진상 글: 풍학영 중국대퓩의 각종 사서에서 널리 성행하던 "매국노 원세개가 일본과 이십일조를 체결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 일의 진상은 이러하다. 일본은 제1차세계대전때 중국 산동의 청도로 출병하여 청도의 독일조계지에 있던 독일군을 몰아낸 후 원세개에게 철군의 조건을 .. 2013. 3. 30.
1923년 임성(臨城)열차강도사건 글: 장부걸(張溥杰) 1923년 5월 6일 새벽, 진포선(津浦線)의 상해에서 북경방향으로 질주하던 제2차특별쾌속열차는 강소(江蘇)를 빠져나와 산동(山東) 경내로 들어섰다. 사구(沙溝)역을 지나 임성(臨城)역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이때, 40명의 외국인승객과 200여명의 중국인승객이 강도들에.. 2013. 2. 15.
숭정제가 자결한 장소는 어디인가? 작자: 미상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경산(景山)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고, 그 유적지는 지금도 남아 있으며, 석비(石碑)까지 세워져 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숭정제가 그 곳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주장은 잘못된 것이.. 2012. 3. 27.
양계초(梁啓超)와 채악(蔡鍔): 원세개(袁世凱)를 잠못이루게 한 사도(師徒) 글: 고문기(高文麒) 2003년 4월, 천진의 마르코폴로광장의 북쪽에 두 동의 나란히 선 이탈리아식 서양건물이 정식으로 관광객에게 개방되었다. 북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중화민국초기의 대사상가 양계초의 주택이고, 남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그의 서재인 그 이름도 유명한 음빙실(.. 2009.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