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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유신6

광서제의 죽음(3): 광서제와 서태후의 은원 글: 정호청천(鼎湖聽泉) 대청의 첫손가락 꼽히는 권력자로서 국가관리층면이나, 개인은원이나 살인동기나 실행능력을 볼 때, 서태후가 최종집행자일 것이다. 그녀로서는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광서제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다. 실패할 위험도 없다. 첫째, 국가관리층면을 보자. 광서제가 이끄는 백일유신이 실패한 후, 그는 일찌감치 폐인이 되었다. 심지어 상징적인 대우마저도 크게 줄어든다. 백일유신시기에 그는 조조를 핍박하는 한헌제와 같았다. 힘이 없는 황제는 되지 않겠다고 물러나겠다고까지 밀어부쳤다. 서태후는 그러나 네가 황제로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열강이 막지만 않았다면 일찌감치 황위를 바꿨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을 때 부의를 황제로 결정했다. 국가관리층면에서 광서제가 할 일은 없었다. 살아남겨두어도.. 2021. 9. 16.
광서제의 비극: 동년, 사업 그리고 애정 글: 풍현일(馮玄一) 광서제는 청나라의 제11대황제이다. 그의 이름은 애신각라 재첨(載㵇)인데, '첨'자는 물리 조용히 흐르는 모습을 가리킨다. 그의 성격과는 아주 잘 들어맞는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화상(畵像)을 보면, 그는 문약하고 청수(淸秀)한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준수한 얼굴 .. 2020. 1. 16.
강유위(康有爲): 진실한 강유위 글: 창해일속(滄海一粟) 이런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일찌기 의무교육단계의 역사교과서에 나온다. 그를 언급할 때면 그가 '공거상서(公車上書)', '무술변법(戊戌變法)'을 주재했다고 여긴다. 모든 사람은 그를 큰스승으로 여긴다. 국학대사(國學大師) 그 자신도 자기를 그렇게 생각했.. 2018. 8. 1.
무술변법의 실패는 외국인의 개입때문이다? 글: 조종국(曹宗國) 청나라말기의 무술변법은 원래 대세의 흐름이고, 여론도 거세었다. 그리고 서태후의 동의를 거쳐 광서제가 앞장서서 추진했다. 그런데 왜 단지 103일간 진행하다가 돌연 서태후는 마음을 바꾸어, 황제를 유폐시키고 변법은 중도에 요절했는가? 옛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2013. 6. 26.
옹동화(翁同龢)와 손육문(孫毓汶) 글: 유계흥(劉繼興) 옹동화는 청나라말기에 명성이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 함풍6년(1856년)에 장원(狀元)을 했고, 한림원 수찬을 제수받았으며, 동치제, 광서제의 두 황제의 스승을 지낸다. 형부상서, 공부상서, 호부상서, 협판대학사, 군기대신, 총리각국사무대신등의 관직을 지냈.. 2012. 6. 10.
강유위(康有爲) : 거짓과 사기 글: 진명원(陳明遠) 강유위(캉유웨이, 1858-1927)는 광동성 남해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장소(長素)이다. 청나라말기의 개량파이며, 유신변법에 참여했고, 나중에 보황파(保皇派)의 우두머리가 된다. 황창건의 <<무술변법사연구>>, 장건위의 <<온고무술년>>등 저서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 2007. 7. 6.